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 피라미드 / Cairo: Pyramids

주로 고왕국 시대에 만들어진 피라미드는 대다수가 기자, 다슈르, 사카라 지역에 분포해 있었다. 카이로 시내에서 가장 접근성이 좋은 건 기자의 피라미드 군이었는데, 택시를 대절해 한 시간 남짓 거리인 다슈르, 사카라 지역의 피라미드도 함께 보고왔다.

어떻게 생겼을지, 어떤 느낌일지 영상들을 통해 충분히 느끼고 상상해왔지만 결국엔 직접 눈으로 보고 만져봐야 끝나는 게임이었기에.



기자의 피라미드로 향하는 길. 기자의 피라미드는 카이로 시내와 가까워 일상의 건물들과 한 폭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처음엔 메나하우스 쪽 입구로 들어가려 했는데, 거긴 출입이 불가한 곳이었다. 또르르.. 다시 택시를 타고 정문 게이트로. 여러 호객 행위를 근절하려는 이집트 정부의 의지가 느껴지는 정문이었다.



카이로 패스를 구매했다. 이슬람 기도 시간과 맞물려 오피스 앞에서 서서 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덕분에 여러 사람들이 표를 사 가는 것을 구경했다. 외국인은 700 이집트 파운드, 이집션은 60 이집트 파운드가 정가. 생각보다 이집션이 아닌 사람이 이집션이라 우기는 것 같았다. 그런 경우 티켓 오피스의 아저씨가 뭔가 질문을 하고 표를 사는 사람이 대답을 해야 했는데, 포기하는 사람도 있었고 뒷돈을 손에 몰래 쥐어주며 통과하는 사람도 있었다. 기자의 피라미드가 카이로에서의 처음으로 방문한 관광지였는데, 이제 막 이집트 여행의 단면을 맛보게 된 기분이었다.



듣던 대로 visitor center서부터 각 피라미드까지 셔틀버스가 운행 중.



셔틀버스가 없던 시절, 이 모래밭을 걸어 다니거나 낙타 호구를 당했을 생각을 하니 아득했다.



저 멀리 다슈르의 피라미드가 보였다.



예전엔 나일강이 저 시가지를 덮고 이 앞까지 흘렀을지 무척 궁금했다.



eco friendly 해보려는 정부의 의지. 이집트 여행을 끝내고 나니, 이건 비단 외국인 뿐만 아니라 자국민을 설득해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피라미드 단지 곳곳에도 들개가 많았다. 사람은 피라미드를 오르는 것이 금지되어 있지만, 자유로이 돌계단 위를 뛰어다니는 개들을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스핑크스가 있는 후문 쪽으로 걸어 내려오니 낙타 떼를 볼 수 있었다. 이 때문이었는지 이번 여행 내내 공유가 불렀던 영화 <김종욱 찾기>의 “두 번째 첫사랑“을 여행 내내 반복해 들었다.



정문으로 돌아가지 않고 후문으로 빠져나왔는데, 말똥 냄새와 쓰레기 악취, 자동차 매연으로 정신이 없었다. 기자에서 묵지 않기를 잘했단 생각을 했다.


기자

기자에는 파라오였던 쿠푸, 카프레, 멘카우레의 피라미드 3개와 소규모 위성 피라미드들, 그리고 몇 개의 마스타바가 있었다. 기원전 2500년 전에 만들어졌으며 이미 고대 이집트에서 도굴되었을 것이라 생각되는 곳.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하는 곳이었다.

쿠푸 피라미드 (2509-2483 BC)


쿠푸왕이 묻혀 있었어야 할 138.5m의 거대한 피라미드.



매끈하고 일정한 모양으로 자른 돌을 상상해왔는데, 그렇지 않은 모습에 무척 놀랐다.



내부에 들어가 볼 수 있었다.



허리를 숙여 좁은 통로를 지났다. 후에 다른 피라미드들을 가보고 알게 된 것이지만, 무척 양반에 속하는 통로였다.



독특한 아치의 거대한 회랑을 지난다.



피라미드 중심에 위치한 매장실. 자르지 않고 통으로 얹은 윗면의 석재가 신기했다. 나중에 알 고보니 하중을 위해 위쪽에 빈 공간을 켜켜이 쌓았다 한다.



석관만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전등이 없던 과거에, 이렇게 피라미드 내부까지 어떻게 들어온 것일까, 횃불이나 촛불을 들고 왔다간 질식의 위험이 없었을까, 반딧불이였을까, 그런 여러 가지 단상에 빠졌다.



공기청정기가 인상적이었다.



이전에 방주가 놓여있었다는 구덩이. 여기에 놓여있던 태양선은 나중에 이집트 대박물관에서 볼 수 있었다.

카프레 피라미드 (2558-2532 BC)


쿠푸의 아들인 카프레의 피라미드로. 다른 피라미드들과는 다르게 피라미드 상단에 매끈한 외벽의 흔적이 아직 남아있다.



가까이서 보니 그 모습이 너무 위태해 이대로 야외에 오랜 세월 방치해도 되는지 문득 걱정이 되었는데, 비가 잘 내리지 않는 이집트의 기후라면 괜찮을 것 같다 생각했다. 어쩌면 그게 4500년이 넘도록 굳건히 서있었던 비결일지도.



내부엔 입장이 되지 않아 외벽을 한 바퀴 돌며 구경했다. 아버지보다 가파르지만 그래도 조금 더 낮은 높이로 피라미드를 지었던 카프레왕의 마음을 가늠해 보며.

멘카우레 피라미드 (2532-2503 BC)


멘카우레는 쿠푸의 손자이자 카프레의 아들이다. 쿠푸나 카프레의 피라미드가 모두 140m가 넘는 높이지만, 멘카우레의 피라미드는 65m로 상대적으로 아담하게 느껴졌다.



쿠푸와 카프레의 피라미드는 석회암으로만 이뤄졌는데, 멘카우레의 피라미드는 석회암과 화강암이 섞여 만들어진 것도 흥미로웠다.



내부로 올라가는 길.



아담한 크기의 매장실.

쿠푸 피라미드의 위성 피라미드


지금은 여러 피라미드들이 대단지를 이루고 있지만, 점차 하나씩 생겨나던 시절의 이곳의 모습이 잘 상상되지 않았다.



위성 피라미드 중 쿠푸의 부인이었던 헤누트센의 피라미드에 들어가 봤다.

스핑크스 (2613-2494 BC)


카프레의 피라미드를 지으며 만들었다는 너비 72m, 높이 20m의 스핑크스.



사람들이 생각보다 작아 놀랐다지만, 내가 너무 세뇌를 당한 탓인지 나는 생각보다 크기가 크게 느껴져 놀랐다.






피라미드처럼 쌓아 만든 것이 아니라, 깎아 만들어 외벽에 매끈한 석재를 붙였다는 것이 무척 신기했다.


다슈르

다슈르에 있는 대표적인 피라미드인 굴절 피라미드와 붉은 피라미드에 다녀왔다. 모두 쿠푸의 아버지인 스네프루가 지은 피라미드. 처음 피라미드의 형태의 무덤을 만든 조세르 이후 스네프루가 어떤 마음으로 피라미드를 짓기 시작했을지, 기자의 쿠푸, 카프레, 멘카우레로 이어진 피라미드 정신의 기원을 보러 방문.



고속도로에서 마주친 두 피라미드. 기자와 다르게 허허벌판에 피라미드가 놓여 있는 것이 원초적이었다.



이집트에 가기 전에 계획을 세우며 저 넓은 피라미드 사이를 걸어 다녀야 하는지 궁금했는데, 피라미드마다 주차장이 있어 차로 돌아다닐 수 있었다.



다슈르에서 바라본 사카라의 모습. 조세르 피라미드가 보인다.



검은 피라미드도 가보고 싶었는데 관광객에게 폐쇄되어 방문할 수 없어 멀리서만 바라봤다.

스네프루 굴절 피라미드 (2600 BC)

스네프루는 생전 세 개의 피라미드를 지었다 한다. 모두 매끄러운 삼각형 형태의 피라미드를 만들기 위한 여정으로 생각되는데, 첫 번째 메이둠 피라미드는 기술력 부족으로 건축 도중 붕괴되었다. 두 번째 피라미드는 짓는 도중 붕괴 우려로 경사도가 바뀌어 건설. 그리하여 실제 무덤으로는 사용되지 않았다 한다.



멀리서도 굴절된 각도를 인지할 수 있다.






생각보다 무른 석회암이라, 천년 이천년 세월이 흐른 뒤의 이곳의 모습이 잘 상상되지 않았다.



굴절 피라미드의 내부에 들어섰다. 가장 땀을 많이 뺀 곳이었다. 좁은 공간을 한참 내려가다 다시 또 계단으로 한참을 올라가야 했다.



그리고 마주친 미완성의 매장실의 천장. 박쥐 떼가 한가득이었다. 캄보디아 씨엠립에서 맡았던 박쥐똥 냄새가 그대로 났다.

스네프루 붉은 피라미드 (2600 BC)

마지막으로 지은 붉은 피라미드는 굴절 피라미드에 비해 완만한 경사도로 완성되었다.




마찬가지로 내부에 들어갔다.





엇갈린 좁은 문으로 쪼그려 앉아 들어갔다.



완전히 바닥까지 파헤쳐 도굴된 매장실.


사카라

이럴 줄 알았다면 다슈르보다 사카라에서 시간을 더 보낼 걸 그랬다. 아직도 발굴을 하고 있는 것만 같은 대규모의 피라미드 단지였다. 사실 큰 피라미드는 조세르의 계단 피라미드와 우나스 피라미드 정도인데, 그 이외의 마스타바나 작은 피라미드가 무척 많아 보였다. 자꾸만 돌아가자 재촉하는 택시 기사 아저씨의 성화에 두 개의 피라미드만 후딱 보고 나와야 했다.



피라미드로 들어가는 열주가 그대로 남아있는 것도 무척 신기했다.



단순히 쌓기만 한 것이 아니라 파내는데도 일가견이 있던 고대 이집션들…



모래사막 너머 나일강까지 펼쳐지는 열대우림이 낯설게 느껴졌다.

조세르 계단 피라미드 (2700 BC)


첫 피라미드라 일컬어지는 조세르의 계단 피라미드.



어떤 순서로 지금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는지.



대부분의 피라미드가 피라미드만 홀로 서있는 것이 아닌, 장례 신전 등의 여러 구조물을 가진 복합 단지였다고.



조세르의 계단 피라미드엔 그 신전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기둥이 아니라 돌을 깎고 쌓아 기둥처럼 보이게 만든 것이 재밌었다.



조세르 계단 피라미드 내부로 들어가는 길.



내부에 미로가 많다고 들었는데, 현재 관광객이 드나드는 길은 매장실의 상단으로 직행할 수 있도록 편히 나 있었다.



덕분에 깊은 매장실 아래쪽으로 여러 출입구의 갈래를 구경할 수 있었다.

우나스 피라미드 (2350 BC)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의 피라미드.



멘카우레보다도 더 뒤에 세워진 피라미드로, 대형 석재를 쓰지 않고 작은 석재로 내부를 쌓고 큰 석재로 외장만을 담당했다 보니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나스 피라미드가 갖는 역사적 의미는, 처음으로 매장실 내부에 글이 쓰였다는 것이라 한다.



매장실을 빼곡하게 덮은 히에로글리프들.



플래시로 빛을 사선으로 비추면 벽에 부조가 보인다며 누가 설명을 하고 계셨는데, 정확히 어떤 부조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