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소르: 동안 / Luxor: East Bank
룩소르 동안은 서안과 달리 너른 평지다. 카르낙 신전과 룩소르 신전이라는 걸출한 두 신전이 3km 간격으로 떨어져 세워져있다. 시내엔 작지만 알찬 박물관들이 있어 시간을 떼우기 좋았다.
서안과 달리 택시로 이동하고 땀을 흘릴 일도 없었건만 너무 많은 사람과 자동차 매연, 그런 일상의 매캐함들이 금방 지치게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서안을 구경할 때보다 훨씬 더 몸도 마음도 공허하게 돌아다녔다.
박물관
룩소르 박물관
굉장히 특이하게 생긴 구조의 외부 복도를 가진 박물관이었다. 건물이 주는 아름다움에서부터 박물관에 대한 기대가 생기기 시작.
깨진채 발견된 유물들의 복원 과정을 담은 사진과
복원 후 결과를 비교할 수 있어 좋았다.
전쟁 포로를 석상으로 만들어 꼭 무덤에 같이 넣어야만 했던 파라오들의 마음 대단해 정말~
왕가의 계곡에서 발견되었다는, 무덤 설계도. 정말 신기했다.
건설에 사용되던 자.
무덤에서 발견된 함께 매장된 식물들. 바스러져버린 수많은 나의 나뭇잎 책갈피를 떠올렸다. 수십 세기를 버텨낸 조직이 대단하다. 카이로 대박물관에서도 봤지만 막상 사진은 찍지 못했던 것을 룩소르에서 찍어본다.
잔뜩 구경한 아케나톤의 석상들.
후대에 대부분 파괴되어 정말 희귀하다던 아케나톤의 이름을 적은 카르트슈.
또 대단하게 함께 묻힌 샤브티. 모두 영원의 땅에서 각자 맡은 소명을 다 하고 있을지.
작은 크기의 샤브티.
생긴 건 귀엽지만, 속은 그렇지 않은, 미라의 장기가 담긴 카노푸스 단지.
미라화 박물관
미라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소개한다는 미라화 박물관에 가봤다.
작은 사이즈였지만 알찼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미라를 만들고, 그 영혼이 어떻게 부활하는지를 일러스트로 그려두었다.
모든 과정을 거쳐
결국 최후의 심판을 통과하고
미라화된 온전한 육신이 존재한다면, 찾아온 영혼과 결합해 완전한 부활을.
문득 그들이 그토록 간절히 원한 부활한 세계는 어떤 세계일지 궁금했다. 그림에 나온 것처럼, 식량이 풍부하고 행복이 넘치는 평온한 일상의 세계였을지, 모든 것이 밝고 긍정으로만 가득한 천국의 세계였을지.
장기를 담던 카노푸스 단자.
사체에서 뇌를 비롯한 장기를 긁어낼 때 사용하던 도구들.
양의 미라. 오른편에 원숭이의 미라도 있었는데, 사진은 있지만 너무 사실적이라 사진은 생략..
미라화 과정에서 사체를 올려두던 침대.
물고기를 비롯한 여러 동물의 미라.
고양이의 미라.
머미 마스크가 미라에 직접 쓰인 모습은 처음 본다.
두개골에서 뇌를 어떻게 제거했는지의 단면.
신전
카르낙 신전
중왕국부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까지 너무 많은 파라오들이 수정에 수정을 거친 신전이라, 단 하나의 특징을 보여준다기 보다 복합 신전 단지 같은 느낌의 거대한 신전 단지였다. “역사는 끊임없이 흐른다"라는 말을 몸소 느끼는 체험이었다.
외부에선 커다란 외벽만이 보일뿐 내부의 크기가 가늠되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축구장 26개의 면적이라 한다. 어쩐지 다리가 너무 아프더라..
수많은 스핑크스 상을 지나쳐 신전으로 입장한다.
입장 후 우측으로 꺾어져 들어간 어떤 작은방. 이번 이집트 여행을 다니며 본 대다수의 신전들은 원래 위쪽 천장이 돌로 막혀있거나 이 사진처럼 작은 구멍만이 뚫려 있을 것이라 했다.
그 구멍 틈새로 퍼지는 빛이 어찌나 아름답고 신비하던지. 비로소 신전에 들어왔다는 느낌을 확 받았다.
대열주가 놓인 공간으로 들어간다.
백 개가 넘는 거대한 기둥이 오와 열을 맞춰 서있다. 절경이었다.
파피루스 나무를 닮게 만들었다는 기둥들.
과거엔 이곳이 모두 천장으로 덮여 있었을 것이라는데, 그때의 웅장함을 상상했다.
그리고 마주친 하트셉수트 여왕의 오벨리스크.
후임자인 투트모세 3세가 오벨리스크 주위에 벽을 쳐 가려놨었다 한다. 덕분에 오벨리스크가 훼손 없이 온전하게 발견되었다고.
카르낙 신전은 아직도 복원 중으로 곳곳에 복원 작업의 중간 결과물들을 볼 수 있었다. 쏟아지는 유물을 감당하지 못하는지, 어딘가 조립의 방향이 잘못된 복원 결과도 볼 수 있었다. 의도된 것일까?
어떤 문자인지 가늠되지 않는 것.
기둥의 단면. 통짜의 돌을 깎았을 것이라 생각지 못했다.
카르낙 신전에 놓인 스캐럽 석상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몇 바퀴 돌면 행운이 온다고. 끊임없이 뱅뱅 도는 사람들 틈새로 나도 소원을 고민하며 걸어봤다.
성벽을 빠져나오며. 저 돌무더기의 흔적이 성벽을 쌓은 과정의 흔적이라 한다. 너무 많은 왕들이 힘을 과시하려 이름을 새기고, 신전들을 추가해 세우고, 너무 어질어질했던 카르낙 신전이었다. 손에 잡히지 않는 단원을 시험공부하는 기분이었다.
스핑크스 거리
카르낙 신전에서 룩소르 신전까지 3km로 이어지는 길을 스핑크스 거리라 부른다. 고대에 아문 신의 조각상을 태양의 방주에 태워 카르낙 신전으로부터 룩소르 신전에 이르는 이 길을 따라 모셨다 한다. 현재는 일부의 스핑크스만 남아있는데, 이집트 정부가 열심히 복원 중이라고.
룩소르 신전
카르낙 신전에서 룩소르 신전까지 걸어오진 못하고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룩소르 신전 입구에서 바라본 스핑크스 거리. 저 방주를 타고 아문 신이 모셔져 왔을 광경을 상상했다.
아멘호테프 3세가 지어 람세스 2세가 증축하고, 그 이후에도 조금씩 변형되어온 룩소르 신전. 결국엔 이슬람교를 받아들이며 모스크까지 세워진 어딘가 기괴한 신전이었다. 신전 앞에 놓인 오벨리스크가 유명한데, 원래는 한 쌍이었지만 현재 하나는 파리 콩코드 광장에…!
탑문을 들어서면 저 멀리 람세스 2세의 석상이 보인다.
다만 완전한 대칭의 구조가 아니라 어딘가 삐딱한 사다리꼴의 광장을 지나야 했다.
모스크. 지금도 사용한다는 것 같은데, 입장이 가능한 지는 모르겠다.
또세스 2세의 투박함.
이후 콥트 교회의 사원으로 쓰이기도 했다 한다. 예수님과 12제자의 흔적이 남아있다.
야외 공간에 놓인 채 아직 맞춰지지 못한 것들.
룩소르 신전 한 켠에 앉아 신전의 기둥 사이로 스며드는 석양을 즐겼다.
람세스 2세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이집트 유적 여행의 마침표를 찍었다.
룩소르 시장
호텔로 돌아가 짐을 챙겨 공항으로 향하기 전, 룩소르 신전 옆의 시장에 들렀다. 호객이 많긴 했지만, 이때가 이집트 여행 실력의 최고조였기 때문에 저렴한 가격으로 마그넷을 사 왔다. 영원한 생명을 꿈꾸며 두 개의 앙크를. 하나는 내가, 하나는 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