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 Gochang

원래는 속리산 쪽으로 캠핑을 가려 하다가, 어차피 주말 동안 가는 것 좀 더 시간을 꽉꽉 채울 수 있는 곳으로 가보자는 생각에 맵을 뒤적거렸다. 때마침 동호해수욕장 캠핑장에 빈자리가 나기도 했고, 가보고 싶었던 여러 곳을 함께 방문할 수 있을 것 같아 다른 지역의 방문 없이 “고창"에만 푹 빠져보기로 했다.

지난번 부안 여행처럼 신기함의 연속이었다. 왜 진작 와보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의 고즈넉함. 다만, 많은 관광지가 홀로 하는 사색의 여행보단 가족 단위의 체험형 관광에 좀 더 포커스가 맞춰진 것 같아 그 점이 좀 쓸쓸한 맛을 남겼다.

덕분에 다른 지역의 읍성들도 가보고 싶어졌고, 블랙야크 명산100에 대한 의지도 한층 더해왔다. 막걸리 여정에도 ++를 더한 시간이었다.




새벽에 출발해 이른 아침 고창에 떨어졌다. 전날 올까도 싶었는데, 그냥 저녁녘부터 잠들어 이른 새벽 출발하는 것으로 변경. 고창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상태라, 세계유산도시라는 푯말이 의아하면서도 설레게 되는 순간이었다.



일단 선운산으로 향했다.



텅 빈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일주문을 향해 벚꽃길을 걸어갔다.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는데, 대장금 촬영지만 찾아다녀도 전국 팔도의 아름다운 곳은 대부분 방문하게 되는 것 같다. 뭐 대장금뿐만 아니라 이병훈 감독의 대부분의 드라마 로케이션은 정말 믿고 가게 되는 부분..



선운사 일주문을 통과한다.



절을 목전에 두고 등산로로 향한다. 굽이굽이 펼쳐진 차밭이 아름다웠다.



전날까지 며칠 동안 비가 온 터라 계곡물이 졸졸 흘렀다. 등산로가 잘 정비된 것이 아니라, 계곡을 여러 번 가로지르며 젖지 않은 길을 찾아다녀야 했는데, 그마저 소풍처럼 즐거웠다.



활짝 핀, 그리고 저무는 동백꽃을 잔뜩 구경했다. 우리 집 동백나무는 이번 겨우내 풀잎 하나 트이지 못했는데.



삼십여 분을 올라 수리봉에 도착했다. 블랙야크 명산100 인증지라, 여기만 찍고 하산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았는데 여기까지 올라온 김에 능선을 따라 이동해 돌아보기로 했다.



진달래가 곳곳에 활짝 피었다.



저 멀리 선운사의 전경이 보이기도 했다.



<상도>에서 김삿갓과 임상옥이 조우하는 마지막 장면의 촬영지가 선운산이라는 사실을, 고창 여행을 계획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그 촬영 장소가 어디일지를 상상하며 다니다 유력한 곳에서 한 컷.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여기는 아니었다.



능선을 따라 걷다 참당암 어귀에서 산을 완전히 내려왔다. 그리고 도로를 건너 다시 시작되는 산길. 음악 대신 정영음을 들으며 걸었다. 두 편을 들었는데, 하나는 2004년의 4월에 방송된 꽃에 대한 에피소드, 그리고 다른 한하는 정성일 평론가와 아시아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에피소드였다. 전자는 시기적으로 지금과 이어져있는 것 같아 좋았고, 후자는 지아장커 감독에 대한 생각지 못했던 얼굴을 듣게 되어 좋았다.



참당암부터 천왕봉까지 향하는 등산로엔 사람의 발길이 뜸한지 산악회 리본이 뜨문해 길을 찾는 재미가 있었다. 몇 번은 등산로가 아닌 산길을 오른 것 같기도 하다. 모로 가도 결국은 만나게 되어 있으니.



서해랑 길의 일부라는 사실도 오르며 알게 되었다. 드디어 코리아 둘레길의 한 조각을 따라 걷게 되었구나.



그러다 마주친 암릉 구간. 경치를 보자마자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여기가 마지막 촬영지라는 사실을ㅎㅎ… 정말 절경이었다. 장관이었고. 앞에 보이는 천마봉으로 능선을 따라 이동했다.




천마봉에서 바라본 아까의 암릉 구간. 산을 올라야 알게 되는 산의 모습이 무척 감동적이었다.



도솔암 쪽으로 하산했다. 도솔암 마애불 앞에 앉아 땀을 식혔다.




부처님 오신 날 준비가 한참.



선운사로 내려왔다. <우리 옛 건축과 서양 건축의 만남>에서 읽었던 나무 그대로의 형태를 보존해 구불거리는 벽에 대해 상기했다. 아름다웠다.



절 뒤에 동백나무숲이 울창했는데, 조선 성종 때 한 선사가 산불로부터 절을 보호하기 위해 조성했다 한다.



아침에 눈여겨본 선운사 바로 옆 폴 바셋에서 목을 축였다. 선운사 지점에서만 파는 메뉴들이 있었다. 쌍화차를 너무 맛보고 싶었는데 hot only라



대신 오미자 에이드로.



점심은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만인회관에서. 마지막 손님이었는데, 츤데레같은 따뜻한 접객에 기분이 좋아졌다. 아직 다 먹지도 않았는데 자꾸 반찬을 리필해 주시던 사장님. 무척 든든한 소머리국밥이었다.



캠핑장으로 향하는 길, 미당시문학관을 지나쳤다. 서정주의 고향이 고창인 것도 이번에 알게 되었다. 그냥 지나쳤는데, 내려서 방문해 볼걸 그랬나.



동호해변의 국민여가캠핑장. 오늘도 TP를 가져갔다. 돌풍이 불어 좀 걱정이었는데 밤부터는 잦아들었다.



커피를 내려 마시며 바다를 구경했다.



아쉽게도 캠핑장에 머문 시간은 모두 간조 시간이라 텐트 코앞까지 물이 찬 모습을 보진 못했지만, 너른 갯벌을 잔뜩 구경했다.



요가 패드를 개시했다. 경량 스탠드가 있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저녁거리를 사러 읍내로 나섰다. 대마할머니 막걸리라니 무척 궁금한데, 이건 본고장인 영광에 갔을 때 맛보기로.



선운산 생막걸리에 돼지김치두루치기로 저녁을 해결했다. 풍천장어의 고장이라 장어를 먹을까도 했지만, 땡기지도 않고 1인분은 포장이 애매할 것 같아서.



일찍 잠에 들어 오래 잤지만 양옆 텐트의 방해(ㅠㅠ)로 자주 깼다. 새벽녘에 화장실에 다녀올 땐 구름이 걷힌 맑은 하늘에서 잔뜩 쏟아지는 별을 구경하기도 했다. 아침에 눈을 뜨니 간조가 끝나고 점점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커피를 내려 어제 하나로마트서 사 온 깨찰빵과 함께 간단히 아침을 해결했다.



텐트 밖의 맑은 하늘과 바다를 구경하는 아침이 좋았다.



바다에도 들어가 봤는데, 물이 무척 찼다. 해수욕의 시간까지는 좀 더 시일이 걸리겠구나 생각했다.



끝이 없어 보이는 모래사장과, 해송으로 둘러싸인 캠핑장이었는데 생각보다 괜찮아 언젠가 한 번 비슷한 구조의 캠핑장을 또 방문해 봐야겠다 생각했다. 어릴 적 외가 근처라 종종 다니던 만리포, 학암포 해수욕장의 캠핑장의 향수가 남아있는 것인가?



명사십리를 따라



상하면으로 이동한다.



저수지를 끼고 저 멀리 유럽풍의 목장을 발견하는 순간 저기가 바로 상하농원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어이하여 이 바닷가 마을 언저리에 공장을 짓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입장하니 제일 먼저 마주하는 청보리밭.



단순히 농작물이 가득한 밭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목장을 겸하고 있어 이런저런 동물을 잔뜩 볼 수 있었다.



라벤더 밭을 넘어 목장이 펼쳐지고 그 뒤로는 울창한 나무숲이 펼쳐지는 대지였다.



체험목장에 들어섰다 마주한 광경. 굉장히 사람이 주는 먹이에 모든 감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처럼 보여 부담되었다.



뉴질랜드스러운 광경이라 생각했는데, 실제로 롤모델로 삼아 제휴를 맺은 것 같았다.



스마트팜도 구경할 수 있었다.




배민에서 종종 시켜 먹은 스마트팜 딸기의 비밀.



목장을 넘어 숲으로 향하는 길. 부담스러운 시선.



숲길엔 사람이 없어 조용한 산책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왜 이곳의 글램핑장 예약이 치열한지 알 것도 같았다. 홀로 오기엔 적합지 않지만, 어린 자녀와 함께 방문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란 생각을 했다.



매일유업 공장 뒤로 펼쳐지는 바닷가 어귀의 모습. 저 하구 너머는 고창이 아니라 영광이라 한다.



소세지와 주먹밥으로 간단한 점심 요기를 했다. 각각 생각보다 입맛에 맞아 마지막 관문이었던 마켓에서 원재료를 사 올 뻔했지만, 그저 추억으로만 남겼다.



농장 안에 폴바셋에서도 고창 에디션 음료를 판매 중이었다.



이번엔 고창 고구마 라떼를.



농장을 나오는 길, 카스테라를 사 왔다. 집에 돌아와 간식으로 맛있게 먹는 중.



그리고선 학원농장으로 이동했다.



고창 청보리밭 축제는 매년 놓친 것을 후회하는 축제였는데, 드디어 이번엔 제 시기를 맞춰 왔다.



어르신들의 단체 관광버스의 스케일은 정말 징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주차장 한편에 갑자기 상을 펴고 의자를 깔고 식사를 시작하는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젊은 사람들이 절대 따라 할 수 없는 대단함이 있다.



주차장을 나와 밭으로 이동.



청보리뿐만이 아니라 유채꽃도 절정이었다.




그저 아름답다고만 생각하는데, 한 켠에 세워진 보릿고개비를 보니 새삼 푸르름이 서글프게 느껴지기도 했다.





청보리 밭의 색의 음영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알게 되었다.



<쓸쓸하고 찬란하神 - 도깨비>의 한 장면을 여기서 촬영했을 거라 생각지 못했는데..!





학원농장의 뜻이 궁금했는데, 학이 날던 들판이라 한다.



청보리밭 사이를 걷고, 그리고 드라이브를 하다 고창 시내로 이동했다. 가는 길에 잠깐 들린 고인돌 박물관. 다음에 또 고창에 방문하게 된다면 그땐 습지와 함께 선사시대 유적 탐방을 해보고 싶다 생각했다.



그리고선 고창 읍성으로 이동했다.



공주 공산성을 상상하며 갔는데, 훨씬 고즈넉하고 아름다웠다.



간단히 둘러보고 빠져나올 생각이었는데, 그 아름다움에 반해 성곽을 따라 빙 돌아 걸었고, 나중엔 성 안쪽의 숲길도 잔뜩 걸었다. 성 외벽을 따라서도 산책로가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었는데, 거길 걸어보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성을 뺏기고 빼았던 <선덕여왕>을 생각했다. 비록 이 읍성은 조선 단종 때 고을 사람들이 왜적으로부터 도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었다 하지만.



한 바퀴를 걷고 나오는데 3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가파른 길인데 가족 단위의 방문객이 많아 신기했다.



앗.. <미스터 션샤인>이 여기서..!




집으로 돌아가기 전 들린 하나로마트. 3천 원짜리 양배추의 크기가 어마 무시하다.



미나리 300원어치와 입암양조장의 막걸리 한 병, 그리고 상하농장의 식혜를 사서 대전으로 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