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아 / Shoah
1985 / Claude LANZMANN / IMDb
★ 4.5
Isaiah 56:5
I will give them an everlasting name that will endure forever
이사야 56장 5절
내가 영원한 이름을 주어 끊어지지 아니하게 할 것이다.
영화를 시작하는 문구를 영화를 끝내고 나서야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영원한 이름의 부여를 위해 감내하고 유지해야 했던 란츠만 감독의 차가움이 새삼 놀랍다.
전주영화제에서 <쇼아>와 함께 <쇼아>의 제작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내가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를 상영한다는 얘기를 듣고 반드시 미리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9시간 반에 이르는 <쇼아>를 영화제에서 보자니 하루종일 다른 영화를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 못내 아쉬웠기에. 물론 이 걸작을 극장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 보는 경험을 놓친 것도 좀 아쉽긴하다.
한 번에 이어보진 못하고 3~4일 정도로 끊어 보게 되었다. 대전에서도 끝내지 못하고 결국 전주에 내려와서 틈틈히 보다 다큐멘터리를 보기 전날 새벽에 감상을 마쳤다. 후에 정성일 평론가의 GV에 따르면 이 영화는 반드시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봐야만 하는 영화라고. 그 의미는 동감하지만, 온전히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면 끊어봐도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여행을 열심히 다니던 시절, 영화에 등장한 바르샤바의 게토에도 가보고 아우슈비츠도 그리고 베를린까지 돌아다녔지만 내 여행이 너무 찍먹이었던걸까 하는 생각을 하며 구글맵을 끄적거렸다. 당시에 난 이 영화를 알지도 못했고 설령 알았다한들 마음 깊이 받아들이고 사고하진 못했을 것 같다. 모든 이해는 때가 있어 그 만큼의 세월을 필요로 하기에. 하지만 영화조차 몰랐던 것은 속상해 영화 여행 지도를 만들어보고 싶단 생각을 했다. 어딘가를 여행하며 더 깊숙히 이해해보기 위한 콘텐츠 추천 지도랄까.. 뭐 어쨌건.
이 영화가 머리를 한 대 치는 느낌이었다면, 제작기가 한 대를 더, 그리고 정성일 평론가의 GV가 마지막 결정타를 날리는 기분이었다. 절멸수용소에 대한 증거가 단 사진 4장으로밖에 남아버리지 않은 세계사. 증거 대신 가해자, 피해자, 그리고 목격자로 구성된 증인의 증언의 순간을 포착하며 그 감정과 태도를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박제하고 후대에 넘기는 역할을 해낸다. 영화라는 매체의 역할을 뛰어넘는 영화.
란츠만 감독이 가장 무르 익었을 본인의 40대 후반, 50대의 13년이란 세월을 인생에서 뚝 떼내어 이 다큐에 매달렸을 생각을 하니 그 정성과 의지에 무척 놀랐다. 생계의 이유도 누가 시켜서도 아닌 해야만하는 일을 회피하지 않고 결국 해내는 단단함이 영화 곳곳에서 느껴지기도 했다. 다양한 인터뷰이가 등장하는데 인터뷰어로서의 자세가 무척 좋았다고 생각한다. 관망하기도 하고, 묻기도 하고, 어느 마을에서처럼 마을 아낙네들에게 편안하게 녹아들기도 하고, 그러다 이따금씩 날카롭게 꾸짖기도 하고. 나중에 제작기를 보고 맞춰지게된 퍼즐은 영화로 그들을 죽이기 위해 본인이 한없이 차가웠어야 했다는 말이다.
아우슈비츠에 도착했던 새벽의 공기가 생생하다. 그 날은 내 생일을 기념해 밤기차를 타고 폴란드로 넘어갔는데 기차가 너무 일찍 도착해버려 안개가 자욱하게 낀 오르비엥침 수용소를 홀로 걸어 들어갔었다. 그게 인생에서 처음 느낀 숨이 멎어버리는 서늘함이었다. 아무런 지식과 이해가 의미 없어지는 날 것의 감정. 이후에 캄보디아의 킬링필드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는데, 인간이 인간에게 행하는 무자비함에 대한 화와 공포가 머리를 쭈뼛 서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감정이 영화를 통해 다시 한 번 고스란히 재현될 수 있다는게 놀라웠다. 영화는 재현을 포기했는데, 그게 내 마음에서 재현되다니.
자료 조사부터 방법론, 서술까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완벽하게 작성된 논문을 읽는 느낌이었다. 모든 섹션이 한 곳을 향해 달려가 반드시 9시간 반이라는 러닝타임이 필요했던 까닭이 충분히 납득된다. 그들을 영화로 죽여버리기 위해서는 필연적이었던.
정성일 평론가의 말대로, 이젠 이 영화를 보기 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게 된 느낌이다. 내가 몰랐던 영화라는 매체의 옆 얼굴을 보게된 기분이다.
시놉시스
클로드 란즈만의 서사시적 다큐멘터리 <쇼아>는 가해자와 생존자, 목격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홀로코스트를 이야기한다.
원문 링크: https://www.jeonjufest.kr/db/movieView.asp?idx=5668
리뷰
2025년은 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의 해방 80주년이다. 이번 기념일을 맞이하여 클로드 란즈만의 <쇼아>(1985, 566분)가 복원판으로 베를린영화제에서 상영됐다. 40년 전 베를린영화제 포럼 섹션에서 처음 공개된 이 기념비적 작품은 감독이 12년간 공을 들여 만든 것으로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들의 증언은 친밀한 것부터 거대한 것까지 다양하며, 인간 역사상 가장 끔찍한 순간들을 진실되게 재현한다. 이는 오늘날까지도 인간이 가할 수 있는 잔혹 행위의 증거이자 경고로 남아있다. <쇼아>는 영화와 증언의 힘을 가지고 돌아와 우리에게 과거를 상기시킬뿐 아니라 현재를 바라보고 질문하게 한다. 란즈만(1925~2018)이 살아있었다면 올해로 100세가 되었으며 그의 불멸의 걸작은 다시 한번 “과거를 잊은 사람은 역사를 반복하기 마련이다”는 조지 산타야나의 말을 여전히 입증한다. <쇼아>에 관한 다큐멘터리 <내가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2025)도 전주국제영화제 시네필섹션에서 함께 상영한다. (문성경)
원문 링크: https://www.jeonjufest.kr/db/movieView.asp?idx=56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