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심벨 / Abu Simbel

아부심벨은 거의 수단과 맞닿아 있는 이집트의 남쪽 도시다. 아부심벨 신전을 보러 아스완에서 왕복 10시간의 여행을 다녀왔다. (사실 편도로 세 시간 반이면 충분히 도착하는 것 같은데, 또 호구를 당해…)

아부심벨 신전은 람세스 2세가 지은 신전으로, 왕비 네페르타리를 위한 소신전도 함께 위치해 있었다.

아스완 댐을 건설하며 상류의 많은 유적지들이 수몰될 위기에 처했지만, 이집트에서는 아스완 댐 건설로 인한 경제적 효과를 놓칠 수 없어 유물을 포기할 각오. 1960년대 국제적인 원조와 (우리나라도 1만 달러를 지원했다 한다.) 유네스코의 원조로, 수몰되는 유적 중 아부심벨 신전만큼은 보존하기로 결정. 거대한 신전을 그대로 뜯어 위쪽으로 65m를 들어올렸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웅장했던 기세와, 그걸 이어가려는 현대인들의 웅장했던 기세를 모두 느끼고 싶었다.



새벽 4시 호텔을 나섰다. 미리 프론트에 말해 조식 대신 도시락을 받았는데, 픽업 시간까지 시간이 좀 남아 로비에 앉아 우걱우걱 먹었다.



픽업 버스를 타고 출발. 가는 길에 다른 호텔에서 사람들을 태워가느라 아스완 시내를 빠져나가는 건 다섯 시를 훌쩍 넘겨서였다. 시간을 맞추지 못하는 빌런들이 함께하는 바람에 그만…



아부심벨로 향하는 고속도로. 모두가 버스에서 기절. 그 공기 속에서 잠시 눈을 떠 사막의 지평선을 바라보는 것이 뭔가 설렜다.



저게 바로 어제 들은 수단으로 수출되는 전기인가 보다 생각했다.



나일강에서 토슈카 호수까지 이어지는 운하를 두 번 지나쳤다.



옥수수같이 보였는데, 맞았을까. 사막 한가운데서 이뤄지는 경작이 신기했다.




한참을 달려 다시 나일강 자락에 도착했다.



저 아래 묻혀있을 여러 유적을 생각했다. 저기서 건져 올려져 전 세계 박물관으로 흩어진 여러 신전들도 떠올렸다.



신전을 뜯어 위로 올리며 뒤쪽은 콘크리트로 인공 언덕을 만들어 덮었다 한다.



좌측이 람세스 2세의 신전, 우측이 왕비 네페르타리의 신전. 원근법으로 비슷한 크기처럼 보이지만 람세스 2세의 신전이 훨씬 거대하다.



신전 뒤쪽의 인공 언덕. 감쪽같다.



드디어 마주한 신전.



네 개 모두 람세스 2세의 석상으로 좌에서 우로 갈수록 나이가 들어가는 모습의 람세스 2세라 한다. 정말 대단한 자기애.



두 번째 석상의 상반신은 이미 이곳으로 이전하기 전부터 지진으로 인해 떨어져 있었는데, 복원할 당시 다시 붙일지 원래처럼 떨어트려 놓을지 고민하다 결국 원래의 형태로 떨구어 놓았다 한다.



어머니, 왕비, 딸들을 앙증맞게 무릎 높이로 새겨놓은 람세스 2세.



신전 facade 상단엔 개코원숭이의 장식도 깨알같이 들어가 있었다.



가짜 문. 예전에 이집트 유적들이 도굴을 유도하기 위해 이런 가짜 문을 만들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아부심벨 신전도 같은 이유로 만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신전 내부로 들어섰다.



빼곡한 자기 자랑.



가장 안쪽의 성소. 세 명의 신 사이에 왕관을 쓴 자신을 넣어 신격화해놓은 것이라 했다. 태양의 궤적을 계산해 일 년에 딱 두 번만 해가 이곳을 비춘다 한다.



지독한 자기애. 심지어 이긴 전투도 아니었으면서.






단순히 가장 깊은 성소 하나만 존재하는 신전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작고 긴 방 여러 개가 붙어있었다. 각각이 어떤 역할을 했을지 궁금했다.



꼭 잡아온 포로를 그려야만 속이 풀렸던 그.



왕비 네페르타리의 신전으로 이동했다. 정작 네페르타리의 석상은 두 개인데, 람세스 2세의 석상은 네 개인 것이 웃음벨.




하토르 여신.






여기에서도 이 모티프를 그려 넣는 그는…





결국 람세스 2세와 네페르타리는 영생의 길에 들어섰을까.



내 마음도 웅장해진 아부심벨 탐방을 방문하고자 마그넷을 사 왔다. 다른 유적지에서도 이런 실물 재질의 마그넷을 사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그런 마그넷을 파는 곳은 아부심벨이 유일했다.



다시 아스완으로 돌아가는 길. 조식 도시락에서 챙겨놓은 주스를 마시며.



다만 돌아오는 버스가 완전 호구 대잔치였다. 안 그래도 골골거리는 버스라 고속도로에서 대다수의 차가 우리 버스를 추월하는 등 이동 시간도 1.5배씩 걸렸는데, 돌아오는 길에 예고되지 않았던 향수샵에 내려주는 쇼핑 옵션을 발동시켰다. 나는 이날 기차를 타고 룩소르로 이동했기에, 아침부터 가이드에게 일정을 미리 고지했었다. 기차 시간이 삼십분도 남지 않았는데 아무도 사지 않을 향수 샵에 붙잡혀 있는 것이 너무 괴로웠다. 결국 난장판(?)을 벌이고 다시 버스에 탑승해 아슬아슬하게 딱 맞춰 룩소르행 기차에 오를 수 있었다.



근데 이집트 타임이 적용되어 기차가 4시 10분쯤 출발하더라. 3시간 완행열차가 미화로 40불. 외국인은 현지인의 10배 가격. 결제도 미화로.



내 자리에 가니 어떤 소녀들 네 명이 주르륵 앉아있었다. 같이 앉고 싶은 거면 자리를 바꿔줄 테니 네 좌석을 알려달라 하니 웃음만 짓는 그녀들.. 알고 보니 한 명만 이 칸이고 나머지는 아래 등급의 티켓이었나보다. 다른 차로 옮겨갈 순 없을 것 같아 내 자리를 사수했다. 스페셜 클래스로 끊었는데, 좌석 상태가 열악해 심란했다. 타이벡 시트를 가져갔는데 두 개의 시트를 모두 덮을 순 없어 가방을 구해야 하나 내 몸을 구해야 하나 기로에 놓였었다.



그 와중에 비닐을 뜯지 않은 것은 또 웃음벨…



며칠 만에 완전히 고장 나버릴 것 같아진 운동화. 결국 마지막 룩소르 공항에서 고이 보내주고 쪼리 차림으로 귀국. (쪼리마저 베이징에서 인천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툭 끊어지는 바람에 대전으로 돌아오는 길이 아주 고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