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 Park

2024 / Yo-Hen SO / IMDb
★ 3.0

대만의 인도네시아 이주 노동자의 환타지와 현실을 오가는 공원에서의 긴 대화를 담고 있다.

해가 질무렵부터 해가 모두 지고 가로등이 켜지는 어두운 저녁까지 카메라가 이동하지 않고 두 배우가 공원의 벤치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장면으로 시작했다. 이렇게 긴 샷을 편집없이 보여주는 데부터 혼란이 왔는데, 그들이 각본 없이 현실의 이야기들을 하는 인물들인지 이것마저도 모두 계산되어 외운 대사를 뱉고 있는 배우들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영화 자체는 즐겁지 않았다. 인도네시아 국적 대만 이주 노동자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너무 먼 얘기인데다, 가장 큰 문제는 내게 있어서 이 문제가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라는데 있었던 것 같다. 문득 한국의 이주 노동자 이야기였다면, 혹은 그들이 한국인이었다면 달라졌을지 궁금하다. 내가 관심 없는 것이 지역적인 문제인지 주제의 문제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타이난의 습한 더위가 화면 밖으로도 전달되는 느낌이었는데, 가로등이나 경비소의 붉은 등에 나방같은 날벌레들이 꼬이지 않는 것이 무척 이상하게 느껴졌다. 화면을 벗어났다가 빙 돌아 다시 카메라 앞으로 등장하는 배우들, 외부인의 시선으로 확장되는 카메라 무빙, 영어를 쓰던 스탭들. 현실과 극의 경계가 애매한데 이런걸 “누"하다 말해야 하는 걸까.

시놉시스
타이난 공원에서 두 인도네시아 시인이 지역 사회에서 겪은 낮 동안의 경험을 노래와 이미지, 움직임이 섞인 강렬한 야상시 퍼포먼스로 변형시킨다. 그들의 보이지 않는 낮이 밤의 시구절 속에 살아있다. 햇볕이 희미해지고, 길어진 밤은 셀 수 없는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캔버스가 된다. 이야기꾼들은 그들이 엮어내는 이야기 속으로 녹아든다.
원문 링크: https://www.jeonjufest.kr/db/movieView.asp?idx=5557

리뷰
대만 소여헨 감독의 다큐멘터리 <공원>의 중심 인물은 인도네시아에서 온 유학생 아스리와 하산이다. 이들은 매일같이 대만 타이난공원에서 만나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아스리는 자신이 이곳에서 박사 학위 과정을 밟을 수 있는 것이 대만에서 일하는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 덕분이라고 한다. 연장선상에서 그는 자신이 들은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의 사연을 시로 옮겨 낭송한다. 둘의 만남은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모이는 이 공원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은 방송을 만들자는 데까지 나아간다. 그런데 일반적인 다큐멘터리의 기준에서 <공원>은 좀 이상해 보인다. 아스리와 하산은 제작진의 촬영 ‘대상’이라기 보다 협업 상대처럼 보이고, 공원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연출이 가미된 듯하다. 일종의 ‘하이브리드 다큐멘터리’라 할 수 있는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라는 틀의 안과 밖 경계가 없는 듯 보인다. 영화의 ‘제작기’가 영화의 일부가 되고 제작진의 희망사항이 현실로 만들어진다. 감독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이 방법론에 대한 설명처럼 들린다. “풍경화를 예로 들면, 아무리 사실적이라 할지라도 화가가 눈앞에 있는 풍경을 전시장으로 가져올 수는 없다. 그러나 화가가 선택하고, 수정하고, 장식한 풍경을 바라보면 때로는 영혼이 더 먼 곳으로 옮겨갈 수 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들의 경험담만큼은 생생하다. 고향 사람들로부터 대만에서 돈벌이를 한다고 ‘외환 영웅’으로 불린다는 노동자나 수하르토 군사독재 시절 아버지가 실종된 한 노동자가 대만으로 건너와 군인의 아내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다보면 달콤쌉싸름한 그들의 삶이 짐작된다. (문석)
원문 링크: https://www.jeonjufest.kr/db/movieView.asp?idx=5557

[전주 리뷰] 언어의 정원에서 - 리뷰 〈공원〉

글: 손시내(영화평론가)
원문 링크: https://jeonjureview.jeonjufest.kr/post/19

두 남자가 공원에 앉아 있다. 마주 앉은 그들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듣자 하니 고향을 떠나 타국으로 떠나온 이들인 듯하다. 별것 없어 보이는 대화 중에 무언가 이상한 말이 끼어든다. 이쪽에서 그들을 찍고 있는 카메라에 대한 말이다. 언뜻 이쪽을 바라보는 것 같기도 하다. 카메라를 의식하고 있는 그들은 이제 자신들이 쓴 시를 읽어 보려고 한다. 그들처럼 인도네시아에서 대만으로 건너온 이주 노동자들의 삶을 그린 시다. 하늘은 점차 어두워지고 곧 가로등이 켜진다. 간단한 말과 제스처로 영화의 경계는 흐려지고, 어스름한 시각은 기묘한 분위기를 만든다. 각자가 쓴 시를 읽는 두 사람은 시인이자 학생이며, 그들이 읊는 시 속의 인물들처럼 타지에서 살기 위해 애쓰는 이주자들이기도 하다. 대상과 주체의 경계마저 흐려지는 이 흥미로운 도입부를 지나, 영화는 환상과도 같은 밤의 세계로 관객을 데려간다.

대만에서 태어난 감독 소여헨은 〈오두막 Gubuk〉(2019), 〈여공들의 기숙사 Dorm〉(2021)처럼 줄곧 이주자들에 관한 작품을 만들어 왔다. 그가 〈공원〉의 배경으로 삼은 대만의 타이난 공원은 이주 노동자들이 주로 오가는 일상적 공간이다. 그동안 여기에는 무수히 많은 이들의 경험과 이야기가 쌓였을 것이다. 고향을 떠나 가족을 위해 타지에서 힘든 노동을 감내했을 시간들,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유년 시절의 기억들, 새로운 터전에서 겪은 새로운 일들, 아마도 사랑과 피로의 날들. 귀 기울여 듣고 싶지만 이미 저 멀리로 흩어져 버렸을 그 이야기들에 영화는, 또한 카메라는 어떻게 접속할 수 있을까? 공원을 지나는 이들을 멈춰 세우고 인터뷰를 하거나, 수집한 이야기를 들고 극의 형태로 재현하는 방법을 쉽게 떠올려 볼 수 있을 테지만 〈공원〉의 방식은 그와는 다르다.

노트를 들고 밤의 공원 구석구석을 거니는 두 남자 아스리와 하산. 그들이 애초 어떤 약속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밤마다 공원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고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들었는지 묻는 말을 통해 이 동행의 조건은 충분히 유추된다. 그러니까 그들은 이주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시로 번역하는 존재들인 것이다. 대만에서 공장 노동자, 돌봄 노동자 등으로 일하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온갖 이야기. 시가 된 그 이야기들은 두 사람의 상상 속에서 라디오 프로그램의 한 꼭지가 되어 공원에 울려 퍼진다. 단지 상상만인 건 아니다. 비어 있는 경비실과 돌 모양의 스피커를 활 용한다면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경비실을 라디오 부스 삼아 이야기를 이어 가는 그들에게 다가간 카메라는 그 상상을 마치 현실처럼 만들어 주는 장치처럼 보인다.

이 영화에서 현실의 질료들은 독특한 방식으로 생기를 얻는다. 노동으로 뒤덮일 낮이 오기 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밤의 시간을 수놓는 노동자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밤의 시간을 구성하는 영화적 요소가 되어 활동을 시작한다. 두 남자가 열어 둔 말의 활로는 곧 이야기의 주인공을 직접 화자의 자리에 초대하는 경로로 이어진다. 한편 페이스북에서 이 영화를 만든다는 소식을 보았다며 영화 제작의 뒤편을 알려주고, 이제는 좀 지친다는 아스리는 예술의 쓸모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말을 던진다. 현실을 어떤 방식으로 소묘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영화는 그 쓸모와 역할에 관한 질문을 밤의 풍경 속에 슬며시 적어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