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길한 시나리오 선집
Gil-han SONG / KOBIC / ISBN-13
이번 전주영화제에서 <비구니>를 관람한 후 반드시 시나리오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행히 충남대 도서관에 책이 있어 빌려다, 이번 구례 여행에서 읽게 되었다.
사실 이 책에 실린 모든 영화를 다 보지 못해 다른 시나리오는 손도 대지 못했다. 영화를 먼저 보고 시나리오를 음미하고 싶다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읽은 비구니의 여운이 크기에 감상문을 먼저 적고, 이후에 추가적으로 시나리오를 읽게 되면 이 페이지에 감상문을 이어 나가려 한다.
지난번 <비구니> GV에서 김홍준 원장님이 읽어주셨던 추천사뿐만 아니라 임권택 감독, 최민 교수, 송능한 감독의 추천사도 읽어볼 수 있었다.
그의 작품 전체를 관류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인간에 대한 자상한 관심, 각별한 애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추천사: 최민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시인)
<비구니> 시나리오를 먼저 읽고 영화를 봤었다면 감흥이 완전 달라졌을 것이란 인상을 받았다. 대단한 걸작이었고, 왜 배우와 감독을 비롯한 영화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이 작품의 폐기를 아쉬워했는지 십분 느낄 수 있었다.
도연: 우리 사문들이 그렇듯 마음을 문제 삼는 것도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자는 게야. 하지만 마음이란 아무리 찾아도 실체가 없지. 모양도 없고 잡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없는 것일까? 없는 것이라면 아예 이름도 없었을게 아닌가. 그럼 어떤 것이 마음인고? 어떤 것이 내 마음인고? 수행이란 바로 그 마음을 찾아서 닦는 일이지.
S#169. 고속도로를 달리는 승용차 안
수경: (혼잣말처럼) 이렇게도 홀가분한 것을……. 그동안 맑은 하늘에 헛꽃을 보았나보다.
혜진: 모든 형상이란 다 헛되고 거짓된 것이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사람도 별 것 아닌데, 스님 스스로가 그분을 높이 가꿔 오신 것 아닌지요?
송길한 작가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선지자같은 대사들이 결코 척으로 들리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인물과 서사의 흐름이 매끄러워 그 말씀들과 깨달음을 타자화 하지 않고 나의 개인적인 체험으로 돌려버리는 것만 같았다. 최민 교수의 인간에 대한 애정이 있다는 말이 아주 정곡을 찌르는 설명 같았다.
구례 여행의 시작에서 단숨에 읽어버렸다. 덕분에 여행 내내 중용의 삶에 대해 상념에 빠져들었다.
변: <비구니> 시나리오에 보면 그런 말씀이 있어요. ‘이 세상에는 두 가지 극단으로 치우친 길이 있다고, 불타가 말씀하셨다면서 하나는 육체의 요구대로 몸을 내맡겨 버리는 쾌락의 길이요, 또 하나는 육체를 너무 지나치게 학대하는 고행의 길이다. 그 수행에는 모름지기 양극단을 버리고 중도를 배워야 한다’고 하면서 양극, 그러니까 뭐 쾌락의 길이건 학대하는 고행의 길이건 이 양극을 극복한 사람만이 이 길을 갈 수 있다고 하셨는데요, 선생님이 종교의 세계에서 추구하고, 시나리오를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송: 극단의 폐해를 예로 들었는데, 이게 유교에서는 중용이에요. 불교에서는 수행한다면서 너무 자기 학대하고, 아니면 세속을 쫒고 이것 역시 극단인데, 이런 극단 중 어딘가로 치우치면 사람은 망가지게 돼 있어요. 그래서 붓다도 중도를 강조한 것이죠. 나는 깊고 심오한 종교의 의미가 아니더라도 우리 삶 자체에 그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행복이 별 거예요? 돈만 있다고 행복한 건 또 아니거든요. 인간이 살면서 정신적인 질. 말하자면 최상의 질에 어느 정도 근접해 보고, 짧은 세상이지만 거기에 좀 비슷하게라도 살다가는 것이 괜찮은 거 아니겠어요. 그런 소박한 데서 시작된 거지요. 그 무슨 굉장한 것은 아니었다고 봐요.
송길한 작가와 변재란 교수의 대담.
* 2025-05-18: 짝코, 반란, 만다라를 마저 읽었다.
* 2025-05-20: 길소뜸을 읽었다. 영화를 먼저 보고 시나리오를 읽어보니, 시나리오가 정말 탄탄하고 좋은 글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의 클립이 엮여 플래시백과 차례로 교차되는데, 거기서 느껴지는 우리 역사의 보편성이 어마무시 했다. 개인의 아픔이기도 하지만, 민족을 관통하는 보편적 아픔이기도 하다는 것. 그런 하나의 대한민국이 우리를 참 많이 웃게 만들지만, 반대로 병들게 하기도 한다는 것이 웃펐다.
* 2025-05-20: 씨받이를 읽었다.
* 2025-05-21: 티켓을 읽었다.
* 2025-05-22: 안개마을과 아메리카 아메리카를 읽었다. 맨 마지막 챕터의 대담을 다 읽음으로써 이 책의 모든 파트를 읽게되었다. 모든 시나리오에는 “역사의 개인화"라는 공통적인 메시지가 있었다. 실존 위에 본질 없다는, 사람들의 아픔 그 자체를 어루만지려는 따스함을 느꼈다. 책을 끝내는 일주일동안 매일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는 듯이 너무 행복하게 빠져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