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키드 런치 / Naked Lunch

1991 / David CRONENBERG / IMDb
★ 4.0

정말 이상한 말인데,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몽롱하고 황홀했다. 영화적 체험에서나마 이런 나른한 몽롱함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즐겁고 좋다. 하지만 원작과 원작이 바탕으로 한 작가의 실화를 듣고 보니, 이 영화에서 황홀함을 느꼈다는 배덕감이 어마 무시하게 밀려오기도 했다.

원작을 영상화시킨다고 했을 때 이 작품보다 더 근사한 재현이 있을 수 있을까 싶었다. 이따금씩 등장하는 삼자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현실에 대한 자각이 너무 마음 아팠다. 현실에서의 마음과 상황이 가난해지고 빈틈이 생길 때, 그 반대 작용으로 정신의 방이 더 거대해지고 촘촘하게 채워진다는 것이 서글프다.

사람마다 메타포를 다른 방향으로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조차 즐거웠다. 불확실한 경계에서 오는 할루시네이션이 관객에게까지 이어지는 것 같아 좋았다.

너무나도 적절하게 녹아드는 음악과, 그 음악에 받쳐지는 피터 웰러의 목소리가 무척 아름답게 느껴졌다. 세피아 빛의 의상과 인터존 역시.

지금보다 좀 더 나이가 들어 이 영화를 다시 꺼내보고 싶단 생각을 했다. 그땐 지금의 내가 보지 못하는, 또 다른 세계를 눈치챌 수 있게 되길 바라며. 민음사에서 출판한 원작을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