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 New York

3월 22일 밤비행기로 출발해 3월 29일 한국에 돌아오는 일정으로 뉴욕에 다녀왔다.

3월이라는 애매한 시기에 뉴욕에 다녀오게 된 것은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다. 세계 방방곡곡을 돌아다닐 동안 뉴욕을 한 번도 가보지 않은게 속상했엇다. 비즈니스와 퍼스트를 한 번 타보겠다고 몇 년 동안 모아온 마일리지가 있었는데, 작년 이맘때쯤 들려온 국내 항공사 마일리지 개편 소식에 서둘러 모아둔 마일리지를 써야겠단 생각을 했다. 며칠간의 부단한 눈팅끝에 아시아나 마일리지는 작년 포르투갈을 다녀올 때 비즈니스 발권으로, 대한항공 마일리지는 이번 뉴욕발 서울행 퍼스트 발권에 성공했던 것이다. 마일리지로 끊을 수 있는 퍼스트 좌석은 수가 한정적이라, 몇 주 동안 매일 밤 자기 전 취소 자리가 없는지 새로고침을 하곤 했었다. 아쉽게도 서울발 뉴욕행은 아니었지만, 뉴욕발 서울행 낮 시간 B777-300ER 코스모스위트 2.0이라는데 위안을 삼았었다. 여행을 출발하기 몇 주 전, 대한항공의 삽질로 뉴욕발 서울행 항공편이 전부 코스모스위트 1.0이 탑재된 A380-800로 변경되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지만.. 이미 출발 편과 호텔을 다 예약해 놓은 터라 그냥 고고하기로.

뉴욕이라는 도시에 대한 감상은 다녀오기 전과 다녀온 후가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나 유튜브같은 영상물로 너무 많이 접했던 탓인지, 상상한 것 이상의 도시는 아니었다. 물론 상상의 크기가 무척 컸었기에 도시 자체가 기대 이하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관광이 아닌 거주에 대해 느낀 바로는 수많은 기회의 땅, 잘하는 것만큼 돌아오는 큰 보상, 많이 가진 만큼 누릴 수 있는 캡이 무척 놓은 곳. 관광에 초점을 맞추면, 발 디디는 곳마다 볼 것이 많아 맨하탄을 둘러보는 데만 꼬박 며칠이 걸리는 곳, 세상의 수만가지 종류의 사람들이 모이는 곳, 세계 어느 곳보다도 높은 범위의 숙박비, 아무도 개의치 않는 무단횡단.

뉴욕에 살긴 어렵겠구나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었는데, 항시 긴장과 경계 속에 놓여있어야 한다는 느낌 때문이었던 것 같다. 관광객으로서도 거주민으로서도 relax되어 있지 못하는 상태를 유지하는 건 큰 에너지를 소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순간들이 많았다. 런데이 30일짜리 프로그램의 대미를 장식한 센트럴파크의 아침 러닝,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리버티 아일랜드 잔디밭에 누워 음악과 함께 시간을 보내던 순간, 브루클린에서의 아침 산책, 밖에 비가 내리는 줄도 모르는 채 MoMA에서 보내던 시간. 관광에서 얻을 수 있는 만족감의 캡도 무척 높아 불편한 게 많아도 절대적인 만족감의 수치가 높았다.

시간과 상관 없이 즐거웠던 시간들을 테마별로 정리해 봤다. 사진의 양이 많아 페이지를 나누어 적어본다.


비행



갈 때는 홍콩을 경유하는 케세이퍼시픽을 탔다. 무척 긴 비행이었지만, 덕분에 오랜만에 홍콩 첵랍콕 공항에서 시간을 보냈다. 노트북을 할 수 있는 데스크가 다양한 형태로 무척 많아 좋았다.



8터미널까지 있는 뉴욕 JFK공항의 위세란.



톰행크스 주연의 영화 <터미널>을 생각하며.



드디어 발권한 퍼스트 항공권.



듣던대로 JFK의 칼라운지는 열악했다. 그래도 퍼스트와 비지니스가 나눠져 있어 혼잡하지 않아 좋았다.



인천공항에서 탔다면 달랐을 수도 있겠지만, JFK에서 탈 땐 입국심사도 탑승 웨이팅도 퍼스트와 비지니스의 차이가 없어 아쉬웠다. 생각해보니 나중에 인천공항으로 돌아왔을 때도 수하물이 우선적으로 나오지 않았던 것 같다. 게다가 캐리어 파손까지 있었던 걸 생각하니 괘씸하지만..



아무리 다리를 뻗어도 닿지 않는 먼 거리의 발받침.



4개의 창문을 끼고 가는 개방감.



이륙을 준비하는 과정이 아스라히 느껴졌다. 이미 들었던 것처럼 한국발 퍼스트와 달리 미국발 항공편에선 이륙 전 주류 서비스가 금지된 덕분에 맨 정신으로 고스란히 구경했다.



캐비어와



스테이크. 사실 대체로 맛은 모두 그저 그랬다. 와인도 종류별로 모두 마셔보고, 칵테일도 마셨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퍼스트 라운지에서 마셨던 4만원따리 샤도네이가 전체 서비스에서 가장 좋았다.



낮 시간의 항공편이라 한 숨도 안자고 영화만 주구장창 볼 줄 알았는데, 숙취와 건조한 공기 때문에 아주 골아 떨어져 버렸다. 처음 입어보는 퍼스트 잠옷은 예상만큼 보들거려 좋았다. 기내 엔터테인먼트에서 제공되는 영화 중 <매염방>이 있었다. 핸드폰에 담아간 영화가 많아 끝까지 보진 못하고 반쯤 보고선 내렸다.



신라면과 진라면 중 선택해야하는 줄은 몰랐다. 높은 피트의 상공에서 먹는 꼬들거리는 진라면이란!


교통

우리나라의 티머니같은 OMNY가 잘되어 있어 별도의 메트로 카드 발급 없이 한국의 신용카드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점이 좋았다. 게다가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12번만 탑승하면 13번째부터는 무료인 cap 시스템이 있었는데… 하필 12번까지 열심히 타고 13번째 타는 순간 카드를 잃어버렸다.. 지하철에서 흘린 것 같은데, 왔던 길을 돌아가봐도 카드는 없었다. 깔깔. 예전같았으면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고 여행을 마치고 싶은 생각도 들었겠지만, 여행이 참 재밌다는 생각을 했다. 때마침 출국 전에 현대카드에서 애플페이를 지원하기 시작한터라, 덕분에 애플페이로 OMNY를 신나게 사용했다.



100이 넘은 부다페스트 1호선처럼 생긴 출구 모습에 처음엔 약간 쫄기도 했지만, 이내 적응해 다녔다. 우리 나라와 달리 같은 노선을 달리는 서로 다른 노선 시스템이 어색하기도 했지만, 어느정도 미리 정보를 읽어간 탓에 부담 없이 돌아다녔다. 되려 uptown, downtown 방향과 local, express만 인지하고 있다면 여러 노선을 이용할 수 있다는게 굉장히 직관적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A부터 7까지 22개 정도 되는 노선을 인지해 갈아타기란 쉽지 않았지만.



들어갈 때만 개찰을 하고 나올 때는 그냥 빠져나오는 시스템도 재밌었다. 무조건 탑승을 트래킹해 내가 탄 만큼 지불하는 동아시아의 시스템과 뉴욕의 시스템 중 우리에겐 무엇이 더 fair하게 느껴질 지도 문득 궁금해졌다.



메트로 내부는 복불복이었는데, 홈리스가 타고있는 칸에 탑승했다간 코를 찌르는 악취를 참고 견뎌야 했다. 한국 지하철 1호선 빌런은 댈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악명에 비해 대체로는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정말 지구 종말 직전의 환경일거라 생각했었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다.



이스트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NYC 페리를 탑승해보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에서 탑승했는데, 루즈벨트섬을 지나서 더 높이 올라가고 싶었지만 일정상 미드타운에서 내리긴 했지만. 어떤 유튜버의 말대로 페리와 나란히 달리는 맨하탄 퍼드라이브의 자동차를 보는 매력이 있었다. 4달러의 행복.



뉴욕 곳곳에 포진해있는 NYPD를 보는 것도 신기했다. 이른 아침엔 맨하탄 곳곳을 돌아다니는 스쿨버스가 여기도 사람이 사는 동네라는 걸 상기시키곤 했다.


학교

보스턴까지 가진 못했지만 맨하탄에 있는 두 개의 학교, 뉴욕대와 컬럼비아대를 구경했다.



도시에 흩뿌려져 있는 뉴욕대.



껄렁이도 많고 대단한 재즈클럽도 많은 동네에서 대학 생활을 하는 이들은 어떤 삶을 살며 학업을 지속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컬럼비아대는 이와 반대로 할렘에 가까운 업타운에 있었다.



뉴욕대와 달리 명확한 캠퍼스가 존재했는데, 캠퍼스에 들어서자마자 난 아이비리그의 명문이라고 못박아 알려주는 것 같았다. 박정현이 컬럼비아대 졸업식에서 미국 국가를 불렀던 장면이 머릿 속을 휘져었다.


음식

세 번의 베이글, 한 번의 파인 다이닝, 99센트 피자까지. 계획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하게 먹고 마셨다.



크림치즈와 베이글의 천국! 누가보면 젤라또인줄!



하나를 다 먹기엔 턱이 좀 아프긴 하지만. 아침으로 베이글과 커피만큼 던던하긴 어려울 듯.



베이글 가게마다 크림치즈 대신 두부로 만든 크림을 내놓는 집도 많았다. 다음엔 먹어볼 수 있기를.



브라이언트파크에 포장해와 먹기도 했다. Nova라는 뉴욕식 훈제 연어가 너무 맛있어 놀라버렸다.



채소 크림치즈도 상큼하니 너무 좋았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일주일에 한번쯤은 동네에 있는 플레인 베이글에 출석도장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대망의 쉑쉑버거 본점. 아주 옛날 쉑쉑버거가 프랜차이즈화 되기 전에, 어느 다큐에서 뉴욕의 어느 공원 한복판에 놓인 간이 버거 가게를 본 적이 있다. 결국 이번에 메디슨 스퀘어 공원에 있는 1호점에 방문했다. 버거는 세계 어디나 평준화가 된 것 같은데, 고층 빌딩에 둘러 쌓여 있으니 그 다큐 안에 들어간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무척 궁금했던 칙필레. 대부분 다 무난했는데, 다양한 소스를 양껏 고를 수 있다는 게 좋았다.



맛이 좋다 소문난 Los Tacos No.1에도 가봤다.



혼돈의 웨이팅을 마친 뒤 주문한 타코 두 개. 선인장 타코는 예상과 달리 입에 맞진 않았다. 너무 놀랍게도 소다 대신 주문한 Horchata가 너무 맛있었다. 아침햇살의 민족으로서 어쩔 수 없는 입맛인가.



99센트 피자는 현금장사라 그런지 택스 없이 정말 대왕 피자 한 조각에 1달러였다. 누군가는 8달러짜리 한 판을 포장해 센트럴파크에 가서 먹기도 한다 한다. 맛이 나쁘지 않아 한 끼 식사로 뚝딱이었다. 뉴욕에 살았다면 종종 먹었겠단 생각을 했다.



작년까지 미슐랭 스타를 유지하다 올해 똑 떨어진 Marea에도 다녀왔다. 전채로 먹은 Lobster Burrata는 이번 뉴욕 여행에서 먹은 음식 중 단연 일등! 랍스타의 삶기가 너무 좋았다. 캐롤을 따라 dry martini w/ olives 를 곁들였다.



그리고 그 유명하다는 문어 푸실리를. 우리가 문어 푸실리라는 요리에 기대하는 정석을 그대로 만들어낸 느낌이었다. 무척 맛있게 먹고 나왔다.



할랄가이즈에도 들렸다.



동혁이의 말에 따르면 뉴욕식 풀빛마루라고ㅋㅋ.. 스몰 플레이트를 시켰는데도 혼자 먹기엔 양이 많았다.



대망의 버팔로윙! 블루 치즈와 샐러리의 조합이란.. 한국으로 돌아올 때 시큼 달큼 버팔로윙 소스를 잊지 않고 사왔다.



워렌 버핏이 즐겨 먹다 결국 회사를 사버렸다는 씨즈캔디에 들렀다. 고오급 스카치 사탕 맛. 사온 캔디는 노동 간식으로 종종 꺼내 먹어야겠다.



소문난 르뱅쿠키에도 다녀왔다. 듣던대로 겉바속촉의 정석이었다. 쿠키 하나가 너무 크고 달아 혼자 먹기에 벅찼다는 게 아쉬웠다. 그나저나 커피 인심 무엇..



Five Boroughs Brewing 는 방문해보진 못하고 캔으로 사다 마셨다.



뉴욕의 해리포터 샵에서 버터맥주도 한 잔. 컵은 기념품으로.



버드라이트를 처음 마셨을 때의 충격이 생생해 이번에도 열심히 사다 마셨는데, 웬걸 내 기억이 추억보정된 것인지, 맛이 변한 것인지. 예전의 감흥이 없어 놀랐다. 미국 맥주 넘버원은 밀러로 바꿔야 겠다.



낮에 잠깐 숙소에 들려 마시는 사무엘 아담스도 좋았다.



후에 옮긴 숙소는 브루클린 브루어리 바로 앞에 있었는데, 영업 시간이 짧아 직접 양조장에서 마셔볼 수 없었다.



대신 같은 건물에서 운영하는 브루클린 볼링 펍에서 탭으로 마셔볼 수 있었다.



홀푸드에서 다양한 맥주를 사다 쟁여놓고 매일 밤 마셔보는 걸 잊지 않았다.


쇼핑

이번 여행에서 반드시 사오고 싶은 몇 가지가 있었다. 복싱화, 복싱글러브, 스포츠웨어, 백팩같은 것들인데 덕분에 스포츠 용품 샵이 보이거나 TJMaxx, target, nordstrom rack 같은 아울렛에도 빈번하게 들락거렸다. 아이러니하게도 결국 제대로된 쇼핑은 뉴저지의 저지 가든에 가서야 할 수 있었다.



CD를 사고 싶어 레코드샵을 검색하다 발견한 북오프! 뉴욕에서 북오프라니!



일본 패치가 완벽하게된 곳이었다. 아쉽게도 사고싶은 앨범은 없어 빈손으로 나와야 했다.



아디다스나



나이키같은 스포츠웨어 브랜드에도 열심히 다녔지만 막상 살만한 것은 없었다.



아마존고에도 가봤다.



신용카드나 아마존 계정을 찍고 입장 가능하다.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으니 점원 아저씨가 오셔서 이것저것 설명해주셨다. 물건을 들었을 땐 반드시 제자리에 두어야 한다는 것 같은 팁이었는데, 어떻게 하면 내가 구매하지 않은 것들이 내게 청구되는지 엣지 케이스들을 상세하게 설명해주셨다. 덕분에 안전하게 altoids 하나를 무사히 구매해 나왔다.



서점에도 들렀다. 뉴욕에서 꽤나 유명하다는 Strand bookstore.



점원들이 그려놓은 북커버를 보고 어떤 책인지 모른 채 골라가는 럭키박스같은 이벤트가 있었다. 귀여운 표지에 하나 집어올 뻔 했다.



글러브를 사러 여러 매장을 돌아다녔지만 한국에서 구하는 것이 더 저렴한 편이였다.



결국 Superare 매장에 가서 10온즈짜리 글러브를 구매. 동네 치안이 안 좋은지, 샵을 닫아놓고 있다가 내가 들어가니 열어주고, 다시 닫고를 반복했다. 조금 겁에 질린 쇼핑이었다.





무척 사고싶은 헤드셋이 있어 미리 아마존으로 배송을 시켜놓았었다. 아마존 허브에 가서 픽업도 완료.



홀푸드에서 간식 거리를 자주 사먹었다. 세상에 망고가 1달러라니! 달달하니 맥주 안주로 뚝딱 먹었다.



저지 가든몰의 나이키. 태진이와의 약속이 아니었다면 저지 가든몰에서 헤어나오지 못할뻔 했다.



덕분에 귀여운 운동화 세 켤레를 득템!


뉴욕 닉스

야구도 농구도 모두 보고 싶었는데, 시즌 일정 상 애매한 시기에 방문하게 되어 관람 가능한 경기는 뉴욕 닉스의 경기 뿐이었다. 처음보는 NBA 실황. 대단한 쇼비지니스였다. 뉴욕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영화 <언컷젬스>와 <허슬>을 봤던 터라 더 몰입이 되기도 했다.



뉴욕 닉스의 홈경기장인 메디슨 스퀘어 가든.



경기장 내에서 파는 생맥주가 무려 16불이다.



큰 경기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 틈에서 보는 경기란. 얼마전 작고한 뉴욕 닉스의 레전드 윌리스 리드를 기리는 이벤트가 곳곳에 있었다.



매치 중간 중간에 경기에 참석한 셀럽들을 비춰주었다. 케빈 베이컨이라거나 니콜라스 홀트같은! 카메라가 비췄을 때 케빈 베이컨의 표정과 제스처가 잊혀지지 않는다. 그저 카메라를 응시하며 뿔테 위로 눈썹을 치켜세우는데 그 쇼맨십이 왜이렇게 멋져 보이던지. 쑥스러워하던 니콜라스 홀트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물론 니콜라스 홀트는 경기가 끝나고도 코트에 머물며 찾아온 모든 이들에게 싸인을 해주는 멋진 모습을..



경기는 137대 115로 뉴욕 닉스의 대승. 골잔치였다.



작전타임이나 쿼터 사이사이마다 이벤트로 가득했다. 이게 바로 미국식 쇼비즈니스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다음 번에 미국에 오게된다면 좀더 근거리에서 경기를 보게되기를 바라며. 그 땐 닉스와 셀틱스의 경기였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