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 포르투갈 / Lisbon, Portugal

8월 30일부터 9월 11일까지 포르투갈에 다녀왔다. 그간 쌓아뒀던 아시아나 마일리지를 소진할 생각으로 올초 적당한 구간을 눈팅하다, 바르셀로나행 비지니스 편도티켓을 끊었다.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을 돌까도 싶었지만, 몇개월간의 고민 끝에 전 일정을 포르투갈에만 투자하기로 했다. 바르셀로나로 인지된 스페인은 별로 나와 맞지 않는 느낌이었기에 아무 고민 없이 리스본 인 포르투 아웃 티켓을 끊었다.

리스본에서 시작해 버스를 타고 포르투로 도시를 훑으며 쭉 올라갔다. 렌트를 하지 않은게 좀 아쉽기도 하지만, 술을 맘껏 마실 수 있어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포르투갈은 생각보다 지저분했고, 무질서했고, 물가가 저렴했다. 그들만의 언어를 사용하는 국가들의 곤조에 대해 생각했다.

리스본에는 4박 5일을 머물며, 중간에 신트라에 다녀왔다.




창문 세 개를 차지한 채 누워가는 여행이란. 아침이 밝기 전, 열무국수로 하는 해장이 좋았다.



바르셀로나를 경유해 리스본에 밤늦게 도착했다. 좀더 짧은 경유편을 끊었어도 됐을텐데 괜한 조바심에 네다섯시간을 꼼짝없이 기다려야 했다.



리스본에 대해 아무런 정보가 없이 갔다. 나름 노력한 P형 여행. 아침에 구글맵을 슥 훑고 알파마 지구부터 오르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알파마 지구는 담배꽁초며 쓰레기며, 겉보기와 다르게 전체적으로 더럽고 무질서했다.



그래도 오랜만에 만나는 유럽의 감성이란.



Portas do Sol 전망대에서. 이제야 정말 리스본에 있다는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조르주성으로 올라갔다. 1147년부터 우리를 기다려온 성이라니.



이른 아침에 입장했더니 무척이나 한산했다. 높은 곳에 있어 그런지 바람이 무척 시원했다.



성내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테이크아웃해 바람을 느끼며 마셨다. 기원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가 고스란히 전해오는 성을 산책하듯 구경했다.



성의 디자인은 무척이나 밋밋했는데, 그게 되려 무척 좋았다.



성벽 안쪽에서 바라본 디펜스의 방법.



성벽 위에 올라 걸으며 360도의 리스본을 구경했다. 문득 두브로브니크에서 성벽투어를 안한게 조금 후회되기도..



성을 내려와 점심을 먹으러 가기전. 마트에 들러 sumol을 사 마셨다. 듣던대로 맛있었다. 갈증때문인가?



구글에 찜콩해둔 여러 음식점 중 가까운 곳으로 향했다. 생선구이 전문점이었는데 그 포스와 느낌이 동대문 골목의 생선구이집같았다. 생선구이 하나와 맥주 한병, 그리고 스몰사이즈의 와인을 시켰는데 주문이 잘못들어갔는지 거의 하프보틀 사이즈의 와인 주전자가 나와버렸다. 맙소사, 호구당했구나, 생각했는데 막상 생선구이를 먹다보니 와인도 남김없이 다 마셔버렸다. 나중에 계산서를 받고나서야 알게되었는데 저 와인은 정말 스몰사이즈.. 잦은 정전과 TV에서 흘러나오는 시끌벅적한 포르투갈 아침마당과 함께한 맛있는 점심이었다.



굴벤키안 미술관으로 향했다. 지하철을 타는 대신,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무척 좋았다.



박물관에 도착. 듣던대로 박물관에 정원이 있다기보다 정원 안에 박물관이 있는 느낌이었다.



박물관의 정신이 건축과 미술품 큐레이션 모두에 투영된 것만 같았다.



옛 포르투갈 왕의 옷. 아담한 사이즈의 옷을 보며 그 옛날 왕의 모습을 상상했다.



이번 박물관 방문의 목적! 마드리드에서 건너온 램브란트의 자화상을 맞이하다. 한참을 구경했다.



그밖에도 좋은 작품들이 많았다. 요즘은 회화보다도 조소에 감명을 받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그 먼 옛날부터 어떻게 이렇게 온전한 상태로 발견될 수 있었을까.



어떤 post processing을 거쳤는지 궁금해졌다.



중국에서 건너왔다는 도자기들.



박물관 곳곳의 인테리어가 너무 좋았다. 나무와 가죽의 적절한 조화는 정말 완벽한 안정감을 준다.



Edgar Degas가 그린 Henri Michel-Lévy의 초상. 유일하게 엽서를 구매한 작품. 렘브란트는 visiting artwork이라 엽서가 없었다.



박물관 내 카페에서. 선와인 후관람대신 후와인으로 감상의 여운을 씻었다. 평화로웠다.



다음 행선지로는, 무작정 강을 건너 알마다 지구로 가보기로 했다. 페리를 타고 이동한다. 갑판 위를 걷고 싶었는데, 탑승객에게 허용된 갑판은 없었다.



알마다지구에 도착. 무척이나 하고싶은 말이 많은 표지판.



트램을 타지 않고 무작정 걸었는데, 이렇게 대단한 오르막일줄이야.. 알마다지구는 방금전까지 있었던 리스본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리스본 현지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최종 목적지인 구세주 그리스도상에 도착했다. 엘레베이터를 타고 전망대까지 올라가 찍은 사진. 그림자진 그리스도상이 보인다.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그리스도상을 보고 감동받아 이 곳 리스본에도 비슷한 상을 세웠다 한다.



다시 강을 건너 타임아웃마켓으로 저녁식사를 하러 왔다. 듣던대로 무척 힙했다.



여러 샵이 있었지만 막상 먹고싶은 메뉴는 없어, 간단하게 고등어 타파스에 와인을 한잔했다.



좀 늦었지만 야경을 보러 Miradouro de São Pedro de Alcântara로 향하는 길. 아쉽게 역방향의 석양을 보게되었지만 로맨틱한 버스킹 음악을 들으며 바라보는 조르주성을 비롯한 풍광들이 멋졌다.



해가 떨어지자 리스본 곳곳에 노천 테이블이 깔렸다. 생각해보니 해가 중천일때도 노천 테이블은 가득했다. 나도 숙소 근처의 바에서 신트라 여행 계획을 세웠다.



포르투갈 곳곳에 있는 정어리캔 기념품샵. 내용물은 똑같다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요즘까지 연도가 적혀있어 선물용으로 사가기 좋다했다. 나는 그냥 구경만ㅎㅎ



리스본 관광 첫날 하루 4만보를 걸어버렸다. 남은 일정에서도 대부분 2~4만보의 강행군이 지속되었다.. 누가 시키지 않은 셀프 고생.. 리스본은 대단하게 위험하지도 않지만, 안 위험하지도 않은 도시라는 생각을 했다. 생각보다 껄렁이들이 많았고, 대마 냄새도 심심찮게 풍기고, 시내 곳곳의 돌길이 생각보다 울퉁불퉁해 걷기에 불편할 때가 많았다.



9월 2일의 아침. 오늘은 트램을 타고 리스본을 둘러보기로 했다.



리스본 어딜 가도 웨이팅이 장난 없었는데, 특히나 알파마지구를 도는 이 28번 트램은 그 악명이 자자했다. 첫차를 타기위해 아침 일찍 부리나케 나왔다. 첫차를 기다리며 마시는 에스프레소 한 잔이란..



일찍 나선 덕분에 트램 한구석 자리에 안착했다.



트램자체는 부다페스트에서도 심심치 않게 탔던 터라 큰 감흥은 없었다. 하지만 좁은 1차선의 골목을 드리프트하듯 달리는 경험이 신기했다. 트램과 자동차 도로의 구분이 없어 누가 길가에 불법주차를 했다간 트램도 온종일 차가 빠지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좁은 골목을 통행하는 사람들과, 건물 2층의 빨래들을 근척에서 구경할 수 있었다.



숙소 근처에 있는 Arco da Rua Augusta. 저 문을 가로질러 나가면 타구스강변의 너른 광장이.



Manteigaria에서 사먹은 에그타르트. 맛있었지만 내겐 너무 단 음식.. 후에 포르투의 Manteigaria에서 먹은 에그타르트가 정말 압도적이었다.



Trobadores라는 중세풍의 식당에서 초리조를 안주삼아 맥주와 와인으로 점심을 해치웠다. 토기에 마시는 느낌이 생경했다.



벨렝지구로 넘어왔다. 날씨가 정말 좋았다. 벨렝탑.


그리고 발견기념비. 발견기념비가 정말 멋있었다. 엔히크 왕자를 필두로 줄지어 서있는 인물들의 표정과 포즈, 구도가 정말 좋았다.



베라르도 박물관에 갔다. 이곳 역시 건축이 정말 좋았다.



사람이 없어 한산했는데, 관람하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관람을 마친 뒤 여운을 곱씹으며 제로니무스 수도원 앞 카페에서 와인을 한잔했다.



마누엘 양식으로 지어진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부다페스트의 마차시 성당이나 국회의사당을 떠올리게 한다.



그 와중에 절대 그냥 밋밋함을 허용하지 않는 사람들. 벽 중간의 화려한 문양이 재밌었다.


리스본에 다녀온 모든 사람들이 극찬하는 벨렝 지구의 파스테이스 드 벨렝에서 에그타르트를 포장했다. 슈가파우더와 시나몬가루까지 포장해주는 센스란.. 가게 앞 공원 벤치에 앉아 야무지게 먹었다.



트램을 타고 LX팩토리로 넘어갔다.



리스본 힙스터들이 모여있는 느낌이었다. 서점, 빈티지샵을 구경하며 잠시 쉬었다.



그리고, Miradouro da Senhora do Monte에 올랐다. 이 곳의 존재를 몰랐는데 상조루즈성에서 리스본을 둘러볼 때 멀리 보이는 이 곳이 어찌나 멋져보이던지. 홀로 높이 솟아있는 언덕을 지키고있는 커다란 나무가 무척 인상적이란 생각이었다.



맥주를 한 병 사들고 난간에 걸터 앉아 석양을 기다렸다. 석양이 지는 한 시간동안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이런 풍경을 누군가와 함께 보고있다면, 속깊은 말까지도 속삭이게 될 것 같다는 생각. 직접 겪으면 숨이 턱 찰만큼 힘들지만, 위에서 바라보면 너무 아무것도 아닌 경사들. 리스본을 가득 채운 garble과 hip 지붕들. 반복되는 무단횡단과 그에 걸맞는 무척 짧은 신호등 신호, 그리고 사회적으로 무단횡단하는 이들에게 양보하는데 익숙한 차량들. 그들만의 질서. 여느 유럽처럼 에어컨 없이도 시원한 방. 석양이 보이는 맨션이지만 굳게 닫혀진 창문들. 소중한 것의 가치를 매일 지각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럼 지금 내게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



야경까지 보고내려오니 시간이 무척 늦어졌다. Pink street의 생선요리집에 갔는데 그 집의 생선요리는 전부 캔요리라고.. 근처의 다른 음식점에서 조개찜에 와인을 찹찹 해치웠다.



트램의 원심력을 고려한 노면 설계가 무척 인상깊었다.



리스본에서의 마지막 날. 아쉬움에 노천 테이블에 앉아 와인을 한 잔 때리며 리스본 여행을 마무리했다.



다음 날 숙취를 해결하러 숙소 1층 카페에서 그릭요거트볼과 오렌지 주스를.. 이 카페가 엄청 유명한 곳인줄 모르고 매일 지나쳤는데, 요거트볼 맛이 일품이었다. 여행은 항상 아쉬움으로 가득하구나. 그래도 맛보고 떠나게되어 다행이다.

그나저나 콘택트렌즈 한쪽을 잃어버려 멘붕이 왔다. 다음 날 알게된 사실인데.. 한 쪽 통에 두 짝을 다 넣어둔 바람에 하루 종일 두 벌을 한 눈에 끼고 다닌 것이었다.. 또르르.



만석의 flixbus를 타고 다음 도시로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