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광이 피에로 / Pierrot Goes Wild

1965 / Jean-Luc GODARD / IMDb
★ 3.7

어둠 속에 존재하는 영화라는 매체의 공간의 한쪽 벽을 터치하게 만드는 작품들이 있다. 벽의 존재를 지각하면 이제는 벽의 존재를 모르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 올해는 그런 영화들을 꽤 만난 덕분에 촉각으로만 더듬던 벽들이 좀 실체화되어 공간을 구체화시킬 수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가끔 내 뇌의 한 켠에서 삐에로와 마리엔같은 친구들이 망아지처럼 마구 뛰어날뛰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잡으려한다고 잡히지 않고, 내버려둔다고 가만히 있지 않는 뉴런들. 가끔은 말이 되고, 그리고 자주 말이 되지 않기도 하는 현실적이면서 비현실적인 공간을 누비는 친구들. 그런 객체들을 시각화시킨다면 이 작품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놓을 수 없는 끈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떨쳐버리고 싶어도 떨쳐지지가 않는 것들, 관계들. 결국은 총으로 쏴 끝내버리고, 얼굴에 페인트를 칠해 진짜 피에로가 된 채 내 머리에 폭탄을 빙 둘러 불을 붙여도, 그 찰나의 순간 바로 후회해버리는 것. 그렇지만 결국 폭탄은 터져버리고. 사랑했지만 떠나보내고, 떠나보낸 것을 후회하지만 지나간 과거는 어쩔 수 없다는 개인적인 말을 이렇게 싱그럽고 유려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놀라웠다.

얼마전 이 작품을 놓고 서울에서 정성일 평론가의 대단한 GV가 있었다고 들었다. 시간이 늦어져 극장이 문을 닫아야해 GV도 끝내야 했다는. 그가 언급했다는 그의 인생과 고다르의 인생이 이 작품의 한 미사여구가 될 수 있겠지만, 이 작품은 이 작품 그대로 아름다웠다. 정치나 사회에 대한 배경 없이도 이 작품은 혼자 자립할 수 있는 작품이기에.

처음 본 고다르의 작품이었다. 좀 늦었지만, 젊음이 사라지기 전에 입문했다. (일찍 알았더라면 color scheme 연구의 데이터로 썼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