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코우 / Krakow

지난 10월 13일은 생일이었다. 생일에 집에서 미역국 끓여먹으며 쉴까도 싶었지만 평소의 생일과는 다르게 뜻깊게 보내고싶었다. 고심끝에 아우슈비츠에서 생일을 보내기로 맘먹었다. <더 리더>에서 마이클이 느낀 그 감정을, 나도 한번 느껴보고 싶었다.

이번 여행 전까지는 아일랜드가 우리나라의 정서와 가장 비슷하다 생각했는데 우리 나라와 가장 비슷한 나라는 폴란드라 생각이 든다. 역사도, 음식도 이것저것ㅎㅎ

수도인 바르샤바까지는 가지 못했고, 오슈비엥침, 크라코우, 비엘리츠카에 들렀다.

여행을 가기전엔 일상에 치여 몰랐는데, 세상은 완연한 가을이었다. 낙엽비를 맞고 밟으며 뭔가 알 수 없는 오묘한 여행이었다.



지난번 늦잠으로 폴란드행 비행기를 놓쳤었지만, 이번엔 새벽기차로 이동했다. 기차 안의 침대에서 자며 이동하는건 처음이었는데 덜컹거리는 기차의 묘미는 있었지만 아.. 베를린까진 못갈 것 같다.


기차는 크라코우까지 끊어놨었지만 크라코우 가는 길에 들리는 오슈비엥침에서 내려버렸다. 오슈비엥침엔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있다.


새벽 5시였는데, 아우슈비츠가 개장하는 8시까진 시간이 꽤 남았었다. 역에서 기다릴까 하다가, 그냥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아우슈비츠까지 가벼운 아침 조깅을 해볼까 해서 걸었다. 안개가 자욱한 것이, 운치 있다기보단, 으스스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여러개가 있는데, 이 곳은 제 2 수용소였다. 거기 입구서 방황하고 있으니 착한 폴란드 아저씨 직원이 자신의 차로 제 1수용소까지 데려다 주었다. 후에 이 아저씨는 커피도 주시고, 개장 시간보다 일찍 안에 들어가게 해주시고 암튼, 영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여러가지로 감사했다.


그 유명한 수용소 정문의 문구이다. 노동이 너를 자유롭게 할거라는 “Arbeit macht frei” 가이드북에서 봤던 대로 B가 뒤집혀 있었다.


아침 첫 입장을 했더니 사람이 거의 없었다. 사람이 없어서였을까 굉장히 공허했다.


수용소 왼편 끝에 커다란 굴뚝이 있길래 수용소 안에 들어서자 마자 가보았다. 전혀 생각치도 못했는데, 화장터의 굴뚝이었다.


내부도 들어갈 수 있었다. 카메라를 이용해 밝게 찍어 사진이 밝아보이지만 실제로는 깜깜했다. 저 문을 들어서기가, 정말 너무 무서웠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움찔했다.


아까 들어간 방에서 가스로 사람들이 죽으면, 이 옆방으로 바로 시체로 옮겨 태워버리는 것이었다. 정말, 섬칫했다.


수용소 내의 여러 건물들은 전시관으로 쓰이고 있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전시관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기도 했고, 너무나도 섬뜩해 차마 찍지 못했다. 이 사진의 전시관과 거의 흡사한 구조인데, 이 복도의 끝까지 여자들의 머리카락으로 가득했었다. 그 잘린 머리카락들보다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죽었다고 생각하니 정말 구역질이 날뻔했다.


수용소 한 가운데 있는, 죽은 사람들을 걸어놨다는 곳.


아까 그 화장터 이후로, 굴뚝만 보면 심장이 벌컹거렸다. 다행히도 이 굴뚝들은 주방의 굴뚝.


발길을 돌려 아까 들어가진 못했던 제 2수용소로 넘어갔다. 제 2수용소는 훨씬 더 광활하고 공허했다. 수많은 건물이 무너져 터에 굴뚝들만이 남아있었다.


그 중 내부를 공개해놓은 건물이 있어 안에 들어갔다. 겉에서 보기엔 그냥 벽돌건물이었는데, 정말 깜짝 놀랐다. 여기서, 추위와 배고픔과 공포와 슬픔에 갇혀있었을 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수용소의 가장 끝쪽, 기찻길의 끝나버리는 그 곳엔 두개의 폐허와 같은 건물의 흔적만이 남아있었다. 무엇인가 하며 다가가보니, 헉. 다이너마이트로 폭파된 화장터였다.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 이 계단을 내려가고, 장신구와 옷을 벗고, 샤워기가 틀어진 순간 가스가 나오고 바로 옆 방의 화장터로 옮겨져 굴뚝으로 먼지가되어 버리는. 정말 너무 놀랐다.


수용소를 다 돌아보고, 역으로 걸어가는 길. 가을인데, 정말 씁쓸하고도 가슴 먹먹 가을이었다.


크라코우로 옮겼다. 이번 여행에선 정말 맛있는 것을 많이 먹고오려 했다. 미리 검색해 본 스시집에 가려고했는데, 헉. 왜 그 자리에 없지ㅜㅜ 어느 식당에 가야하나 한참을 발걸음을 옮기다가 광장에서 가이드북에서 본 음식을 발견했다. 여행 가기 전에도 회사 동료가 가서 꼭 먹어보랬었기에 기억에 남아있는 절인 양배추 고기 수프 였다. 정말 맛이 김치찌개와 흡사해 놀랐다.


광장의 중앙에 떡하니 위치한 직물회관.


광장의 한편에 자리잡은 성 마리아 성당. 양쪽 탑이 비대칭인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매시 정각에 들려오는 트럼펫 연주 헤이나우도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결국 저녁 먹을 식당을 찾았다! 우리나라 만두와 비슷하다는 피에로기. 만두피가 두꺼운 것을 빼고는, 정말 만두와 비슷했다. 그리고 저 맥주는 lezajsk 인데, 소맥맛이다. 하하하.


다시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다 아까 그 성당 안에 들어가봤다. 오. 정말 놀랐다. 유럽에서 본 성당 중 가장 내부가 화려했다. 밉게 화려한게 아니라 너무나도 세련되고 우아하게 화려해 더 놀랐다.


해가 지고서는 유태인 지구에 걸어갔다. 폴란드서 정말 놀랐던 것 중 하나는 트램의 정차. 트램이 정차하고 문이 열리고 사람이 타는게 따로 공간이 있지 않고 그냥 길가에서 길 중간에 멈춰 서버린다. 할머니도, 휠체어탄 사람도 길을 건너 트램을 타고 내리는데 어우.


걸어서 크라코우 강변을 걷다가 밤이 늦어져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길. 아직도 광장의 불이 환하다.


다음 날 일찍 소금광산을 보기위해 비엘리츠카로 넘어갔다. 130m 를 내려가는 소금광산에서 2시간이 넘도록 걸어야만 했는데, 내가 구경한건 1% 뿐이라하니 그 크기가 얼마나 클지는 상상이 되지 않는다. 광산 내부에는 호수도 있고 예배당도 있었다. 이렇게 큰 공간들을 뚫기 위해 고생했을 광부들을 생각해봤다. 돌아다니다가 벽에 맺힌 소금 결정도 한 번 몰래 따먹어 봤는데 짭조름한것이, 맛있더라.


비엘리츠카에서 다시 크라코우로 돌아왔다. 크라코우의 유명한 바벨성의 모습. 성 자체는 그저 그랬는데, 강변에 이렇게 아름답게 서있는 것이 꽤 멋졌다.


크라코우 성에 있는 용의 동굴에 가보았다. 옛날에 용이 살았다던가 뭐래나. 난 안에 용이 아직도 있을 줄 알았더니, 없었다.


그리고 발걸음을 옮겨 오늘의 맛있는 식사를 위해! 폴란드의 전통 음식이라는 우리나라 족발과 비슷한 Golonka. 어머 아 진짜 너무 맛있어서 놀랐다. 겉은 굉장히 바삭하고 안은 굉장히 부드러운. 함께나온 겨자에 찍어먹으니 정말 족발 먹는 느낌이 났다.


그리고 발걸음을 돌려 도착한 쉰들러의 공장. 사실, 쉰들러 리스트에 대한 별 생각이 없어서 그냥 그저 그렇게 보았다.


안에서 당시의 옷과 모자를 입고 써볼 수 있었는데 허거덩. 코트가 이렇게 무거울거라고 상상도 못했다. 그 추운 겨울마다, 이렇게 무거운 옷을 짊어지고 다녀야 했을 당시를 떠올리며 내가 지금 느끼는 것들이 정말 지금의 관점일 뿐이구나 생각했다.


공장의 마지막쯤에 원형 공간 안에 빼곡히 적혀있는 쉰들러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