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여름, 완주 / My First Summer, Wanju
Keum Hee KIM / DLKL / KOBIC / ISBN-13
쏟아지는 마케팅에 당해 책을 봐야겠단 생각을 했다. 올 봄에 읽었던 <놀이터는 24시>의 영향도 있었다. 그 책이 아니었다면 김금희 작가를 몰랐을테니까. 글자책을 구하려 하다, 출판사의 원 의도대로 오디오북으로 읽게 되었다. 듣게되었다고 적어야 하려나. 어쨌거나.
거진 5시간에 달하는 분량을 꼼짝없이 들어야하는 것이 이따금씩은 지치기도 하고, 이따금씩은 즐겁기도 했다. 두 손과 머리가 자유롭지 않은 시간엔 오디오북이 반가웠고, 와다다 쏟아지는 정보를 나의 속도와는 다르게 받아들여야 할 땐 좀 지치기도 했다. 어찌되었건 러닝머신을 달리며, 거리를 걸으며, 그리고 운전을 하며 마칠 수 있어 좋았던 감정이 더 크다.
목소리만 들어도 누구인지 얼굴이 그려지는 배우들의 이미지가 겹쳐지는 것이 좋기도 하고 좋지 않기도 했다. 상상의 여백이 남다르게 크다는 것이 책의 장점이라 생각하는데 그 점에 좀 제약을 받는 느낌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극에 녹아드는 배우들의 목소리가 책에 생명을 불어넣기도해 결국은 제로썸 게임이 되긴 했다.
누구나 고단한 구석이 하나쯤은 있는 세상인만큼, 누구나 한 구석쯤은 타인에게 숨 쉴 구멍이 되어줄 수 있다는 메시지가 강하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아낌없이 주고받는데 익숙해지는, 판타지스러울만큼 따뜻한 세상. 우리는 간간히 그런 세상의 존재에 대해 간증을 보며 삶을 버텨낼 힘을 얻는데, 이 책이 소설일지언정 그런 간증 중 하나가 되어주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책을 끝내니 커피를 마시고 난 뒤의 기분과 비슷했다. 뭔가 달달한 커피를 다 마시고 입안에 남은 약간의 씁쓸한 끈적임 같은 것. 이유는 모르겠는데 콩닥임보다는 그런 쓸쓸함이 더 크게 남았다. 어쩌면 한바탕 시끌벅적 명절을 끝내고 각자의 집으로 뿔뿔이 흩어져야하는 그런 아련한 이별같은 느낌이었을까.
DMZ 피스 트레인 나들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포천 산정호수에 들러 한 바퀴를 걸으며 끝냈다. 경기도의 한적한 산세와 물세가 완주를 닮은 것만 같아 오감을 만족시키는 독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