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 Moving

1993 / Shinji SÔMAI / IMDb
★ 3.7

열 개 정도의 기억만 남길 수 있게 성장해버린 녀석.

처음 본 소마이 신지 감독의 영화였다. 작년 한국 극장가에 뒤늦게나마 개봉이 이어지며 무척 궁금했는데 이제서야. 남은 작품들도 열심히 달려야겠다 생각했다.

비슷한 시기나 같은 국가에서 태어난 작품들과 궤를 함께하는 것이 무척 흥미로웠다. 단순히 아이의 시선에서 바라본다는 것에 있어서 <하나 그리고 둘>이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들이 생각난 걸까 싶었는데, 영화의 중후반부쯤에 그것만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흔들리는 불빛이 가득한 밤거리를 두 피사체가 고요히 달려가는데, 그 정서는 90년대의 타이페이나 서울에서도 포착되었던 감성이었다.

가족을 이룬다는 것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닫힌 문 뒤에서 왜 낳았냐 묻는 딸, 피를 흘리며 그 문을 부시는 엄마. 그 시퀀스를 보는 내내 마음이 철렁거렸다. 어른의 나이가 되어서 보는 어린 나. 오렌지주스로 가득한 세상을 되돌아보며.

제 나이에 걸맞은 얼굴들을 생각한다. 그 나이, 그 시간을 그대로 즐기며 커주기를 바랐다. 지금의 나 스스로도 지금 나의 나이에 걸맞은 얼굴을 간직하고 가꿔나갈 수 있기를 바라기도 했다.

판타지적인 상상이 섞여 결론지어지는 영화가 무척 낯설면서도 마음 아팠다. 그저 어린 날 어느 더운 여름날의 축제날처럼 기억되기를.

낯익은 배우들의 젊은 모습을 볼 수 있어서도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