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천사 / Cherub

2024 / Devin SHEARS / IMDb
★ 3.5

fatty boy의 자기 혐오 극복하기 희망편.

영화를 보는 내내 너무 웃음이 났다. 깔깔깔이라기 보다 흐뭇한 미소였달까.

전문 배우가 아닌 감독님 친구 중 한명이었다는 주인공이 너무 귀여워 웃음이 계속 새어 나왔다. 빛과 bgm, 게다가 사랑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는 필터가 한 몫 한걸까. 아름다움에 관심이 많은 그는 식료품점에서 지나쳐 지나는 꽃에도 허리를 숙여 꽃냄새를 맡는다. 물론 그 아름다움에 대한 탐구가 성인 잡지까지 이어지긴 하지만. 성인잡지를 읽는 집의 쇼파도 꽃무니 패브릭이 가득한데, 그게 희한하게 따뜻한 분위기를 조성해 미소가 지어졌다. GV에서 만난 감독 자체가 사랑과 웃음이 많은 분 같았다.

대사가 거의 없이 진행되는데도 서사가 문제 없이 이어진다. 영화 에서 처음 등장하는 장면이 병원에서 보이스 오버로 다른 병실의 아이가 환자에게 성경을 읽어드리는 장면이었던 것 같다. 식당에서 주문을 하는 등 여러 포인트에서 말이 나올 것 같았는데 기가막히게 끊긴다. 그의 목소리보다 그의 몸을 먼저 보게 될 줄이야.

정사각에 가까운 화면비에 고전스러운 폰트와 visualization까지. 미학적으로 아름다웠다. 예뻤다에 가까웠겠다. 가장 좋았던 건 빛의 사용이었다. 최근에 봤던 에릭 로메르의 <내 여자친구의 남자친구> 속 캠퍼스가 떠오르기도 했다. 거대한 신전같은 공간이 텅 비어 자유로이 활보하는 캐릭터들 때문인지, 마치 잘 짜놓은 세팅처럼 아른거리는 아름다운 자연광 때문인지 모르겠다. 빛의 음영과 흔들림이 무척 아름다웠다. 자연광뿐만 아니라 극장에서 안경 쓴 인물의 얼굴 위로 겹쳐지는 인공광 역시 무척 좋았다.

영화의 주인공 하비는 경미한 자기 혐오가 있다고 생각했다. 밥을 먹을 때도 식탁에 놓은 예쁜 조명을 꺼놓고, 포크를 내려놓고서야 불을 켜고 잡지를 읽는 그. 그나저나 fatty한 건 북미에서 큰 시선을 느끼는 일이 아니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걸까.

이따금식 한 3층에서 1층을, 위에서 아래를 조망하는 카메라가 조물주의 시선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빛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영화의 챕터가 성축일의 이름으로 되어있는데, 특히나 처음으로 목소리를 내는 장면이 택배가 도착해 “하비 마튼 씨 맞나요?” 라는 물음에 대답하는 대사였다는 것도.

누가 추종해주고 아름답다 해주어 나의 혐오를 극복하게 되는 것인지, 내 몸 그대로를 내가 마주하게 되며 극복하게 되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영화 속에서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 우리가 우리의 혐오를 극복하게 되는 과정이.

GV에서 들었던 영화 속에선 알 수 없었던 사실들 몇 가지.

  • 감독이 York대 석사 졸업 작품으로 만든 것이라 한다.
  • 실험실의 배지를 촬영한 장면은 직접 찍은 것이 아니라 유튜브에서 단세포의 죽음이라는 클립을 허락받아 사용했다고.

캠퍼스의 그녀가 사과를 너무 꼭꼭씹어 먹은 탓에 영화가 주저리주저리 길어졌지만, 장식장에 보관되어 먼지만 털게되는 천사가 아니라 꽃이 꽂아지는 천사로 결말지어져 흐뭇했다.

그나저나 옛날 브라운관이나 LCD TV같은 가전에 디스플레이되는 영상을 찍은 컷이 있었는데, 분명 줄무늬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클린해 합성이구나 싶었다. 영상을 넣어주면 기가막히게 합성해주는 툴이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했다.

시놉시스
하비에 대한 인물 탐구 보고서. 이성애자이자 비만 남성인 그는 ‘덩치 큰 남자들과 그들을 흠모하는 사람들’을 위한 게이 잡지에 자신의 사진을 보내기로 결심한다.
원문 링크: https://www.jeonjufest.kr/db/movieView.asp?idx=5476

리뷰
너무 눈에 띌까 봐, 혹은 없는 사람 취급당할까 봐 두려워해 본 적 있는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 <아기 천사>는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욕망과 그런 욕망을 가질 자격이 있는 몸에 대해 질문하는 영화다. 모든 면에서 의도적으로 lo-fi한 연출, 4:3 비율로 담긴 몽환적인 토론토의 낮과 밤, 꼭 안아주고 싶은 주인공 하비와 하비의 몸—‘작은 영화’만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놀랍도록 부드럽고 섬세한 감정을 전달하는, 저예산영화의 모범답안과도 같은 작품. (손효정 | 번역가, 시나리오작가)
원문 링크: https://www.jeonjufest.kr/db/movieView.asp?idx=5476

[전주 리뷰] 보이지 않던 몸이 주체가 되는 순간, 존재는 다른 방식으로 꿈틀거린다 - 〈아기 천사〉 데빈 시어스 감독

인터뷰이: 데빈 시어스
인터뷰어: 황성원(EBS국제다큐영화제 인더스트리팀장)
원문 링크: https://jeonjureview.jeonjufest.kr/post/17

〈아기 천사〉는 세상을 관찰하던 한 인물이 마침내 자신을 응시하게 되는 과정을 따라간다. 자신과 닮은 뚱뚱한 남성들이 등장하는 잡지를 우연히 발견한 주인공 하비는 자신의 상(像)을 만들어 가는 주체로 점차 변화하며, 새로운 존재 방식의 가능성을 상상해 나간다. 독창적인 미장센 속에 퀴어한 상상력과 자기 수용의 순간들을 담아낸 이 영화에 대해, 감독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었다.

큰 체격에 소심한 성격을 지닌 이성애자 남성, 하비를 주인공으로 퀴어한 아이디어를 덧입혀 간결하고 사랑스럽게 이야기를 풀어 가는 방식이 인상 깊다. 어떤 계기로 이 인물과 이야기를 구상하게 되었나.

오래전, 90년대 후반 내지 2000년대 초반 즈음 나온 퉁퉁한 게이 남성을 위한 잡지 〈더 팻 에인절스 타임스 The Fat Angel Times〉를 접하게 되었다. 제일 처음 충격을 받았던 건 잡지 제목이었다. 소위 ‘베어’ 커뮤니티를 둘러싼 문화의 많은 부분이 세련되지 못한 남성성을 미화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이 놀라웠고, 동시에 제목이 천상의 생명체를 떠올리게 만들어서 마음에 들었다. 이 잡지는 또한 인터넷이 내가 나 자신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맥락화하는 데 얼마나 큰 역할을 해왔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와 같은 욕망의 커뮤니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른 채 나중에 삶을 살게 될, 다른 시대의 사람에게 이 잡지는 어떤 모습으로 비칠지도 알고 싶어졌다. 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사람들이 자신들의 몸과 맺는 관계는 어떻게 달라질까? 이러한 질문으로부터 영화의 캐릭터와 이야기가 탄생했다.

창문 프레임 너머로 세상을 바라보는 하비는 사진기를 통해 주변을 탐색하고, 현미경으로 사물을 관찰한다. 자신과 닮은 이들이 등장하는 잡지를 발견한 그는 꺼진 텔레비전 화면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다 마침내 카메라의 방향을 자신에게로 돌린다. 하비는 언제나 렌즈나 프레임이라는 매개를 통해 타인과 자신을 바라보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이러한 설정에는 어떤 의미와 의도가 담겨 있나.

내가 발견한, 다른 뚱뚱한 퀴어들의 커뮤니티는 대부분 이미지의 생성과 공유라는 경험을 거친다. 셀카를 찍어서 소셜 미디어 피드에 올리거나 개인적으로 서로 공유하는 것이 관계를 맺고 정체성을 형성하는 매개체였다. 이 영화를 만들면서 나는 이 과정이 내가 실제로 극영화를 만드는 작업과 어떻게 겹쳐 보이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촬영감독인 닉 티링거와 대화를 거쳐 이미지를 사용한다는 동일한 방식으로 이 캐릭터를 만들어 내야 했다. 카메라를 사용해서 주인공 하비와 그를 둘러싼 환경과의 관계를 만들어 내면서 말이다. 주인공이 나의 카메라, 또 닉의 카메라와 맺는 관계는 계속 변화한다. 어떤 때는 거리를 두고 이질적이고 겉도는 관계를 맺고, 나중에는 또 주인공이 관계를 주도하는 입장이 되거나 다소 주체성을 지닐 때도 있다.

영화의 구성 면에서도 ‘프레임’의 개념이 이어지는 듯하다. 천사의 이름을 제목으로 삼아 장을 구분하고 있는데, 이러한 구성 방식을 택한 이유와 천사라는 상징을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했는지 궁금하다.

원래는 인터타이틀로 단순히 1년 동안의 계절을 그리려 했으나 내 예술학 석사(MFA) 지도 교수인 존 그레이슨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또 제작이 점점 진행되면서, 영화와 시간의 관계가 차츰 더 불안정해진다는 쪽으로 뜻이 모아졌다. 원래 의도는 21세기 전환기가 배경인 시대극을 제작하는 것이었지만 실제 사람들이 프레임을 들락날락하는 실제 장소에서 초저예산 규모로 촬영해야 하는 현실 때문에 이 계획은 무산됐다. 대신 만들어진 괴이한 시간의 느낌을 받아들이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싶어서 대안으로 성인의 날(Saint’s days)을 배경으로 하게 되었다. 천사에 대해 말하자면, 천사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무성적 존재다. 나는 이러한 특징들을 적잖이 큰, 속세의 몸과 나란히 놓고 보는 것이 즐거웠다.

천사 옷을 입은 하비가 꽃을 들고 사진을 찍는 장면에 대해 조금 더 깊이 묻고 싶다. 카메라는 그의 모습을 마치 현미경처럼 세심하게 담아내지만, 관음증적인 시선보다는 애정을 담은 시선처럼 느껴진다. 촬영이 끝난 하비가 날개를 단 채 잠든 모습은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이 장면을 통해 전하고자 한 메시지가 있다면?

다시 한번 말하자면 나는 그 장면을 “우리” 카메라의 주체성을 등장인물에게 넘겨주어, 자신의 상(이미지)을 만들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영화의 대부분은 인물이 다양한 것들을 바라보는 장면으로 채워져 있다. 작은 것들을 현미경으로 본다거나, 하늘에서 큰 사물들을 본다거나, 또 당연하게도 다른 사람을 보는 것 등으로 말이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을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보게 되며 자신을 위한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게 되는 것 아닐까.

배우 벤저민 턴불이 하비 역을 훌륭하게 소화해 냈다. 어떤 식의 디렉팅을 진행했나. 이와 함께 감독이 영화 속에 직접 등장해 하비를 발견하고 사진을 찍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는데, 그 장면은 어떤 배경으로 연출되었는지 궁금하다.

벤은 내 친구인데, 이 영화에 출연하기 전에는 연기를 전혀 해본 적이 없었다. 벤이 친구 앨릭스 헤네시의 영상 축제인 ‘수어 페스트(Sewer Fest)’를 위한 작은 영화를 만든 적이 있다. 그 영화를 보고 처음으로 벤이 영화 연기를 해도 매력적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인을 위해 함께 간단한 테스트를 하고 나서 그에게 영화에 출연해 달라고 요청을 했다. 나는 등장인물의 연기를 늘 단순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편이고, 벤이 나머지 부분을 매우 효율적으로 채워 주었기 때문에 함께하는 작업이 수월했다. 벤은 또 영화를 대단히 좋아해서, 우리가 영화계에서 쓰는 영화 용어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출연하게 된 이유를 말하자면 현실적인 필요가 한몫했던 것 같다. 역사적인 개기 일식이 있던 날,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촬영을 했고 대규모 제작진이나 다른 연기자들을 데리고 갈 수 없다는 간단한 이유 때문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인물에 필요한 신체적 특징이 있었기에 직접 출연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지였다. 물론 감독인 나의 출연이 다양한 함의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해석의 여지를 남겨 두고자 한다.

사운드 디자인 또한 매우 흥미로웠다. 대사를 극도로 절제하고, 반복적인 멜로디와 절제된 앰비언스 사운드를 활용한 방식이 인상적이다. 덕분에 영화 속 세 번의 대사 장면이 더욱 또렷하게 강조되는 듯하다. 특히 병원에서의 엄마와 아이의 대화, TV 속 강연 장면은 분명 직접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음에도 마치 배경음처럼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반면 마지막에 배달기사가 주인공의 이름을 부르는 장면은 매우 일상적인 상황임에도 강한 인상을 남긴다. 사운드의 활용 방식과, 대사 장면들을 어떻게 연출하려 했는지 설명을 더 해준다면?

초창기에 음향은 친구인 앨릭스 헤네시가 설정해 준 실험적 스테레오로 녹음했는데, 공간의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포착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후에 음향 디자이너 미셸 라쿠르가 후반작업을 통해 소리를 세밀하게 손보았다. 영화 속 공간들을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그려 내는 것이 영화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영화 음악은 내가 가장 오랜 기간 동안 함께 작업해 온 아나스타샤 웨스트콧의 작품이다. 영화의 초반 편집본을 그녀에게 보내서, 분위기에 따라 다양한 곡을 요청할 수 있었다. 이후에 내가 직접 편집을 진행하면서 그녀가 보내 준 음악 중 하나를 중심으로 장면을 구성하기도 했다. 대화의 부재는 영화 작업 초반 내가 스스로 정한 공식적인 규칙이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당연하게도 이 규칙을 어길 수 있는 지점들과 영화를 바꿀 수 있는 방식들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1년이라는 기간에 걸쳐 영화의 다양한 부분들을 촬영했고, 촬영과 동시에 편집을 진행했다. 그러다 보니 또, 사람의 목소리를 끼워 넣어서 약간의 혼란을 발생시킬 수 있는 지점들이 어디인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영화 후반부 익숙한 장소들에서 하비가 중앙에 환히 서 있는 장면들은, 앞서 대사로 언급되었던 ‘자기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 특히 ‘굴욕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맞서는 모습으로 보였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사람들이 그를 안아 주거나 그의 품에 안겨 있는 모습은, 프레임을 통해 타인과 거리를 유지하던 인물이 드디어 한걸음 나아간 듯한 인상을 준다.

내 단편 중 많은 작품들은 본질적으로 비극의 요소를 갖고 있다. 이 영화에서 나의 임무 중 하나는 조금 더 가벼운 감각을 갖는 것이었다. 이 영화는 외로움과 그리움에 대한 이야기지만, 한편으로는 고립의 또 다른 얼굴들, 즉 무언가를 생성하거나, 재미있거나, 사람들과의 새로운 인연의 가능성을 열어 주는 면모들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기도 하다. 원래 이 영화는 하비의 굴욕으로 마무리될 계획이었지만 생각하다 보니 그에게 해피엔딩 같은 무언가를 주는 것은 어떨까 싶었다. 나 자신도, 또 동료들도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하비와 진정한 사랑을 키워 나갔다. 그래서 영화의 결말이 그를 향해 우리가 키워 나간 사랑을 반영하는 것도, 우리가 그에게서 본 천사의 모습으로 그를 탈바꿈하도록 해준 것도 적절하다고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