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티넨탈 '25 / Kontinental '25

2025 / Radu JUDE / IMDb
★ 3.4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의 개막작이었던 <콘티넨탈 ‘25>를 뒤늦은 상영으로 보게되었다.

라두 주데 감독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배드 럭 뱅잉>으로 입문했는데 이번 작품은 그 결을 비슷하게 가져가면서도 뭔가 좀 더 안정적으로 변한 느낌이었다. 누군가는 순해졌다고 말하기도 하던데, 좀 더 땅으로 내려와 영화를 찍는 기분이었다.

버섯을 따서 공병을 줍고 이따금씩 구걸을 하며 근근히 살아가는 인물이 초반을 끌어가지만, 이 영화의 포커스는 그 인물을 어쩌면 (고의는 아니지만) 죽음에 이르게한 집행관 오르솔랴로 완전히 이동한다. 콘티넨탈 부티크 호텔을 짓기 위해 건물을 철거해야 하고, 그 건물 안에 살고 있는 노숙자를 쫓아내야 하는 일인데, 본인이 국가를 위해 공정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사기업의 개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기도 한다. 사실 어쩌면 그녀는 답을 알고 있기 때문에 초조했다고 생각했다. Legally okay지만 계속 마음이 불편하다고 말하는 오르솔랴. 영화는 내내 그녀의 불편한 마음을 대사로 쏟아내는데, 결국 속으론 다 알고 있으며 징징대는 것이란 생각에 좀 깝깝했다. 도돌이표처럼 다른 이들을 만나며 그들에게 위로를 촉구하고선 그들의 가슴에 본인의 돌을 옮겨두고만 싶어하지, 스스로 괴로운 본질에는 전혀 다가가지 못한 채. 본인의 세계와는 저 멀리 떨어진 이들에겐 관용을 베풀며, 근데 그마저도 입으로만.

영화의 배경은 루마니아의 클루지나포카인데 원래 헝가리의 영토였지만 제1차세계대전 이후 루마니아로 넘어간 지역이라 한다. 그때문에 주인공 오르솔랴는 헝가리계 루마니아인으로 살아가며 헝가리어, 루마니아어, 독일어를 섞어 말하곤 했다. 나의 얕은 헝가리어로 지금 말하는 대사는 헝가리어구나, 루마니아어구나 구분할 수는 있었는데 이 점이 친절하지 않은 것이 조금은 아쉬웠다. 영화에 있어서 이런 헝가리와 루마니아의 관계도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화 내내 보여주는 헝가리, 루마니아,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중국식 건축 양식을 푸티지에서 경계가 불분명한 위선적인 면모를 오르솔랴의 내면과 연결시키고 하고 싶어하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풍의 느낌도 났던 것 같다. 정적인 카메라가 도시를 훑으며 작은 갈등으로 인한 인물들의 대화에 집중한다는 데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나보다.

GV에서 주연을 맡은 에스테르 톰파 배우가 말하길 주인공 오르솔랴는 “너는 죄가 없다"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어른의 사정으로만 그런 말을 해주기엔 너무 괘씸해서.

그나저나 영화를 스마트폰으로 촬영했다 한다. 역시 도구의 문제가 아니다.

시놉시스
오르솔랴는 트란실바니아의 중심 도시 클루지의 법정 집행관이다. 어느 날 그녀는 건물 지하에서 노숙자를 강제로 퇴거시켜야 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오르솔랴는 예상치 못한 사건이 초래한 도덕적 위기를 어떻게든 해결하기 위해 분투한다.
원문 링크: https://www.jeonjufest.kr/db/movieView.asp?idx=5753

리뷰
라두 주데의 영화는 항상 자국인 루마니아와 유럽 전체의 과거를 다뤄 왔다. 하지만 <나는 야만의 역사로 거슬러 가도 상관하지 않는다 I Do Not Care If We Go Down in History as Barbarians>(2018)와 <배드 럭 뱅잉 Bad Luck Banging or Loony Porn>(2021)부터 그의 영화는 우리가 살아가는 혼란스러운 현재를 묘사하는 데 전념하기 시작했다. 이는 이야기 자체뿐 아니라 이야기를 구성하고 전달하는 방식에서도 마찬가지로 드러난다. <지구 종말이 오더라도 너무 큰 기대는 말라 Do Not Expect Too Much from the End of the World>(2023)에서 주인공이 사용하는 틱톡(Tik Tok)의 예처럼, 그는 단지 스마트폰을 카메라로 사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야기를 전하는 형식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그 연장선상에 <콘티넨탈 ‘25>가 있다. 라두 주데가 스마트폰을 영화제작에 사용하는 것은 시각적 아름다움을 잃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 더 잘 어울리는 또 다른 유형의 아름다움과 이미지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그가 대규모 영화 제작에 부과되는 제약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찾았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콘티넨탈 ‘25>는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고전 <유로파 Europa ‘51>(1952)를 기리며 현재의 시점에서 재해석하는 형태를 띤다. 두 영화 모두에서 주인공은 비극적인 사건을 겪은 후 사회의 관습과 모순에 관해 일련의 질문을 하게 된다. 이와 같은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두 영화는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 그러나 진정한 예술가들이 늘 그래왔듯이 답을 주기보다 질문을 던지는 영화를 만들어왔다는 점에서 로셀리니와 주데는 공통점을 가진다.
전주국제영화제는 대안, 독립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출발했고, 시대의 변화에 따른 대안을 찾는 것이 영화제의 숙명임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전주국제영화제의 정신을 완벽히 보여주는 라두 주데의 신작을 통해 영화제가 지키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어 기쁘게 생각한다.
주데는 온라인 영상매체의 즉각성을 영화 언어에 반영하고, 영화 속에 동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는 새로운 서사 형식을 추구하고, 전 세계가 겪고 있는 정치적, 사회적 문제에 대해 고민을 멈추지 않는 영화를 만드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이번 26회 개막작으로 <콘티넨탈 ‘25>를 소개할 수 있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한다. (문성경)
원문 링크: https://www.jeonjufest.kr/db/movieView.asp?idx=57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