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둥 / Bandung

2019 Aotule summer program 참여를 위해 2019.07.31 - 2019.8.18 의 일정으로 인도네시아 반둥에 다녀왔다.

동남아 여행이나 음식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어, 싱가폴이나 홍콩을 제외하고선 다녀올 엄두를 내지 못해왔다. 이상하게도 올해는 하노이도, 반둥도 다녀오게 되었는데 이렇게 점차 그 두려움을 무너트려가는 걸까 하는 생각도. 물론 아직도 좀 어렵긴 하지만ㅎㅎ

자카르타가 아닌 반둥에 대한 정보가 일절 없이 방문했다. 가이드북도 없고, 네이버나 구글 검색에도 아주 일부만 나올뿐. 아마도 계속 챙겨주는 프로그램 커미티나 버디 친구들이 없었다면 꽤 많이 헤맸을 것 같아 무척 고맙다.

힘든 고비들이 몇 번 있었다. 음식물 쓰레기 재활용 식당 방문이 가장 힘들었고, 인터넷을 쓰려면 감수해야 하는 모기떼들, 음식 위의 개미들, 엄청난 트래픽잼, 불편한 화장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이 더 많아, 반둥에서 돌아오는데 아쉬움이 좀 남기도 했다.

나에 대해 그리고 다른 사람과 나의 관계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해보고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았다. 그동안 내가 잘못 처신해온 것들, 정말 그러고싶지 않은데 계속 가지게되는 나쁜 습관 같은 것들. 불평불만이 많았는데 결국 그 불평불만의 화살은 다시 내게로 돌아옴을 크게 깨달은 시간이기도 했다.

세상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걸까. 그들의 삶에서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까 상상해보기도 했다. 국도에서의 엄청난 트래픽 잼 덕분에 사람들이 어떻게 집에 앉아있거나 누워있는지까지 볼 수 있었는데 그냥 그들의 삶과 내 삶이 그렇게 뭐가 다른가 생각이 들기도 하고. 결국 사람사는건 다 똑같구나, 내가 처한 어려움도 그렇게 대단한 어려움이 아니구나 하는 것들을.

다리카와 자유시간을 보내고서 비어포인트에 앉아 구글 번역기를 돌리며 대화할 때도 오래 생각날 것 같다. 나보다 두 살이 많으며 매일 밤 5살배기 딸 캐논과 페이스타임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거나, 박사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으며, 공무원인데 허락을 받아 박사를 밟게 되었다는 것, 아직 영어에는 서툴지만 다른 데는 서툼이 없다는 것. 그런 피상적인 사실들만 알고 있었는데 좀 더 허심탄회한 얘기를 하던 순간이었다. 그녀는 2년 전 이혼을 했고,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박사를 따고나면 어떻게 살고싶은 지 같은 얘기들. 다리카도 나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고, 나도 다리카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데 느껴지는 교감이 신기했다.

늦은 밤 고젝 바이크를 타고 도심을 달리면서 에코브릿지, 최백호의 부산에 가면을 듣던 밤거리. 반얀트리 사이로 비친 햇살을 가르며 달리던 길. 처음 club soda 가 한 잔 하던 (아마도 지금은 더 이상 영업을 하지 않을) iPoet Bar. 남십자성. 자카르타 왕복 버스에서 목이 쉬도록 부르던 노래방. 밤마다 로비에 모여 앉아 말도 안되는 이상한 농담따먹기를 하던 친구들. 고젝 푸드로 주문한 아침의 아메리카노 한 잔. 꽤나 괜찮았던 순간들이 많아 아무래도 먼훗날 반둥에 대한 많은 것들을 잊어도 좋은 이미지로만 기억하게 될 것 같다.

반둥에 있는동안 인도네시아어를 좀 배웠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할 수 있게 되었고, 내가 뭘 가졌는지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인도네시아어를 아예 못하지만 아주 조금 한다고 말할 수 있고, 숫자를 셀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순다니즈 방언도 일부 배웠다. 하뚜루 누훈이나, 사미사미, 분딴같은 짤막한 단어들.

홀로 고젝을 타고 열심히 돌아다닌 덕에 반둥 시내 맵도 이제 어느 정도 감을 잡았다. 우리나라와 운전 방향이 반대인데다, 일방통행길이 많고, 신호등이 없이 수신호로 우회전하는 경우가 많아 좀 헤매기도 했다. 게다가 보행로가 무척 열악해 짧은 거리도 택시를 타야하는 경우가 많았다.

인도네시아 친구에게, 내가 다시 반둥에 돌아와 직업을 갖게된다면 어떨까? 물어보니 급여가 말도 안되게 적을거라며 그러지 말라 한다. 인생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일까. 미래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해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2016년 여름을 함께 보냈던 Astri를 만난 것, 2016 AOTULE 채팅방에 ‘모두들 잘 살고있니? 우리 다시 만났어. 언젠가 여기 모두 다함께 만나는 날이 올까?’ 메세지를 남기게 된 것. 계속 인연의 끈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다.

한국에 잠깐 돌아와서까지도 모두들 여흥이 가라앉지 않은 듯 그룹 채팅방에 ‘다들 잘 돌아갔니? 너무 좋았어~’ 라고 메세지를 하나 둘 남기는 친구들이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다. 모두들 수고 많았어~! 언제 어디서든 다시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