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완 / Aswan

이집트 남쪽의 대도시 아스완에 1박 2일의 일정으로 머물렀다. 카이로에서 비행기를 타고 움직이고 싶었지만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가격이 많이 올라 슬리핑 기차를 타고 이동했다. (기차도 130 미국 달러로 이집트 물가치고 꽤나 비싼 가격이었다.)

아스완에서 배운 스킬이 있었는데, 누가 국적을 물으면 중국인이라 대답하는 것이었다. 이집트 사람들에게 중국인이 헛돈을 쓰지 않는 굉장히 이성적인(?) 사람들로 알려져 있어, 중국인이라는 마법의 단어에 다가오는 호객꾼들이나 택시 기사들이 금방 나가떨어지곤 했다. 중국 사람들에게 괜히 고마워지는 순간이 많았다.

여전히 누비안의 문화가 많이 남아있고, 실제로 카이로와는 다른 인종의 누비아인들이 다수처럼 느껴졌다. 그들의 끈끈한 연대에 상처를 좀 받기도 하고, 정을 느끼기도 한 굉장히 복합적인 감정에 휩싸이게 된 도시였다.


도착


슬리핑 기차에서 완전한 숙면을 했다. 일어나 창밖을 보니 멋진 나일강의 풍경이 이어졌다.



아침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구경하고



이른 아침부터 시샤를 하는 사람도 구경.



조식으로 나온 빵은 간식으로 챙기고, 한국에서부터 가져간 컵라면을 하나 뜯었다. 평소에 한국에서 간식을 챙겨가지 않는 편인데, 고생해 가져간 보람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나일강의 일출과 함께하는 라면이라니, 낭만이 쏟아졌다.



경유했던 베이징이 너무 추울까 가져갔던 후디. 생각보다 카이로의 날씨가 쌀쌀해 이집트에서도 잘 챙겨 입었다. 이제 따뜻한 남쪽의 일정만 남았기에, 기차에서 작별했다.



그렇게 아스완에 도착.



혼란스러운 역전에서부터 아스완 관광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이집트 대부분의 관광지나 공공장소엔 왼쪽에 보이는 군인인지 경찰인지 확실치 않은 공무원들이 있었다. 든든하다 생각해왔는데, 나중에 방문할 필레 신전에서 그만…



이른 아침에 호텔에 도착했다. 이번 여행은 작은 배낭 하나에 의지했다. 옷을 두벌씩만 가져가, 매일 밤 빨래 지옥이었다.


도시 풍경


아스완은 카이로에 비하면 확실히 지방 도시였다. 다만 남겨진 유적들과 누비안이라는 특별한 문화로 인해 관광업에 과하게 의존하고 있는 도시처럼 느껴졌다.



역에 이른 아침에 떨어진 터라, 택시를 잡는 대신 호텔까지 슬슬 걸어갔다. 드디어 마주친 이집트의 우체국. 사실 우표를 몇 개 사서 한국으로 엽서들을 보내고 싶었는데, 우표 가격이 무려 삼천 원이 넘었다. 엽서도 사야 하는데 우체통을 찾기도 어려워서, 그냥 포기.



아스완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버스.



이집트식 엑스포 선전물.



드디어 나일강변에 위치한 호텔에 도착했다. 통으로 큰 건물의 호텔일 거라 생각했는데, 개별 동으로 되어있을 줄은 몰랐다. 아부심벨에서 일정이 생각보다 빡빡해 아쉽게도 호텔에서 나일강을 즐기진 못했다.



아스완의 메인 도로의 어느 점방.



어딜 가나 도시를 잠식한 누비안 패턴. 어떤 누비안이 밥 말리도 누비안이라고 했는데, 생각해 보면 밥 말리는 자메이카 출신인데, 뿌리가 누비안이려나? 잘 모르겠다.



해 질 무렵에 나일강을 가득 채운 무동력 요트, 펠루카. 그저 강변에 서서 펠루카 무리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아스완 댐

주기적인 범람으로 이집트에 문명을 선물한 나일강이라지만, 현대에 들어선 제어 가능한 범람이 필요했기에 나일강에 댐을 건설했다 한다. 1902년에 영국인이 처음 만든 로우 댐이 그 역할을 수행하기에 버거워하자 1970년대에 소련의 자본으로 좀 더 상류에 하이 댐을 건설. 그 탓에 상류 위쪽의 문화재와 마을들은 모두 물속으로 수몰되었다. 소설 <람세스>를 읽으며 수몰된 나일강 상류를 계속 머릿속에 그려 넣었었다. 이제 평평해진 고요하고 너른 수평선을 직접 보러 다녀왔다.



택시를 대절했다. 호텔에서 인드라이브를 불렀는데, 아주 이상한 사기꾼이 도착해 그냥 택시에서 내리고 다시 부르기 시작. 결과론적으론 길거리에서 흥정을 하는 아저씨의 가격이 더 합리적이라 딜을 치고 올라탔다. 누비안 아저씨였는데, 누비안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하셨다. 나중에 다 듣고 보니 결국 다음날 누비안 빌리지로 같이 가자는 호객의 밑밥이었던 것 같았다. 그래도 이 정도의 호객은 양반이라 웃으며 이동했다.



하이 댐의 티켓 오피스.



수몰되어 이제는 고여버린 나세르 호수.




너무 넓어 마치 바다와 섬처럼 느껴졌다.



조절되어 흘러 나가는 나일강. 이 물이 흘러 지중해까지 흘러간다는 것이 경이로웠다. 비행기를 타고 카이로에 들어설 때 델타라 불리는 이집트의 삼각주를 볼 수 있었는데, 결국 흘러 흘러 거기까지 가겠구나, 이 물을 타고 아스완에서 카이로까지 돌을 실어 날랐겠구나, 뭐 그런 잡다구리한 상념에 빠졌다.



아스완 댐에서 생산하는 전력량이 이집트 전체 전력량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 들었다.



더불어 여기서 생산한 전기를 수단이나 다른 아프리카 나라로 열심히 수출하고 있다고. 나중에 더 남쪽의 아부 심벨로 향하는 고속도로에서 끝없이 이어진 송전탑을 볼 수 있었다.


필라에 신전


같은 택시를 타고 필라에 신전으로 이동했다. 원래는 필라에 섬에 있었다지만 수몰될 위기에 처하자 신전을 모두 뜯어 새로운 섬으로 그대로 이전해 두었다. 티켓 오피스에서 티켓을 사고 입장하면, 섬으로 들어가는 배를 다시 흥정해 탑승해야 하는 구조였다.



하~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미리 티켓 오피스 쪽에서 일행을 구했어야 했는데, 탑승장에 들어가 일행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보트는 몇 명이 타도 대당 500 이집트 파운드가 싯가인듯 했다. 친절한 가족 단위의 이집션이나, 다른 외국인들을 안내하는 이집션 가이드가 혼자인 나를 끼워주겠다 했다. 하지만 알고보니 이 선박은 누비안 사람들의 끈끈한 커뮤니티로 운영되는 듯했고, 내가 혼자 선박을 타지 않는 한 나를 끼워주겠다 한 사람들도 선박을 내어주지 않겠다고.. ㅠㅠ 어느 이집션 가족의 남편분께서 밖에 있는 경찰을 데려오고 고성을 주고받으며 분위기가 험악해지기도 했다. 경찰도 해결해 주지 않고, 나를 도와주겠다는 이집션들에게 더 이상 민폐를 끼치기가 죄송해 결국은…



그냥 혼자 한 척을 빌렸다. 그래봤자, 한국 돈으로 만 오천 원. 괜히 항구에서 낭비한 삼십분이 아깝게 느껴졌다.



누비안들을 알다가도 모르겠다 생각했다. 이게 그네들의 생존 방식이라면 인정하고 지기로 했다. 해탈한 마음으로 배에서 밥 말리의 음악을 크게 틀고 같이 따라 부르며 섬으로 향했다.



드디어 마주한 섬.



여전히 물에 잠겼다 올라오기를 반복하는 걸까, 검어진 벽을 보며 궁금해졌다.






선착장에 내려 구경을 시작했다. 고대 이집트의 신전들 중 가장 마지막까지 신전으로서의 역할을 하던 곳이라 했다. 클레오파트라가 신혼여행으로 왔던 곳이라고.






채색되었을 이곳의 모습을 상상해 봤다.



너무 연약한 재질의 신전이 어떻게 이리 오래 굳건히 서있는지 무척 신기했다.






이후 기독교인들의 흔적일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뭔가 해탈한 마음으로 다시 배에 올라탔다. 나일강의 물결을 한참을 바라보다 다시 선착장에 도착했다.


미완성 오벨리스크


미완성 오벨리스크는 아스완에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하트셉수트 여왕 때 만들다 결함이 발견되어 그대로 채석장에 남아있을 거라 추정되는 오벨리스크의 원형이 채석장에 그대로 박혀 남아있는 곳이다.



그 거대한 돌을 어떻게 떼어내고 운반했을지를 설명해 두었다.



거대한 채석장으로 올라선다.




드디어 마주한 누워있는 오벨리스크. 아직 한 면이 그대로 땅에 붙어있는 상태.



이걸 통으로 떼어 글자를 새기고, 카이로나 룩소르까지 운반해간 여정이 상상되지 않는다. 이미 이 채석장도 나일강에서 한참을 들어왔는데, 예전엔 이 앞까지 나일강이 범람했던 걸까.



오벨리스크를 어떤 도구로 팠을지도 궁금했다. 청동기 시대였을 텐데, 그 무른 청동으로 파낸 흔적인 걸까?




이 채석장에서 얼마나 많은 유물들이 탄생되어 나갔을까, 내가 박물관에서 본 석상들 중 여기가 고향이었던 것들은 어떤 것들이었을까, 그런 줄기들이 궁금해졌다.



유적지를 나가는 샵에서 오벨리스크 마그넷을 하나 샀다.


누비아 박물관

모든 일정을 마치고 시간이 남아 고민했다. 아스완을 여행하며 누비안들에게 호되게 혼났는데, 또다시 돈을 지불하고 누비안 박물관에 가는 게 맞을까, 왜 나는 스스로에게 고통을 주는가. 나를 괴롭게 했던 이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단 생각에 박물관으로 향했다.



박물관은 한산했다. 유물도 한산한 기분이었는데, 관람객도 적고 조명이 많이 어두워 특히나 더 한산한 기운이 돌았던 것 같았다.



“special reputation… honesty, trustworthiness, goodhertedness and copperation.” 그렇다 한다.



누비안이 왕권을 잡은 기원전 750년 전까지의 유물은 양이 많지 않았다.




누비안 미술이 범상치 않다.



은관.



누비안의 묘. 확실히 카이로에서 보던 것들과는 다르다.



누비안 빌리지를 재현해 두었다. 누비안 여성들은 히잡이 아닌 눈만 보이는 니캅을 쓰는 것이 디폴트인지 궁금해졌다. 아까 택시 아저씨가 본인의 가족사진을 보여주는데 가족사진에서도 아내분이 니캅을 쓰고 계신 것이 무척 의아했었는데, 길거리에서 마주친 많은 여성이 카이로와 달리 니캅을 쓰고 있어 신기하단 생각을 했었다.



공부는 하지 않는데 자꾸 매일 아침 100 파운드만 달라고 하며, 돈을 받을 때마다 아스완 대학에 꼭 합격하겠다 말한다는 택시 아저씨의 고등학생 큰 딸을 떠올렸다.



이집트를 여행하며 자주 본 장면이었다. 돗자리가 의자로 바뀌었을 뿐 이 문화가 여전히 현대의 이집트에서도 이어지는 것 같아 신기하다 생각했다. 혹, 현대의 마을을 재현해 놓은 것인가? 누비안 빌리지를 방문하지 않아 모르겠다.


음식

아스완에선 돌아다니는 일정이 빡빡해 제대로 된 식당에서 식사 한 번을 못했다. 그래도 틈틈히 먹은 것들을 기록해 본다.



기차를 타고 도착한 첫날, 나일강 변의 맥도날드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정신을 차렸다. 강변의 맥도날드라니 운치가 있었어야 했는데 햇살은 따갑고 새가 많아 곤란했다.



나일강변의 KFC도 뷰는 끝내줬다. 맥주와 먹고 싶단 생각에 치킨을 포장해 호텔에서 저녁으로.



이집트에서만 판매하는 여러 맛의 Schweppes.



석류 맛을 비롯해 여러 가지 맛을 틈틈이 사다 먹었다.



제철의 과일을 길거리에서 사 먹어 볼 용기는 없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