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야구 경기 / Eephus
2024 / Carson LUND / IMDb
★ 3.5
90년대 메사추세츠의 한 동네에서 중학교를 건설하기 위해 야구장을 철거하기로 한 뒤 열리는 마지막 야구 경기에 대한 영화.
야구 기록지로 시각화한 오프닝 타이틀이 귀엽고 좋았다. 두 아마 야구단이 어떻게 운영되었는지, 어떻게 결성되어 있는지 그런 배경 설명에 대한 주저리 주저리 컷이 모두 생략되었는데 그게 좀 불친절할 수는 있어도 마지막 야구 경기에 대한 단도직입적인 몰입에 도움을 준다 생각했다. 사실, 유니폼의 붉고 푸른 색만 맞췄지 각자 다른 시즌의 유니폼을 입은 것이 모든 배경은 말해준다 생각했다.
낮시간의 경기 시작부터 늦은 밤까지의 한 경기만을 담고 있는 2시간이었는데, 몇 회차로 촬영되었을지 궁금했다. 중간중간 절점이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경기의 흐름을 끊기지 않게 촬영한 비법이 궁금했다.
영화는 생각보다 직설적으로 인생에 대해 얘기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야구와 인생이 공유하는 특성에 대해서는 아무도 토를 달지 않을 것이며 나 역시도 마음편히 즐겼다. 얼마 안되는 관중 중 한 명이 인상깊었다. 경기가 동점이 되었어도 자러가야 한다며 집으로 향하는 모습. 누가 이기고 지든 상관 없이 나는 어쨌든 자러 갈거야. 자야하는 시간이니까. ‘그래봤자 바둑, 그래도 바둑.’ 이라는 말이 생각나는 대목.
일반적인 프로야구와는 애초에 시작부터 달랐던 게임. 모든게 다 갖춰진게 인생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심판이 추가수당을 지급받지 못했다고 경기 중간에 떠나 관중 중 한 명이 심판을 보게 되고, 라이트가 켜지지 않아 어둠 속에서 게임을 하고, 공이 부족해 숲에서 찾아와야 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즐기는 야구. 인생도 각자의 방식으로 즐겨야. 어쨌거나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경기가 결국엔 끝나지만, 그 끝이 도파민이 터지듯 황금으로 끝난 게임은 아니었다. 되려 초라하다는 말이 더 어울렸는데, 게임을 각자의 방식으로 마무리하는 것도 좋았다. 쓰레기를 정리하거나, 짐을 후딱 챙겨 집으로 향하거나, 불꽃놀이를 준비하거나. 모두에게 주어진 게임의 끝은 같지만 그 게임을 어떤 색으로 마무리하는지는 각자의 태도에 달렸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의 원제인 Eephus는 아리랑볼이라 한다. 경기를 모두 마친 심판 프레디가 추위에 입김을 뿜으며 어쨌거나 이 경기를 본 자신이 Luckiest man이라 말하는 뒷모습에서 인생의 지혜를 또 배워간다.
시놉시스
한 무리의 성인 남자들이 그들이 사랑하는 야구장이 철거되기 하루 전날 연장전까지 이어지는 취미 야구 경기를 펼친다. 유머와 향수가 뒤섞이는 가운데 해가 지고, 한 시대의 끝이 도래한다.
원문 링크: https://www.jeonjufest.kr/db/movieView.asp?idx=5647
리뷰
영화의 원제인 이퓨스(Eephus)는 야구에서 매우 느린 속도로 공을 던져 타자가 공을 치기 어렵게 만드는 투구 방식이다. 느려서 못친다는 정의가 모순된 것처럼 들리지만 곱씹어보면 신비롭고 매우 철학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마지막 야구 경기>는 아마추어 야구단이 동네 경기장 철거를 앞두고 펼치는 마지막 야구 경기에 관객을 초대한다. 한 공간을 같이 써오던 사람들이 모여 함께 웃고 헛헛함도 나누며 자신들을 모아주던 공간을 끝까지 즐긴다.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끝나지 않는 경기를 통해 피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을 보여준다. (문성경)
원문 링크: https://www.jeonjufest.kr/db/movieView.asp?idx=5647
[전주 리뷰] ‘함께’라는 감각의 궤적을 따라서 - 리뷰 〈마지막 야구 경기〉
글: 김병규(영화평론가)
원문 링크: https://jeonjureview.jeonjufest.kr/post/10
카슨 룬드의 〈마지막 야구 경기〉의 원제는 ‘이퓨스(Eephus)’다. 야구에서 지극히 느린 속도로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는 구종, 이퓨스볼(일명 아리랑볼)을 뜻한다. 순식간에 포수 미트에 도착하는 빠른 속도의 패스트볼이나 놀라운 궤적의 변화로 헛스윙을 유발하는 변화구와는 차원이 다른 공이다. 이퓨스볼은 한없이 오래 공중에 떠오른 채로 큰 포물선을 그리며 느리게 도착한다. 그 공은 마치 시간을 잊어버린 것처럼 느껴진다. 〈마지막 야구 경기〉는 세계가 요구하는 속도에 대항하며 크고 긴 포물선을 그리는 사람들의 영화다.
1990년대 매사추세츠를 배경으로 하는 〈마지막 야구 경기〉는 동네의 유일한 야구경기장 철거를 앞두고 펼쳐지는 아마추어 야구단의 마지막 경기를 다룬다. 야구장은 오랜 시간 동안 그곳에 모이는 남성들의 사회적 장소였다. 야구 경기의 느린 리듬 속에서 스물네 명의 선수들은 야구장 한자리를 차지하고, 약간씩의 거리를 두고 떨어져 앉은 이들과 관계를 맺는다. 그들은 인사를 나누고 농담을 주고받은 뒤 맥주를 채우고 스트레칭을 하며 마지막 경기를 준비한다. 야구장의 철거는 단순히 쇠락하는 공간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무의미한 유희를 공유할 수 있는 놀이의 무대가 사라지는 것이고, 특정한 규칙을 가르치고 전수받는 계승의 장소가 사라지는 것이며, 끝내 남성 공동체를 지탱하는 기억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들은 주말에 야구장이 아닌 다른 곳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들은 외로움에 사로잡힐 것이다. 카슨 룬드는 1990년대 작은 마을의 마지막 야구 경기를 묘사하며 멜랑콜리에 휩싸인 미국적 남성성과 공동체주의의 한 단면을 탐색한다.
영화가 묘사하는 마지막 야구 경기는 빨리 끝나지 않는다. 해가 저물고 밤이 되면서 연장전에 돌입한다. 경기장을 비추는 빛이 사라지자 남성들은 자동차를 세우고 헤드라이트 불빛을 켠다. 누군가는 번거롭게 경기를 진행하려는 의지를 의아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마지막 경기를 허무하게 끝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경기장에 모인 모든 남자들은 공유한다. 그들은 야구 경기의 규칙을 공유하는 동시에 남성적 사회성의 규칙을 공유하는 자들이다. 그들이 잃는 것은 야구 경기가 아니라 그 규칙 아래에서 존재하던 자아의 한 측면이다. 남자들은 야구장의 규칙을 수행하는 자기 모습과 작별해야 한다.
카슨 룬드는 야구 경기의 세밀하고 작은 부분에 초점을 맞춘다. 그의 카메라는 무의미하고 쓸모없는 일이라고 치부할지 모르는 야구 경기의 세부를 현미경처럼 들여다본다. 야구 경기의 몸짓은 물론 큰 의미와 효율이 없다. 하지만 바로 같은 이유로 야구 경기의 몸짓만큼 의미 있고 매혹적인 세부는 없다고 영화는 말한다. 그것을 가로막고 중단하는 것은 현실의 시간일 뿐이다. 영화는 비현실적인 어둠 속에서 현실의 시간에 대항하는 야구의 몸짓을 포착한다. 어느덧 영화가 묘사하는 철거 직전의 야구장은 현실에서 주어진 중력에 저항하는 허구의 장소처럼 변모한다. 아름다운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