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DMZ 피스트레인 / 2025 DMZ Peace Train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철원에서 열린 2025 DMZ 피스트레인에 다녀왔다. 이번엔 좀 낙낙한 일정으로 방문하며 철원에서 가보고 싶었던 곳들에도, 먹어보고 싶은 것들에도 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다.
여전히 주최측도 참여하는 사람들도 센스가 터지는 명실상부 최고의 축제같지만, 왠지 뭔가 삐그덕거림을 좀 느낀 해이기도 했다. 나의 나이 들어감때문인지 정말 축제가 변해가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쩐지 이번이 마지막 DMZ 참석일 것 같다는 강한 확신이 들기도 했다.
올해도 여김없이 페스티벌 메이트 짜와 함께.
철원 관광
이른 아침 출발해도 장장 4시간이 걸리는 철원. 도착하니 직장인의 점심 시간과 겹쳐버렸다. 어찌되었거나 가보고 싶던 신철원의 철원막국수로.
김영철의 동네한바퀴에서 봤던 지붕을 뚫은 밤나무.
할머니가 앉아 계셨다는 의자도 여전히.
식사를 하고선 신철원 전통시장을 구경하며 소화를 시켰다.
짜요가 추천했던 단풍도넛을 갔다. 고객지원센터 내에 있을 줄은 몰랐는데.
센터 뒷켠에 아늑한 정원을 감싸고 있었는데 동네 직장인들의 사랑방같은 느낌이었다.
커피와 도넛을 시켜 잠깐 동안의 컴퓨터 타임을 가졌다.
철원은 동네마다 구획이 확실한 것이 좀 신기하다. 그런데 또 그 중 한 구획인 신철원 내부에서도 또다른 구획이 확실하구나.
철원 곳곳에 축제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나중에 택시기사님께 들은 바로는 축제가 열리는 줄도 잘 모르셨던 것 같은데, 좀 안타까웠다. 현지 분들의 많은 참여를 위해 “사랑과 평화, 김현철"로 시작하는 라인업으로 어필을 해도 통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도.
철원읍으로 이동해 소이산 모노레일을 탈 생각이었다. 아주 대단한 경사의 모노레일이었다.
실제로 탑승해보니 안전벨트 없이는 굉장히 곤란한 경사와 속도의 열차였다. 어쨌거나 통창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실린 숲향을 잔뜩 맡으며 정상으로 편하게 이동했다.
소이산 정상에서 보이는 철원 평야. 저 멀리 보이는 산들 중 일부는 북한이겠다. 오대쌀의 고향 철원의 평야가 현무암 용암지대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정상에서는 백마고지와 화살머리고지도 볼 수 있었는데, 치열하고도 잔혹했을 70년 전의 이 곳을 상상했다.
오래된 곳들을 보수하고 발전시키며 어떻게든 관광산업을 좀 키워보려는 철원군의 의지가 곳곳에 느껴지기도 했다. 부디 그 예산들이 토목으로만 흘러가면 안될텐데, 하는 생각도.
오랜만에 보는 노동당사.
지난 겨울에 보고온 히로시마 원폭돔이 생각났다. 실제로 사용되던 공간이 폐허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은 언제나 마음을 좀 울적하게 만든다.
보수 공수에 들어갔었다는 얘기는 들었었는데, 듣던대로 이전에 왔을 때와 다르게 보강이 되어있는 모습이었다.
노동당사 앞쪽도 철원역사문화공원으로 잔뜩 꾸며 놓았는데, 어딘가 핀트가 살짝 이상한 그런 공간이었다.
숙소에서 짜를 만나 짐을 풀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하나로마트에 들러 장을 보고 은하수교 쪽으로 이동했다. 전국에 흩어져있는 흥이 넘치는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현수막을 구경했다.
이틀간 고석정에서 열린 축제를 열심히 참석하고 마지막날 다시 은하수교에 왔다. 첫 날 방문했을 때는 운영이 마감되었던터라 마지막날 다시 방문했다. 한탄강을 가로지르는 보행교.
다리 건너에 있는 횃불 전망대에 올랐다.
한탄강에 놓인 거대한 바위들이 웅장했다. 높이가 가늠이 되지 않아 돌을 주어다 짜와 함께 다리 아래로 떨어트려보기도 했는데, 생각보다 긴 체공시간에 좀 등골이 오싹해지는 시간이었다. 덕분에 짜요가 추천한 Bjork의 음악을 함께 들으며 다리를 빠져나왔다.
주말에 열린 dmz마켓에 들렀다. 이번 여행에서 들기름을 너무 맛있게 먹은터라 한 병 사가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또바기 농장의 할아버지께서 직접 깨를 볶고 기름을 짜고 계시길래 한 병 사왔다. 이전에 노동당사 앞에 있을 때도 방문했던 마켓이었는데 이젠 상설공간을 갖게된 것이 보기 좋았다. 판매보다도 주말에 동네 분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우리같은 관광객도 농산물을 꽤나 저렴한 가격에 득템해 갈 수 있기도 하고. 뭐랄까, 따뜻함만 넘치는 좀 판타지스러운 동화같은 공간이었달까. 사실 나는 이때 체크아웃한 펜션에 에어팟을 두고온 줄 알고 정신이 없었는데, 결국 차에서 찾았다. 내가 차에서 허둥거리는동안 짜요가 마켓을 구경하며 이런저런 쇼핑을 했다. 나를 위해 식혜까지 한 포켓 사온 녀석. 그래서 더 그런 동화같은 짠함을 느낀 것일지도 모르겠다.
DMZ 피스트레인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고석정. 한껏 멋을낸 임꺽정 행님을 시작으로.
감자섬 셀카존.
올해의 슬로건은 “춤추고 노래하고 얽히자!”. 점점 더 프로액티브해지는 슬로건에 샤이 코리안으로서 좀 당황하기도 했다.
올해 리프레쉬존에선 타프와 쉘터도 사용가능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돔쉘터를 가져올 걸 그랬나..?!) 멀찍이 돗자리와 의자를 설치했더니 자리가 낙낙해 편하게 있었다.
마음의 평안이 오는 곳.
올해는 이상하리만치 흥미로운 깃발은 없는 느낌이었다.
흙먼지도 여전했다.
올해 가장 달라졌던 것은 러쉬의 참여랄까..! 곳곳에 바디 스프레이를 잔뜩 가져다 놓고 러쉬 직원분들이 계속 난사하신다. 처음엔 코가 너무 얼얼해 기침이 계속 났는데, 나중엔 익숙해졌는지 덤덤해졌다.
화장실도 러쉬와 콜라보를. 다양한 핸드워시와 바디스프레이가 구비되어 있었다. 결정적으로 화장실 모든 칸에서 러쉬향이 진동해 코에 테러를 당하는 일이 없었던 것이 이번 축제에 가장 좋았던 점이었다.
멋진 분들도 다수 출현하셨는데
가장 마음을 울린 분이셨다.
축제장 뒷편의 고석정 강변의 열기도 좋았다.
짜와 나도 잠깐 내려가 발을 담그고 모래에 누워 땀을 식혔다. 집에 돌아오면서 나도 그냥 풍덩 빠져 수영을 할걸, 무척 후회가 되었다. 다시는 후회를 남기지 말자 다짐했다.
분비자 뒷편으로는 키즈존이 있었는데 보기 좋았다. 후지락에서만큼은 아니었지만 시작이 반이니까.
딱히 참여하고 싶은 부스들이 없는 것도 조금 아쉬웠다.
혼자 온 사람들을 위해 주최측에서 배포한 스티커.
애플페이X
올해도 작은 포켓 소주를 뒷주머니에 챙겨 다녔다. 편의점에서 오렌지 주스나 음료수를 사서 펀치로 만들어 먹기도 했다.
신발을 벗어던진 짜. 도시에서는 느끼기 힘든, 시골 소도시의 축제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시간이었다.
공연
딱히 마음을 울리는 공연은 없었다. 어쩌면 그게 이번 축제의 제일 아쉬운 부분이었던 것 같다. 내가 토요일만 끊어서 그런걸까? 일요일까지 있었다면 좀 달랐으려나?
전야제의 까데호. (영상)
까데호2. (영상)
키라라. 이번 축제에서 키라라의 공연이 가장 좋았다. 아직도 입에 일이삼사오육칠팔구십일십이십일십이삼천육백구가 맴돈다. (영상1) (영상2) (영상3) (영상4)
스페셜 스테이지로 철원교회에서 열린 민채영의 공연. (영상)
그리고 김오키.
대만에서 온 The Chairs. (영상)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영상)
BABO. 요즘 DMZ를 비롯한 국내 락페에 등장하는 것을 보며 논란이 좀 있나본데, 논란을 떠나 그냥 음악과 태도에 있어 좀 불호의 무대였다.
여전히 불이 꺼지지 않는 분비자.
남녀노소 누구나 무료로 즐기는 DMZ 피스트레인의 정수같은 공간과 시간이었다.
음식
결국 2막국수를 했다. 마지막날도 내대막국수에 갔는데, 웨이팅이 한 시간이라 돌아서야했다.
이상하게 철원 곳곳에 가는 곳마다 마주친 철원 디어팜 요거트. 처음 마주쳤을 때 이미 한 병 사 마셨었는데, 그 꾸덕함이 기분좋아 계속 사먹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하나로마트에서 막걸리 현황도 파악해두었다. 짜와 두 병을 사다가 숙소 냉장고에 넣어두었었는데 냉장고 고장 이슈로 막걸리 식초가 되어버려 좀 슬퍼졌다.
대신 식당에서 틈틈히 마셨다. 하늘이 내린 살아 숨쉬는 강원도 명주 (옥수수 (외국산)).
만난 요즘 보기 힘든 하이트 캔맥을 한 잔 마시며 전야제를 즐겼다.
두 번째 날 간 막국수 집에서. 다급한 외침.
초가 철원 생막걸리는 부유물이 많아 좀 아쉽다.
씻은지가 들어간 메밀전이 좋았다. 옆 테이블은 예쁘고 하얀 잎으로 만들어 주시고 우리는 겉사귀에 좀 탔지만. 그나저나 보리밥에 뿌려먹으라고 비치해두신 이 집의 들기름이 너무 맛있어 온갖 곳에 들기름을 뿌려 먹었다. 들기름을 생각하니 후기를 쓰는 지금도 군침이 돈다.
우리
러쉬 파란 화장실방에서.
콩국수 연구회 티셔츠와
Matlab 모자를 쓰고 출격.
짜요 덕분에 티격도 대고 외롭지도 않았던, 좀 아프지만 기뻤던 그런 아이러니한 시간이었다. 다음엔 도시에서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