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 / Queer
2024 / Luca GUADAGNINO / IMDb
★ 3.5
영화라는 매체로서의 매력이 크지 않았지만,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작품들 중 가장 그의 생각과 고뇌가 진하게 풍기는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감독 스스로에게 남긴 여운과 어떤 관객에게 남긴 여운의 깊이가 다를지언정, 누군가가 가장 사랑하는 작품이 탄생했다는 점에 있어 충분히 의미있는 작업이었다 생각했다.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좋은 것들에 대한 반복이 많이 들어있다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다니엘 크레이그는 거진 남자 케이트 블란쳇이라 생각하기에 어쩔 수 없이 토드 헤인즈의 <캐롤>을 떠올렸다. 여름 향기가 가득한 미장센에선 어쩔 수 없이 감독의 전작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왕가위의 영화들도. 처음엔 그런 조합들이 그저 그런 평타의 상업영화를 위한 장치들이라 생각했는데, 영화를 다 마친 뒤 생각해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다니엘 크레이그만큼 땀 흘리는 여름의 린넨 수트가 잘 어울리는 이가 있을까. 영화 제작 과정에서 들려오는 여러 잡음에도 왜 그를 고집했는지 이해가 되는 부분들이 있었다.
50년대의 멕시코시티를 담은 로마의 세트장도 나쁘진 않았다. 조명이나 미술에서 너무나도 세트장이란 느낌이 분명하게 느껴졌는데, 그것마저도 연극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어쩌면 그런 불편함이 영화의 콘텐츠와 맞아 떨어졌는지도 모르겠다.
JW앤더슨의 의상도 좋았는데, 얼마전 유니클로에서 집었다가 두고온 유니클로xjw앤더슨 콜라보 티셔츠를 생각했다. NIN의 음악 선곡도 좋았다. NIN에 대해 짜요가 말할 때 흘려들었던게 생각나기도 했다.
영화를 보는 당시엔 비유가 굉장히 직설적이라 시시콜콜하게 느껴졌던 담론들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 밀물처럼 크게 다가왔다. 세상이 0과 1이 아닌데, 어쩌면 우리는 관계에 있어 그런 포지션에 집착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나도 몰랐던 나를 마주하면 좀 어때. 나를 잡아먹힐만큼 사랑했던 누군가를 놓치고 인생의 한 페이지에 남겨두면 좀 어때. 이도저도 아닌 내 정체성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를 있는 그대로 즐기는 것도 인생의 한 기쁨이라고. 육체와 정신이 좀 disembody되면 좀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