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목소리2 / Habitual Sadness 2

2025 / Young-Joo BYUN / IMDb / KMDb
★ 3.3

<낮은 목소리> 시리즈는 꽤나 오랫동안 보고 싶은 영화 리스트에 담아뒀었는데, vod를 접할 길이 없었다. 이번 영화제에서 특별전을 하는 두 번째 낮은 목소리를 비디오 라이브러리에서 빌려 보았다.

생각과 웃음이 넘치는 분위기의 영화였다. 1편을 찍은 나눔의 집이 1996년 광주 퇴촌으로 이사하며 한 번 더 찍게 된 작품이라는 나레이션과 함께 시작되었다. 친가를 방문하러 자주 오가던 광주 퇴촌에 나눔의 집이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다.

다큐멘터리 영화는 언제나 감상을 작성하는 것이 어렵다. 나는 영상물을 영상물로만 보고 싶다. 영상물에 대한 삐끗한 시각의 표현은 영상물에 대한 감상이지, 그 영상물이 담은 대상에게 하는 말은 아니다. 그런 괜한 오해를 사고 싶지 않기에, 무척이나 조심스럽고 고민된다.

어찌 되었거나 <낮은 목소리>가 갖는 한국 영화사에서의 의의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일본 위안부 문제를 제대로 다룬 (거의) 첫 한국 영화였다는 점, 그리고 다큐 속 인물들과의 라포를 쌓아가며 그들과 나란히 앉은 카메라가 되어 그들의 얘기를 들어낼 수 있었다는 것, 그런 특징들에서 오는 울림이 있었다. 특히나, 할머니들의 연배는 특정 시기에 고정되어 있고 그리하여 이 연대의 소리침을 영화에 담을 수 있는 것에도 데드라인이 정해진 문제였다 생각하기에, 그 데드라인 안에 영화라는 결과물을 남겨준 데에 대한 고마움이 있기도 하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연민과 분개의 감정을 갖지 않은 한국인이 있을까. 다만 그 위에 또 다른 가치를 얹으며 문제를 교묘히 다른 방향으로 확장시켜 나가는 사람들, 그런 이들의 왜곡이 싫을 뿐이다. 국민 모두가 다른 가치를 가질 수 있는데, consensus에 대한 고려 없이 깃발을 잡고 좌로 우로 걸어가는 모습이 좀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하기에.

소록도, 나눔의 집, 한국에서의 연대의 역사들이 새삼 피부로 와닿는다. 96년의 내 시간들과 영상 속의 시간들이 오버랩되며 알지 못했던 세상 한 켠의 이야기를 새겨 들었다. 덩굴 숲이 무너져 내리며 사라져 버린, 그들이 결국은 도달하지 못한 평범한 행복의 삶에 대해 생각하기도 했다. 얻어먹지 않기 위해, 자생하려는 노력으로 촌부로 돌아간 할머니들의 모습이 어딘가 짠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다만, 영화의 접근법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영화가 가져가는 메시지에 불필요한 감정적 호소의 레이어가 끼어있는 느낌이 이따금씩 들었다. 이성적인 태도로 F는 조금 넣어두고서, 감정을 최대한 배제해 더 차갑게 설득하는 세련된 접근할 수는 없었던 걸까. 그런 감정에 치우쳐진 설득이 좀 안타깝게 느껴졌다.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지만, 실수 뒤의 행동이 우리를 결정한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고 그래서 우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