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 All I Had Was Nothingness

2025 / Guillaume RIBOT / IMDb
★ 4.0

<쇼아>의 제작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클로드 란츠만 감독이 남긴 220시간의 영상 중 <쇼아>에 담기지 않은 푸티지와 기록들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이 다큐를 보며 비로소 쇼아가 완성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무엇이 덜어내어 졌는지를 알게될 때 비로소 완성되는 고귀함. 뜨거운 것들을 모두 잘라내고 오로지 본질을 향해서만 달려갔다는 것이 놀랍다. 란츠만 감독의 말 그대로 “영화로 그들을 죽여버리기 위해”.

<쇼아>가 그냥 푸티지 모음집이 아닌, 여러번의 컷이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베토벤 교향곡이 깔리며 운전하는 란츠만 감독을 잡는 카메라, 그리고 도착한 철길. 그 장면을 포착하기 위해 여러번의 슬레이트가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영화에서 보이지 않던 아랫 면을 보게된 기분이다.

13년간 촬영한 푸티지들로부터 하나의 영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그야말로 서랍을 가득 채운 비즈 중 옥석을 고르고 골라 단 하나의 목걸이를 만들어내는 일 같았으리라 상상했다. 어떤 형태와 의미에 목걸이를 만들어 낼 것인가에 대해 처음부터 명확한 방향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내내 고민하고 수정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당시 주어진 정보만으로 증언들을 수집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첩보원처럼 증인들을 찾아내고, 설득하고, 속여가며 카메라에 담아오는 과정이 고스란히 다큐에 담겨있다. 수용소에서 일했던 이발사를 찾기 위해 뉴욕을 헤맸고, 마침내 만나게 되었을 때 48시간을 내리 함께 보냈다는 나레이션에서 그 고통과 인내가 다가왔다. 마찬가지로 <쇼아>에는 담기지 않았지만, 펀딩을 모으기 위해 대사를 만나고 게이트볼을 치는 등 감독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영화에 미국 자본은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도 좀 흥미로운 대목이었다.

촬영을 방해하는 이웃들의 인터뷰도 영화에 담길 수 있었을텐데 그걸 과감히 쳐낸 그 심지가 좋았다.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을 한치의 실수 없이 이루기 위해 쳐내야 하는 신파들. 많은 사람들이 그 유혹을 넘기지 못해 작품을 그르쳐 왔다고 생각하는데, 란츠만은 그걸 너무 잘 알고있는 감독이라 생각했다.

아무래도 가장 좋았던 점은 란츠만 감독의 뜨거움이 이 다큐를 통해 드러났다는 점인 것 같다. 촬영 감독의 가족이 수용소에서 사망했고, 그는 란츠만 감독이 너무 영화를 차갑게 가져간다며 다툼이 있었다 했다. 란츠만 감독은 무엇보다도 차가운 냉정함이 중요하다고, 그래야 그들을 카메라로 죽일 수 있다고 말하는데 그게 정말 다큐를 관통하는 핵심이라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어제 본 <바다 호랑이>를 생각했다. 우리가 정말 잘 못하고 있는 것.

원작에서 알 수 없던 뒷 이야기들이 좀 있었다.

  • 허락 없이 몰래 촬영하고 녹음하기 위해 란츠만 감독의 겨드랑이에 착용한 기기.
  • 수용소에서 나체의 시신의 머리를 깎던 이발사가 이후 옷을 입은 여자 손님의 머리를 깎게 되었을 때 굉장히 이상했다고, 그 일상의 비일상에 대한 이야기.
  • 폴란드 농가를 섭외한 방식.
  • 트레블링카로 향하는 재연의 재현을 위해 거금을 주고 빌린 한 칸의 기차.
  • 본인의 유대인 이름 때문에 인터뷰를 몇 번 그르치자, 파리대 연구원인 소렐 박사라는 이름으로 위장했다는 것.
  • 수용소에서 노래를 부르던 소년의 이야기는 훗날 그를 다시 트레블링카로 불러 촬영되었다는 것.
  • 폴란드 촬영에 약간 의문이 있었지만, 결국 거기서 사계절을 모두 보내고 오게되었다는 것.
  • 다른 사람들이 얀지크는 주정뱅이이니 만나지 말라고 했지만, 결국 마지막에 얼굴을 파묻고 감정에 복받치는 란츠만 감독의 모습.
  • 비밀 촬영과 녹음을 위해 사기 유랑단처럼 손발이 쿵짝 맞던 스탭들.

다큐에는 <쇼아>에 등장했던 일기에 대한 내용이 몽땅 빠져있다. 결코 쉬운 길로 가지 않겠다는 란츠만 감독과 리보 감독의 의지가 느껴졌다. 이제 와서는 인터뷰어도 인터뷰이도 대부분 다 죽었겠지만, 결국 그들이 채집한 증언들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얻어 전달된다는 것이 고무적이었다. 증언에 대한 퍼포먼스가 고스란히 영상으로 남아, 글로 전해지지 않는 확실한 그들의 태도가 증거로 남겨져버리는.

9시간의 러닝타임이 길다 생각했는데, 증언의 생명을 위해 반드시 필수불가결한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절대 제로라는 스탠스가 존재할 수 없는 실화 기반의 다큐. 영화를 모두 끝낸 뒤 감독의 마음이 궁금했다. 후련했을지, 더 가슴아파졌을지.

영화 상영이 끝난 뒤 정성일 평론가의 GV가 있었다. 이 영화는 미학으로 접근하는 영화가 아니라는 강한 외침. <쇼아>의 미학적인 부분은 란츠만 감독의 양복뿐이었다. 좋았던 말이 많아 그 내용들을 정리해 올려본다.

  • 정성일 감독도 30대가 되어서야 이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 인생이 무척 바뀌었다고. 영화에는 영화라는 예술, 매체가 짊어져야 하는 역할이 있다는걸 일깨워준 영화라 한다.
  • <쇼아>라는 영화가 시작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서도 언급되었다. 시몬 비젠탈이라는 나치 사냥꾼이 전범을 법정에 세웠는데, 그 전범이 말한 “이 전쟁은 우리가 이긴거다, 다 죽었으니까.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을 테니까. 아무 것도 없으니까.” 라고 한 말에 대한 반격으로.
  • 이 영화는 증언으로 돌아온 역사를 의미한다. 영화와 문학의 차이를 완벽하게 이용한 작품. 홀로코스트에 대해 남겨진 영상 자료가 없는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최선. 이 점에 있어서 고다르와는 이견이 있었다. 고다르는 그때를 직접 영상에 남기지 못했으니 아우슈비츠에서 영화는 죽었다고 말했다고. “재현의 재연"에 대한 논쟁.
  • 홀로코스트를 담은 다른 영화들에 대해서도 언급되었다. 특히 <사울의 아들>에 등장한 아우슈비츠 존재의 유일한 증거인 4장의 사진에 대해서도. 홀로코스트를 다룬 극영화들에 대해서도 얘기가 나왔다. 특히 <쉰들러 리스트>에 대한 악평을 했는데, 유대인인 스필버그는 그렇게 찍으면 안되었다고.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 대해서는 좋은 평을 남겼는데, 왜 카메라는 밖에 있을 수 밖에 없나에 대해 설명하기에. 영화는 영화의 도덕과 윤리를 지키기 위해 절대 들어가서는 안되는 장소가 있다. 그것이 수용소 내부라고 생각한다 한다. <카포>는 수감자들을 관리하는 수감자에 대한 이탈리아 영화인데 전기철조망의 짧은 엔딩을 가지고 있다 한다. 미학적으로 재현의 재연을 해도 괜찮은가, 영화의 윤리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도덕적 아름다움”, 아름답게 찍어도 되도록 허용되는 역사와 상황인가. <밤과 안개>는 홀로코스트를 담은 누벨바그 영화로, 누벨바그 시절의 모든 영화를 다 대체할만한 위대한 영화.
  • 이 부분을 말하기까지 잠깐의 퍼즈가 있었다. 영화제의 허락을 받기도 했다고. 작년 탄핵, 그리고 그걸 지지해 서부지검을 부신 사람들. 역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가 목도하고 있다.
  • 이스라엘에서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되려 역공을 받기도 했다. 쇼아에 대해 정의를 하면, 쇼아가 질문을 던져오게 된다. 이스라엘이 아니라 프랑스 유대인인 란츠만이 찍을 수 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역사. 극좌파 클로드 란츠만. 북한 여자와 결혼해 북한에 대한 영화까지 만든 사람. 한국을 미국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북한에 돈을 줘야한다고 생각한. 역사를 기록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한 잡지의 편집장일뿐. 씨네필도 영화학도도 아닌. 이스라엘 정부의 요청이 있어 만들어지게 된 영화였다. 이스라엘은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란츠만은 거창하게 생각했다.
  • 4년 간 준비, 6년 동안의 인터뷰. 필름을 5년간 편집.
  • 피해자, 가해자, 목격자가 등장. 설명을 위한 해설이나 바깥의 자료를 사용하지 않음. 등장인물이 모두 동의한 것도 아님.
  • 쇼아는 이해하면 안되는 사건이며, 그건 반복되어서도 안되는 일회성의 사건이어야 하기 때문에.
  • 정성일 평론가는 <쇼아>를 가지고 한 학기 내내 강의를 한 적이 있다 한다. 그래서 오늘 하루 종일 떠들 수도 있다는데, 가는 시간이 안타까웠다.
  • 전범들에게 무엇이 두려운 영화인가? 증인의 증언. 서사화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이미 일어난 일을 개인이 경험한 것으로부터 개인을 넘어서게 만드는 것. 영화의 방법적 목표.
  • 증언은 듣는 사람이 있어야 성립하는 것. 영화에는 두 명의 증언을 듣는 사람. 하나는 영화 속 인터뷰이,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영화를 보는 우리. 영화를 작품으로, 관객으로 불려가는게 아니라 증인의 증언에 대한 증인으로 요구되는 것.
  • 단순히 증언에 대한 레코딩만이 목표가 아니라 증인의 증언에 대한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영화의 목표. 배에서 노래를 부르고, 기차를 다시 운전하게 함. 과거를 떠올리게 만드는게 아니라 증인들에게 그 행위가 어떻게 남아있는지 그것을 보게 만듬. 증언의 윤리성에 대해서. 증인에게 증언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에 대해서.
  • 나치는 증언하는데 실패하고 회피하는가. 유대인은 이해하는데 어떻게 실패하는가. 실패는 트라우마. 그래서 실패를 찍는다. 트라우마의 재생. 시간과 장소를 부활시킨다.
  • 쇼아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침묵. 증인의 죽음으로서 끝나는 침묵.
  • 영화의 미학에 대해 한가하게 노닥거리는 영화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재로 만들어 버린 사건을 증언받고 증언하는 영화. 그걸 연민할 때 21세기에 왔다고.

시놉시스
<내가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클로드 란즈만이 <쇼아>에 쏟아부은 헌신을 살펴본다. 란즈만의 말과 공개되지 않았던 영상을 통해 혁신적인 작품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하는 다큐멘터리.
원문 링크: https://www.jeonjufest.kr/db/movieView.asp?idx=5661

리뷰
12년을 들여 완성된 9시간이 넘는 영화, 한 주제에 대해 이미 모든 것을 말한 것처럼 보이는 영화 <쇼아>에 무엇을 더할 수 있을까? 아마도 기욤 리보 감독이 다큐멘터리 <내가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를 만들 때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었을 것이다. 거의 불가능하게 들릴 수 있지만, 감독은 실제로 전설적인 <쇼아>와 클로드 란즈만에 관해 무언가 더 이야기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원본 촬영본에서 나온 220시간의 미공개 영상에서 일부를 추가하고 란즈만의 자전적 이야기를 덧붙여 원작의 전설을 확장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냈다. (문성경)
원문 링크: https://www.jeonjufest.kr/db/movieView.asp?idx=56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