룩소르 / Luxor
긴 이집트 종단 여정의 마무리를 장식하는 도시는 룩소르였다. 중왕국부터 신왕국까지 이집트의 수도였던 곳으로 이집트의 황금기를 장식한 도시. 2박 3일을 머무르며 크리스마스도 잊은 채 이집트 신왕국의 정취를 듬뿍 즐겼다.
하루 만에 아스완은 건너뛰어도 룩소르만큼은 꼭 방문하라던 사람들의 말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나일강을 중심으로 동안과 서안으로 나뉘는데, 두 곳 모두 하루씩 할애할 만큼 완전한 유적의 도시였다.
글도 전반적인 룩소르와 동안, 서안으로 나누어 여행기를 작성해 보려 한다.
저녁 늦게 도착한 룩소르 역. 아마 호루스의 그림이려나? 번잡했던 아스완 역보다 쾌적하게 느껴졌다. 택시가 잡히지 않아 바이크 택시를 불러 호텔로 향했다.
다른 도시와 달리 룩소르에서는 유적지 사이를 이동할 경우 대부분 바이크 택시를 탔다. 상대적으로 거리가 짧기도 했고, 20 이집트 파운드 (한국 돈 600원) 정도로 가격도 저렴하고, 차보다 빠르고, 보통은 나일강변을 따라 조성된 메인 도로만 오가 위험하지 않은 것이 주요한 이유였다.
이집트에 와서 내내 찍고 싶다가 룩소르에서 비로소 포착한 과속 방지턱. 이집트 전역의 과속 방지턱은 대부분 이렇게 좁은 너비에 특별한 패턴이 그려져 있지 않았는데, 운전자들이 기가 막히게 알아채고 속도를 줄이는 것이 신기했다. 물론 아주 레어하게 쿵 찍는 드라이버들도 있긴 했지만.
게다가 역주행 방지를 위한 무시무시한 방지턱도 있었다. 원래의 방향대로 달리면 저 돌기들이 스무스하게 아래로 내려가지만, 반대의 방향으로 달리는 것은 상상하고 싶지 않다.
동안의 굉장히 좋은 위치에 포시즌즈 호텔이 공사 중이었다. 후에 벌룬 투어를 보러 이른 아침 호텔을 나설 때 이 공사장으로 막 출근하는 인부들을 보고, 석양을 보며 호텔로 돌아갈 때 퇴근하는 인부들을 마주칠 수 있었다. 언젠가 이곳이 완공되면 룩소르의 관광객을 휘어잡는 제1의 호텔이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룩소르 공항. 룩소르 관광을 마치고 카이로로 돌아갈 때는 비행기를 탔다. 연착과 지연이 무척 잦다는 얘기만 들었지, 내가 당할 줄은. 공항에 조금 일찍 들어갔는데 거진 6시간을 갇혀있었다. 자판기를 이용하려면 옆에 앉은 관리인 여성분께 팁까지 제공해야 했던 무시무시한 공항.
호텔 복도에 있던 재떨이. 흡연에 너무 관대한 나라.
이슬람 국가지만 호텔마다 최선을 다해 크리스마스 장식을 꾸며놓은 것이 재밌었다. 조금 creepy한 산타클로스인 게 재밌는 포인트였다.
룩소르에서 움직이는 시간이 그네들의 출퇴근 시간과 잘 맞물렸던 것인지, 유난히 일상을 보내는 이집트인들을 많이 마주칠 수 있었다.
매연 속에서 구워지는 빵은 룩소르에서도 여전히.
벌룬 투어
카이로에서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 호텔에서 아스완과 룩소르에서의 일정을 틈틈이 알아봤었다. 미화로 30에서 50불 정도의 가격으로, 다른 국가에서 타는 것보다 저렴하다는 이유로 일출 벌룬 투어를 많이들 탄다는 얘기를 들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가격이 좀 올라 그냥 건너뛸까 했지만, 서안을 모두 둘러본 뒤 그다음 날 열기구를 타게 되면 비로소 서안 관광의 마무리가 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아고다를 뒤져보니 45달러 정도에도 가능한 것 같아 덜컥 예약을 했다.
호텔은 동안에 있는데, 열기구는 서안에서 탑승한다. 새벽 네 시, 봉고차가 동안의 호텔을 돌며 사람들을 하나씩 픽업해 선착장으로 데려갔다.
언제 어디서나 티타임을 갖는 이집션들. 지난번 아부심벨을 다녀올 때는, 작은 버스의 주유구 같은 곳에 주전자와 컵을 넣어놓고 티타임을 갖는 광경도 구경했었다.
배를 타고 서안의 선착장에 내려, 또다시 봉고차에 탑승한 뒤 열기구를 탈 수 있는 평원으로 이동했다. 무전기를 가지고 있던 크루들이 관제사의 ok 오더에 따라 일제히 바람을 넣기 시작했다.
하나의 열기구에 매달리는 크루들이 이렇게 많을 거라 생각지 못했다. 열기구마다 2~30명의 크루들이 매달려 떠오르지 못하게 몸무게를 실었고 그 사이 열댓 명의 관광객들이 호다닥 열기구에 탑승한다.
아직 어둠에 잠긴 서안을 바라보며 떠올랐다.
서안 왕가의 계곡 뒤편이 같은 패턴의 너른 사막일 거라 생각지 못해 좀 놀랐다. 왜 이곳을 죽음의 땅이라 부르며 많은 파라오들이 영생을 위해 숨어들어갔는지 이해할 것도 같았다. 피라미드 대신 굴을 선택한 것이 우연은 아니었으리라.
크리스마스 당일이었다. 열기구에서 많은 이들이 Merry Christmas를 주고받았다.
위에 떠오르니 아래선 인지하지 못했던 유적들의 평면도를 바라볼 수 있었다.
이따금씩 섬처럼 위치한 건물들이 무엇인지 궁금했는데, 열기구 캡틴이 설명해 주시길 고고학 연구를 위해 파견된 여러 나라 대학들의 기숙사 겸 기지라 한다. 저긴 프랑스 어느 대학의 기숙사라고 했던 것 같다. 진짜 현장에 머무르며 손에 잡히는 연구를 하는 사람들의 기분이 어떨지, 상상만 해도 내가 다 설렜다.
서안 역시 사람 사는 동네. 죽음의 계곡을 배경으로 삼아 터전을 가꾼 사람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이런저런 단상에 빠졌다.
일출에 비친 왕가의 계곡. 사막과 시민들의 터전이 완벽하게 분리되어버린 경계가 신기했다.
크리스마스의 해를 바라보며 점점 땅으로 내려섰다.
열기구마다 내려가는 지점이 제각각이라, 내려가면서 무전을 통해 위치를 전송하면 크루들을 실은 봉고차와 트럭이 그 위치로 마구 뛰어들었다. 유적지가 아닌 평원이나 경작지로 착지하기 위해 무척 애쓰는 것 같았다. (얘기를 들어보니 며칠 전에는 바람 때문에 나일강변 가까이 착륙해 큰 사고가 날 뻔했다 한다.) 역시나 스무 명이 넘는 크루들이 달라붙어 열기구를 가라앉혔다. 몇십 개의 벌룬이 각각 열 명에서 스무 명 가량의 관광객을 태우는데, 아침 이동부터 생각하면 이 벌룬 투어가 룩소르에 굉장히 큰 외화벌이 비지니스로 자리 잡고 있겠다는 짐작을.
음식
룩소르에선 카이로보다도 무척 잘 먹고 지냈다. 호텔 근처에 괜찮은 레스토랑들이 있어 이집트 음식을 실컷 먹었다.
소고기 타진. 한국처럼 뜨거운 뚝배기에 담겨. 보양식 그 자체, 잘 끓인 녹두 삼계탕 같은 텍스쳐. 오랜만에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이른 새벽 서안 투어를 떠나려 조식 대신 도시락을 신청해 봤다. 근데 어딜 들고 가서 먹기 쉬운 포장이 아니라, 방에서 일출을 보며 호다닥 먹고 길을 나섰다. 근데 금연룸인데 왜 곳곳에 재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서안 투어를 가서 자전거를 빌리려는데 렌탈샵이 아직 문을 열지 않아, 옆 카페에서 터키쉬 커피를 한 잔 시켜 하루를 시작했다. 맛있고 따뜻하고 다 좋은데, 이집트는 파리가 많은 게 문제다.
어느 날은 도저히 식당을 찾아 나설 힘이 없어 오징어 짬뽕에 이집트 사이다로 때우기도 했다. 나일강 건너 불 켜진 서안의 야경을 보며 먹는 오짬이란.
조식으로 나온 정체불명의 포도알. 식감이 바나나처럼 결이 살아있어, 이게 도대체 무슨 과일인지 의문이었다. 서버에게 물어보니 데이츠, 대추야자라 한다. 건조하지 않은 생 대추야자를 먹어보는 게 처음이라 무척 낯설었다.
렌틸 수프와 석류 주스. 렌틸 수프에 무슨 마법을 부린 것인지, 너무 향긋하고 고소했다. 사장님께 레시피를 물어봤지만 묵묵부답이셨다.
오랜만에 고기를 먹었다. 코프타도 좋지만, 결이 살아있는 고기를 제대로 먹은 것이 얼마 만인지. 이집트의 식당들에서 밥에 작은 뽀시래기같은 것들이 항상 함께 볶아져있어 무엇인지 궁금했다. 채 썬 채소일 거라 생각했는데, 나중에 결제할 때 사장님께 여쭤보니 버미셀리라 한다. 파스타였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