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자라섬재즈페스티벌 / 2024 Jarasum Jazz Festival
2박 3일로 자라섬에 다녀왔다. 올해도 어김없이 폭우와 함께 시작하는 축제였다.
이제 체력이 무리라는 생각으로 내년부터는 축제들에 발걸음을 줄여볼까 생각중이라, 더 성심껏 즐기고 오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함께 시간을 보내준 짜와 예솔이에게 고맙다. 혼자였다면 더 효율적이었을지는 몰라도 이만큼 즐겁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이다.
일을 하다 오후에 출발했다. 이미 대전에도 비가 한가득 내리고 있어 걱정이었는데, 가평까지 올라가는 내내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 같았다. 덕분에 집에서 가평까지 네시간 반이 넘는 시간이 걸렸지만 자라섬에 도착할 때까지, 그리고 도착해서도 멋진 운무를 구경했다.
카라반에 짐을 두고 행사장으로 걸어갔다. 이미 앞선 공연부터 관람하느라 생쥐꼴이 된 예솔이와 짜요를 만났다.
덕분에 올해도 어김없이 잔디밭에도 자라강이 생겨버리고..
앞선 공연들을 놓치고 은이암스트롱의 공연부터 시작했다. (영상1]) (영상2) (영상3)
다시 또 슬금슬금 내리는 비에 중무장한 친구들. 하지만 아쉽게도 크록스는 준비하지 못한.
첫 날의 헤드라이너였던 비렐리 라그렌 퀄텟. 연주 정말 잘하더라~ 앵콜곡이었던 Isn’t she lovely까지 알찬 무대였다. (영상)
카라반에서 불멍도하고 술도 한 잔 하고 할 생각이었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카라반 실내에서 시간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 보일러가 너무 뜨끈해 살짝 열어둔 창문으로 솔솔 불어오는 바람, 새소리에 눈을 떴다.
비로소 가을을 제대로 느끼는 느낌이었다.
예솔이는 이른 아침 떠나고 짜와 둘이 남았다. 모닝 사과와 책. 지난 번 평창에서 읽다만 이 책을, 이번엔 반드시 이 책을 다 읽고 가겠다 다짐하며.
따뜻한 커피를 내려 시간을 보내는 이 순간이 사실 자라섬 재즈페스티벌에서 보내는 시간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적당한 쌀쌀함이 정신도 기분도 한껏 정갈하게 만든다.
햇살이 비추면 너무 따갑고 덥고, 그늘만 지면 쌀쌀하고, 밤에는 어마무시하게 춥고. 어떻게 옷을 챙겨야하는지 정말 알쏭달쏭한 자라섬. 시내에서 점심을 먹고 마트에서 장을봐 축제장으로 들어섰다.
간식으로 사온 하나로마트 꽈배기,, 마시쪄,,
2박 3일 즐기는 자에게만 허용된 토요일의 낮술.
이번엔 카라반 근처 구역의 무료 무대는 없어지고, 중도에 두 개의 스테이지가 생겼다. 가평군의 예산 지침때문인지 무료무대는 8시 이후에 시내로 이동한 느낌이었는데, 카라반에 숙소를 잡은 우리는 시내까지 다녀오기가 좀 부담스러워 자라섬에 머물렀다. 덕분에 재즈 바이브가 좀 줄어 아쉬웠다.
날이 갰다. 폭우 속 축제만 즐기고간 예솔이..
날이 쌀쌀해져 와인으로 종목을 변경하고선.
댕댕이가 관람 가능한 축제라 곳곳의 댕댕이 정모를 보며 흐뭇했다.
새로 생긴 무대인 재즈 라운지. 고립된 공간이라 DMZ 페스티벌의 특별무대처럼 아늑한 맛이 있었다.
이번 자라댄스도 열심히 배워 틈틈히 췄다. 몸을 녹이는데 정말 이만한 것이 없다.
그리고 쌀쌀한 날씨를 이겨 주종을 바꿔서. 푸드부스에서 뱅쇼를 사다가 부족한 알콜을 타서 마셨다.
재즈라운지와 재즈아일랜드 두 스테이지를 오갔다.
누가 만들어오신 깃발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 페스티벌에서 정말 필수템..
아까 첫 번째 책을 끝내고 두 번째 책으로 넘어갔다. 한강 작가의 <희랍어 시간>을 읽기 시작했다.
마지막 공연까지 관람 완료. 둘째 날 공연은 좀 그저 그랬다.
카라반으로 돌아오니 달이 멋드러지게 떠있었다.
원래는 채비를 하고 시내로 나가볼 요량이었는데, 불멍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카라반에 머물렀다.
짜요가 준비해온 고구마를 구워먹었다. 그리고 전에 막걸리, 라면, 기타 등등..
다음 날은 자라섬 안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덕분에 스테이지 앞의 좋은 자리를 찜했다.
짜요가 기대했던 디어재즈오케스트라의 공연. 연주는 그저 그랬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쓰이는 그런 시간이었다. (영상)
이름을 모르지만 매년 이맘때 만나고 있는, 인재진 감독인줄 알았지만 인재진 감독이 아니었던 감독님. 일전엔 단순히 무대 시작 전과 후에 자라댄스와 다음 공연 소개만을 맡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앞에 앉아서 뵈니 앵콜공연, 무대세팅까지 책임지시는 막중한 역할이시라는 것을 알았다.
오늘이 3일 중 가장 날이 좋았다. 재즈라운지에서 문미향 퀀텟의 공연이 나올 때는 그냥 잔디밭에 누워 책도 읽고, 살살 졸기도 했는데 마치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영상1) (영상2)
조반니 귀디 트리오. 석양이 져가는 무대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음악이 어우러지는게 황홀했다. (영상)
예년 같았다면 마지막 무대까지 즐기고 복귀했겠지만, 일상으로 돌아와 책임져야하는 무게들이 떠올라 남은 두 무대를 놔두고 대전으로 내려왔다. 나중에 후기를 들어보니 보지 못한 에멧 코헨 트리오, 케니 가렛의 무대가 축제를 찢었다는 것 같아 아쉬움이 좀 남기도했지만, 난 다른 즐거움을 얻었으니 그것으로 만족이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도 차가 좀 막혔지만, 이렇게 길가에서 마주친 “아바타” 조명공장에 피식거리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어 또 좋았다. 다이나믹한 이벤트가 있진 않았지만, 내면적으로 좀 더 밀도가 높아지는 성장이 있던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