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소르: 서안 / Luxor: West Bank

이번 이집트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여행지가 어디였냐 질문을 받는다면 룩소르 서안이라 대답하고 싶다.

이집트 신왕국 시대에 접어들어 많은 왕들이 피라미드를 짓는 대신 왕가의 계곡이라 불리는 사막의 산 한 자락에 굴을 뚫고 관을 안치하기 시작했다 한다. 눈에 띄지 않아 무덤인지 알 수 없게 해 도굴을 피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했던 그들의 필사적인 몸부림. 결국 도굴을 피할 수는 없었지만.

투탕카멘을 비롯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람세스 2세, 하트셉수트, 세티 1세 같은 주요 파라오들의 무덤이 모두 서안에 있었다. 파라오들의 무덤뿐만 아니라 당시의 재상, 서민들의 무덤도 저 모래산 한 자락 어딘가에 흩어져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어쨌거나 그들에겐 해가 저무는 완전한 죽음의 (그리고 부활의) 땅으로.

룩소르 패스를 구매했다. 무제한으로 대다수의 유적지를 무료로 관람할 수 있었다. 모든 유적지를 돌아다녀 보고 싶었는데, 너무 넓고 힐리한 땅이라 체력이 받쳐주지 않았고, 집요하게 달라붙는 관리인들의 호객을 떨쳐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동안의 선착장에서 바라본 서안의 모습.



현지인들이 타는 로컬 페리를 타고 이동했다. 물론 현지인과 외국인은 다른 가격을 받는 선박.



택시를 대절할까 했는데, 카이로에서 당한 게 있던 터라.. 택시 기사의 눈치 없이 내가 원하는 만큼 유적지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고 원하는 만큼 유적지를 방문하고 싶었다. 후기가 적어 좀 걱정했지만, 나 자신을 믿고 자전거를 빌렸다.



되돌이켜 보면 무척 잘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사람들이 엄살이 심했을 뿐, 다른 관광지에 비해 그렇게 급경사가 펼쳐진 곳은 아니었다. 완만한 경사가 계속해 이뤄질 뿐이라, 평소에 자전거에 익숙하다면 충분히. 다만 모래먼지나 자전거로 달려드는 아이들 호객은 좀 편치 않긴 했지만서도.



서안의 주택가를 지나 사막의 지형으로 접어들면 만나게 되는 풍경. 저 작은 구멍들이 모두 발굴된 무덤들. 파라오가 아닌 귀족이나 일꾼들의 무덤.



곳곳에 알라바스터 공방이 있었다. 할아버지들이 공방 앞에 앉아 쇠를 돌리며 돌을 깎고 계시는데, 자전거를 타고 멀리서 지나는 나를 볼 때마다 들렀다 가라고 소리치는 기력이 대단하셨다.



카이로 패스를 구매하면 룩소르 패스가 반값. 네페르타리의 무덤이 잠정적으로 폐쇄된 터라 프리미엄이 아닌 스탠다드 패스를 구매했다. 대부분의 관리인들은 룩소르 패스를 반기지 않는 기분이었다. (아무래도 실제로 본인들에게 돈이 오가야 어떤 보너스가 있는 것일까?) 왕가의 계곡의 어느 무덤에서 한 관리인에게 룩소르 패스를 보였을 때, 굉장히 반기시며 룩소르 패스가 더 활성화되어야 한다~ 방긋 웃어주실 때 비로소 마음이 좀 놓였던 것 같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외국인들이 미국 달러로 구매하는 이 패스들이 이집트 관광업을 더 살리는 방향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해 주시는 분도 계시구나, 마음이 녹았다.

아참, 근데 룩소르 패스를 살 때 아주 고역이었다. 이미 사 본 사람들의 간증으로 예상은 하고 갔지만… 일반 티켓 오피스가 아닌 진실의 방으로 조용히 끌려가 당당히 뒷돈을 요구받았다. 잔돈이 없다 잡아떼고 어찌저찌했는데, 또 1달러는 안 받는다를 시전하시고.. 이집트 파운드로 차액을 내려면 두 배는 내야 한다.. 숨겨뒀던 큰 액수의 달러를 내고 달러로 거스름돈을 돌려받아 제값만 내고 구매에 성공. 이런 official한 것들부터 흔들리는 이집트는 정말 질려버린다.



심지어 각 유적지의 주차장에 자전거를 주차할 때도 쉽지 않았다. 멀쩡한 주차장에 주차를 하는데 여기엔 세울 수 없다며 엄포를 놓으며 본인의 사적인 주차장으로 유도해 뒷돈을 챙기려는 그들.. 어림없지..! 안 들린다를 시전하고 자전거를 얼른 묶어놓고 도망치기 일쑤였다.



이집트 관광지에서 아주 잦게 볼 수 있는 관경. 이미 돈을 주고 들어간 관광지지만, 저길 지키고 있는 관리인에게 뒷돈을 챙겨주면 금지된 구역에 들어서거나, 그들이 핸드폰을 가져가 촬영을 해다 주기도 했다. 사실 왜 금지되었는지도 모르겠는 곳이 태반이었다. 뒷돈을 달라 관광객을 설득하는 모습을 포착해 한 컷…


왕가의 계곡

굽이굽이 펼쳐진 석회암 계곡 사이로 수십 개의 파라오 무덤이 발견되었다. 아직도 발굴이 한창이었으며, 들어갈 수 있는 무덤보다 들어갈 수 없는 무덤이 더 많았다. 입장권으로는 최대 3개의 무덤까지만 들어갈 수 있지만, 룩소르 패스로는 제한이 없어 계곡의 가장 안쪽부터 들어갈 수 있는 모든 무덤을 하나하나 방문해 봤다.



계곡의 지도. 평평한 지형이 아니라 길이 난 골이 언덕의 골짜기라 한참을 오르기도 했다.





저 위쪽 꼭대기에 위치한 아이(Ay)의 무덤에도 가보고 싶었는데, 저긴 체력 이슈로.. 바로 올라갈 수 없고 등성이를 타고 한참을 올라가야 했다.



단단한 돌이 아니라 부서지는 석회암처럼 보였다. 지금까지 무너지거나 소실되지 않고 어떻게 무덤이 원형을 유지했는지 무척 신기했다.





안쪽에 KV20 하트셉수트와 투트모세 1세의 무덤을 보고 싶었는데, 왼쪽에 서계신 아저씨가 공사 중이라며 막아서셨다. 바구니에 계속 돌을 담아다가 퍼내고 계셨는데, 아직도 발굴이 남은 걸까?



지금으로부터 2세기 전부터 탐사가 진행되었던 만큼, 곳곳에 세월의 떼가 묻은 레이블이 많았다. 고고학의 현장에 똑떨어진 기분이었다.

KV62: 투탕카멘


하루에 방문객 수가 정해져 있다는 투탕카멘의 무덤부터 들어가 봤다. 온전한 상태로 발견된 최초의 무덤.



그동안 피라미드의 매장실을 들어가기 위해 고생했던 나날이 떠올랐다. 허리를 숙이고 쪼그려 앉아 백 미터를 넘게 내려갔다 다시 기어 올라가던 나날은 안녕.



너무 약한 석재가 아닐까, 수십 세기를 견뎠지만 언젠가 다시 무(無)로 돌아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입구에 바로 투탕카멘의 미라가 놓여 있었다. 너무 작고 아담한 미라였다.



다른 무덤에 비해 굉장히 작은 무덤이었다. 그가 누워있던 석관. 화려한 벽화.



오른편에 보이는 통로가 수많은 부장품이 들어있던 방으로 향하는 작은 문이었다.



그의 육신은 세상 모든 이들에게 공유되었지만, 그의 영혼은 결국 영원한 생명에 이르렀을지 궁금했다.



너무 일찍 떠나버린 생명의 영원한 부활을 꿈꾸는 남겨진 자들의 염원이 느껴지는 무덤이었다.

KV15: 세티 2세


왕가의 계곡에 있는 무덤의 일반적인 입구. 벤치에 앉아 계신 관리인 아저씨에게 티켓을 보여주고 철문 안으로 들어선다. 서서 걸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



무덤 입구에는 항상 무덤의 조감도가 그려져 있었다. 눈여겨볼 만한 벽화나 유물들의 사진도 함께 레이블링 되어있어 관람에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나 무덤 내부에서는 인터넷이 되지 않기에, 미리 사진을 찍어가 해석을 읽곤 했다. 무덤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 이렇게 긴 통로가 아래로 뚫려 있고, 그 긴 통로를 벽화와 히에로글리프로 가득 채워두었다. 통로의 끝에 석관이 놓여있다.



대부분의 무덤의 입구를 지키는 호루스.




같은 문구를 반복해 새기는 집념.



밑그림만 그려놓고 아직 파내지 않은 벽화가 무척 새로웠다.





무덤에 갇힌 영혼이 세상 밖으로 드나들었을 길. 오래전 파라오의 고된 영혼을 그려보다.

KV14: 타우스레트, 세트나크테

세트나크테가 선조인 타우스레트의 무덤을 빼앗아 이름을 지우고 자신의 무덤으로 사용했다고. 이집트 유적에서 유물을 뺏고, 이름을 지우고, 자신의 이름을 새기는 행위가 너무 빈번하게 일어난 것 같아 그러려니 했다.




회반죽을 덧발라 타우스레트 여왕의 모습을 지우고 자신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는 세트나크테.





그도 결국 영원한 생명을 얻었을지.

KV47: 십타


왕가의 계곡에서 처음으로 마주한 비비드한 색감의 벽화에 무척 놀랐다. 이후에 방문한 벽화들에서도 본연의 채색을 가진 무덤을 잦게 만나 익숙해졌지만, 이때의 놀라움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까 무덤을 빼앗긴 타우스레트가 이 무덤을 자신의 무덤으로 만들려고 했던(…) 흔적이 발견되었다던데, 회반죽은 그래서 발라진 것인지 이후에 발라진 것인지 궁금했다.


KV11: 람세스 3세

한참 먼 후손이지만 람세스 2세에 이어 그 이름을 가져다 쓴 기백을 가진 람세스 3세의 무덤. 처음에 다른 이의 무덤으로 파여지다가 다른 무덤과 충돌하는 바람에 멈췄고, 그걸 다시 람세스 3세가 마저 끝내 본인의 무덤으로 사용했다는 것 같다.






안쪽의 매장실 이후로 더 긴 복도가 남아있는데, 어떤 대학의 발굴 조사가 이어지고 있어 더 이상의 입장은 불가했다.




마치 힌두교의 우유바다 휘젓기같다.





KV9: 람세스 5세, 6세

본디 람세스 5세의 무덤이지만 6세가 빼앗아 자신의 무덤으로 만들어버린 곳.







무덤까지 데려가는 포로들.


KV16: 람세스 1세


관리인의 이슬람 기도를 위해 펼쳐진 카페트.



방치된 소화기.



KV17: 세티 1세

2000 이집트 파운드, 우리 돈으로 약 6만원 정도의 티켓을 별도로 구매해야 들어갈 수 있는 세티 1세의 무덤.



람세스 2세의 아버지로 현재 오픈한 왕가의 계곡의 무덤 중 가장 크고 화려하게 느껴졌다.



처음 입구에선 많이 낡아진 벽화를 보며 이거 잘못 생각한 건가 싶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다른 무덤과 달리 음각이 아닌 양각 부조란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라버렸다.



미완성된 벽화. 웹툰의 원형 같았다.




너무 크고 화려했던 매장실.




이집트 신화를 그린 것이겠지만, 우주의 신화같이 느껴졌다.



아치 속 안쪽 깊은 공간은 닫혀있었다.




다른 무덤에 비해 구조가 복잡했다. 일직선의 복도의 끝에 매장실이 놓여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방으로 갈라져 있고 조금씩 꺾어 들어가야 매장실에 도달할 수 있는 구조.



예전엔 이곳에 물이 가득 차 있어 복도를 넘어올 수 없었다 한다. 지금은 물을 빼고 다리를 놓아 이동할 수 있다.




미완성의 벽화. 숙련된 기술자가 하루에 새길 수 있는 글자의 양이 어느 정도였을까.



묻힌지 얼마 되지 않아 금방 도굴된 무덤이라지만, 결국 세티 1세는 갈망하던 영원한 생명을 얻었을지.

KV8: 메르넵타

람세스 2세의 아들 메르넵타의 무덤. 람세스 2세가 90살까지 장수하는 바람에 60대가 되어서야 왕위에 오른 비운의 파라오.





KV6: 람세스 9세


룩소르에서 마주친 김도영…



아누비스인 걸까? 저렇게 귀엽게 생긴 강아지는 처음이라 굉장히 낯설다.



어딘가 다른 무덤과는 기하학적으로 조금 다른 구도의 벽화가 많았다.




KV2: 람세스 4세


아주 고대부터 도굴당해 그리스인들부터 나폴레옹의 부관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다는 람세스 4세의 무덤.






거대한 석관과 화려한 벽화가 여전히 위용을 떨치는 느낌이었다.


KV1: 람세스 7세

마찬가지로 고대에 도굴당해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다는 람세스 7세의 무덤. KV 뒤의 숫자가 발굴된 순서대로 이름이 붙으니, 도대체 언제부터 열려있었다는 건지 가늠도 되지 않는다.






음각이나 양각으로 파내지 않고 벽에 민자로 그린 그림이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다.




Closed

오픈되지 않고 닫힌 무덤들. 가보고 싶었던 무덤이 몇 개 포함되어 있어 무척 아쉬웠다.



KV7 람세스 2세



KV18 람세스 5세



KV31



KV34 투트모세 3세. 나도 모르고 가까이 다가간 아무도 몰랐는데, 저 여성분이 서계신 오른편 계단에 아주 미세한 초록색 끈이 통행을 금지하고 있었다. 그 끈을 직접 확인하러 가신 분ㅎㅎ..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면 등 뒤로 펼쳐진 왕가의 계곡의 전경을 볼 수 있는 정말 장관이었을 텐데, 아쉽다.


하트셉수트 장제전

룩소르 서안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단연코 하트셉수트 여왕의 장례 신전이었다. 이번에 접하게 된 이집트 유적과 유물 중 이만큼의 미적인 아름다움을 느낀 적이 있던가? 장제전은 파라오의 살아생전 본인이 직접 짓는 것으로, 사후 육신은 왕가의 계곡 어딘가에 묻히지만 영혼은 이 장례신전을 오가며 죽은 파라오가 영원한 생명을 향해가는데 일조한 신전이라 한다.



멀리서도 계곡의 한 단면에 박힌 장제전을 구경할 수 있다.



주차장에 자전거를 세우고 걸어 들어간다. 멀리서는 가늠이 되지 않는 구조.



가까이 다가가면 테라스의 입체적인 구조가 들어온다.



어떻게 돌을 깎아 경사를 만들었을지 궁금해서.



반복되는 하트셉수트 여왕의 석상.



남편인 투트모세 2세가 죽고 후계자인 투트모세 3세가 왕위에 집권하기 전까지 파라오의 역할을 수행했던 여왕이라 한다. 왕권 강화를 위해서인지, 어떤 이유인지 지금의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수염을 단 남성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여왕의 모습이 어딘가 안타까웠다.



장제전의 길을 따라 쭉 따라가면 나일강을 건너 카르낙 신전의 입구와 맞닿아 있다. 그 옛날에 이 먼 거리의 측량을 어떻게 한 것인지 너무 신기하다.



테라스를 모두 올라가면 안쪽의 성소에 들어설 수 있다.




야자나무를 닮은 둥근 기둥으로 가득 찼던 신전들과 달리 네모 반듯한 기둥의 신전이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모랫빛이 아니라 화려하게 채색되었을 이 신전의 모습이 잘 상상되지 않는다.



옆쪽엔 중왕국의 멘투호테프 2세의 장제전의 흔적이 남아있다. 500년을 훌쩍 넘겨 그 옆에 지어진 하트셉수트의 장제전이 그 장제전의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라는데, 지금은 하트셉수트 장제전만 홀로 남은 이곳이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되지 않는다.


메디넷 하부

람세스 3세의 장제전인 메디넷 하부에 들렀다.




룩소르 서안의 평지에 놓인 신전 중 가장 깨끗하게 보존된 신전이었다.



람세스 2세만큼이나 자기애가 아주 대단했던 람세스 3세의 패기가 곳곳에서 느껴졌다.







사라진 기둥들은 모두 어디에.



다른 곳에 비해 굉장히 깊게 파인 부조가 인상적이었다.



라메세움

람세스 2세의 장제전.




처음 이집트에 가봐야겠다 생각을 하게 만든 대영박물관의 람세스 2세 석상이 이곳에 있던 석상이라 한다.



이집트 어디에나 자신의 이름을 새기고 석상을 만들어둔 람세스 2세. 하트셉수트의 장제전을 보고 오니, 어딘가 람세스 2세의 미술이 투박하게 느껴졌다.






오랜 세월 신전을 지키고 있었을 아누비스를 뒤로한 채 다음 장소로 길을 나섰다.


멤논 거상


서안의 선착장에서 유적지로 향하는 길목에 덩그러니 놓인 두 개의 거상. 원래는 아멘호테프 3세 장제전에 있던 석상인데, 그리스 전설 속 왕인 멤논의 이름이 붙여져 버렸다.


아멘호테프 3세 석상

마찬가지로 아멘호테프 3세의 신전에 있었어야 할 다른 석상.




세티1세 장제전

왕가의 계곡에서 가장 화려한 무덤을 가진 세티 1세임에도, 장제전은 그렇지 않아 놀라웠다. 많이 닳고 무너져 그런 것이겠지만.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장제전이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위용이 느껴진다 해야 하나?








상하이집트관만 남아버린 석상. 머리와 몸은 어디로.


카터 하우스

투탕카멘의 무덤을 비롯해 여러 유적을 발굴해낸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의 집.






오른쪽이 하워드 카터.



그가 직접 그린 수채화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당시 유물과 유적을 찍은 필름을 현상하던 암실이 집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거리 모습

자전거를 타는 덕분에, 버스나 택시를 탔다면 선착장에서 유적지로 바로 이동하는 바람에 모르고 지나쳤을 곳들을 느린 속도로 눈에 담을 수 있어 좋았다. 서안을 죽음의 땅이라 부른다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살며 생활을 이어나가는 땅이라는 것이 흥미로웠다.




석양이 질 무렵, 서안으로 퇴근하는 사람들.



당나귀가 이끄는 달구지를 타고 이동하는 모자.





붉은 히비스커스 밭이 석회암 계곡과 대비를 이루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펠루카가 잔뜩 띄워진 나일강을 건너 동안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