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클 마헤시 / Cycle Mahesh

2024 / Suhel BANERJEE / IMDb
★ 3.0

이 번 전주 영화제에서 어쩌면 손에 꼽히게 기대한 작품인데, 그래서 그런지 아쉬움이 컸다. 영화 자체의 잘못은 아니고 시놉시스와 소개글을 읽고 이미지를 잘못 판단한 나의 실수.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의 뚝심이 그대로 반영된 작품이었는데 그 결이 나와 맞지 않았다.

영화의 오프닝부터 강렬했다. 이번 전주영화제에서 국제경쟁으로 선정되었는데, 전주뿐만 아니라 유수의 영화제에 출품되었는지 로고가 타다닥 랜덤 포지션에 박히는 오프닝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선 시작되는 행위 예술가의 움직임. 차이밍량 감독의 <행자> 연작을 떠올리게 하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영화관보다는 MoMA로 가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씨게 들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영화는 다시 루틴으로 돌아온다. 청바지에 쪼리를 신고, 산악자전거도 아닌 일반 동네 마실용 자전거를 타고 포장이 제대로 되었을까 싶은 2000km의 길을 나서는 마헤시의 라이딩으로 이어지는 시퀀스. 미장센이 꽤 좋다고 생각했는데, 카메라를 패닝하니 새가 날아가고 들녘이 불타는 것이 의도된 촬영인지 운이었는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을 영화로 옮긴 작품이다보니, 실제 마헤시가 이동한 구간을 촬영한 것인지 각색된 것인지 궁금했는데 GV에서 들어보니 라이딩 장면들은 모두 같은 하나의 길 위에서 위치를 옮기며 촬영했다 한다. 자전거에 달린 카메라를 어떤 것을 사용했는지 화질도 좋고 스태빌라이제이션도 잘 되어 멀미 없이 집중할 수 있었다.

영화는 어찌보면 굉장히 난해한데 다큐와 극을 오가는 굉장히 경계가 불분명한 영화였다. GV를 듣다보니 이런 새로운 형식의 영화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있었던 것 같다. 휴먼스토리를 기대하고 갔던 나에게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식 풍경을 선사하다 결국은 포스트 코로나 누벨바그로 끝맺음된 것이 좀 놀라웠다. 덕분에 중간중간 왜 그랬을까 싶은 장면이 많았다. 예를 들면 마헤시의 배역을 진짜 마헤시 뿐만 아니라 추가적인 두 명의 배우에게 맡긴 것, 같은 장면을 보여주는데 화면이 좌우로 분할되어 조금씩 미묘히 다른 주인공의 모습같은 것인데 이게 꼭 이 영화에 필요했던 장치인지 모르겠다. 장치가 서사를 잠식하는 것은 아닌가 궁금해졌는데, GV를 듣다보면 관객을 mesmerize할 생각이 없었다니, 서사에 대한 큰 욕심이 없었던 것 같다.

시놉시스:
4년 전, 젊은 건설 노동자 마헤시는 첫 번째 코로나 봉쇄 기간 동안 혼자 자전거로 2,000km를 달려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현재 그는 자신의 여정을 담은 영화에 출연 중이다. 하지만 촬영이 끝나고 그가 다시 복잡한 일터로 돌아오자마자 드러나는 건 끝없는 순환에 갇힌 한 남자의 모습이다. 사실과 허구를 혼합한 이 영화 속 영화는 노동과 영화의 차갑고 냉정한 시선을 탐구한다.

애초에 마헤시라는 배역 자체가 영화의 특징을 보여준다는 생각도 했다. 시놉시스 속 마헤시는 굉장히 극적인 사건을 겪은 인물인데, 영화에 등장하는 그는 극적인 마인드가 하나도 없는 사람처럼 단지 자유로움만을 갈망한다. 문득 그건 현실의 인간이 아니라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게임 속 NPC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도. 영화는 어떤 인물과 사건을 그려야 하는가, 영화라는 매체의 존재의 이유에 대해 또 건드려 버린다.

이국적 풍경이 펼쳐질 때마다 정말 신기하게도 계속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작품들을 생각했다. 문득 외국 관객들이 <기생충>을 봤을 때도 같은 느낌이었을까 궁금해졌다.

영화 전반에 걸쳐 물소리가 믹싱되어 있는데, 그게 개울의 소리인지 바다의 소리인지 무척 궁금했었다. 라이딩 중 데칸고원이 언급되길래 물가 근처에도 가지 못할 줄 알았는데 마헤시는 결국. 그게 그가 원하는 갇힌 세상을 벗어난 자유로움에 대한 hunger의 표현인 것인지.

GV에서 듣기론 픽션과 실제가 반복되어 나타나는데 그 둘을 구분지어 주기 위해 의도적인 방지턱이 들어갔다 한다. 인도인들에게는 이 구분이 쉬웠을지 궁금해졌다. 어쩌면 너무 로컬해서 한국인 관객으로서는 크게 와닿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한데, 게다가 무엇이 픽션이고 실제인지 인지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쇼츠와 릴스가 범람하는 시대에, 이런 형식과 속도의 영화라는 매체가 축복인지 사양길로 가는 길목인지 문득 궁금해졌다.

시놉시스
4년 전, 젊은 건설 노동자 마헤시는 첫 번째 코로나 봉쇄 기간 동안 혼자 자전거로 2,000km를 달려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현재 그는 자신의 여정을 담은 영화에 출연 중이다. 하지만 촬영이 끝나고 그가 다시 복잡한 일터로 돌아오자마자 드러나는 건 끝없는 순환에 갇힌 한 남자의 모습이다. 사실과 허구를 혼합한 이 영화 속 영화는 노동과 영화의 차갑고 냉정한 시선을 탐구한다.
원문 링크: https://www.jeonjufest.kr/db/movieView.asp?idx=5477

리뷰
인도의 코로나19 봉쇄 조치로 인해, 스물두 살의 배관공 마헤시는 집에서 2,000킬로미터 떨어진 일터에 발이 묶였다. 모든 교통수단은 멈췄지만, 그는 낡은 자전거에 짐을 싣고 고향을 향해 길을 나섰고, 천신만고 끝에 7일 만에 집에 도착한 마헤시의 이야기는 전국에 알려졌다. 정치인들은 그를 찾아와 일자리와 집을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실현된 건 없었고, 마헤시는 다시 건설 현장으로 돌아가 배관 일을 하며 예전과 같은 일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정치인은 외면했지만, 다행히도 그의 이야기는 극과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넘나드는 하이브리드 영화로 만들어진다. 뭄바이 근처의 한 마을에서 촬영하는 동안, 마헤시는 자신과 비슷한 삶을 살아온 주민 맘타와 우정을 쌓는다. 낯선 마을도 점차 친근해지고 맘타와의 깊은 유대감과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내지만, 촬영이 끝나갈수록 그는 다시 불안해진다. 타지역의 이주 노동자가 인도에서 겪는 소외감을 탐구하는 이 작품은 한 청년의 초상을 통해, 인도의 심각하면서도 제대로 조명되지 않은 ‘이주’라는 사회적 현상을 깊이 있게 그려낸다. (전진수)
원문 링크: https://www.jeonjufest.kr/db/movieView.asp?idx=5477

[전주 리뷰] 길 위의 구도자 A Seeker on the Road 〈사이클 마헤시〉 수헬 바네르지 감독

인터뷰이: 수헬 바네르지
인터뷰어: 차한비(영화웹진 〈리버스〉 기자)
원문 링크: https://jeonjureview.jeonjufest.kr/post/26

〈사이클 마헤시〉는 한 남자의 기이한 여정에서 시작된다. 건설 노동자인 마헤시는 코로나19로 인도 전역이 봉쇄된 기간에 낡은 자전거를 타고 홀로 2,000km를 달렸다. 그저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7일간의 고행. 신문사는 떠들썩하게 그의 인터뷰를 보도했고 정치인들은 일자리를 약속했으나, 마헤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수헬 바네르지 감독은 마헤시의 이야기에서 고독과 생명력, 그리고 ‘저주’라고 표현할 길밖에 없는 회귀의 여정을 발견했다고 밝힌다. 〈사이클 마헤시〉는 마헤시를 한계에 도전하는 기인으로 그리거나 그가 겪은 바를 생생하게 묘사하는 데 그리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오히려 인물을 모호하게 만들고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허물면서 마헤시의 횡단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탐구하려 한다. 영화 속 마헤시는 진리를 구하는 수행자처럼 부지런히 움직인다. 몸을 옮기며 지역을 이동하고, 생각과 느낌을 좇아 내면의 풍경을 마주한다. 그렇게 영화는 점차 인생의 다양한 질문거리를 내포하는 새로운 여정에 닿는다. 익숙한 문법에서 벗어나는 작품 형식은 마헤시의 사유를 반영하는 것이자, 감독이 관객에게 청하는 대화 자체다. 마헤시가 이전에 없던 경험을 가능케 하는 통로가 되길 바라며, 감독은 호기심과 긍지를 품고 말한다. “모든 해석은 옳다.”

영화의 출발점이 궁금하다. 마헤시의 실제 이야기에서 영화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은 무엇이었나. 마헤시의 존재를 알게 된 순간, 이를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었나.

역사상 ‘여행담’은 늘 스토리텔러에게 매력적인 가능성의 세계였다. 『오디세이아』(호메로스)라든지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The Motorcycle Diaries〉(2004)를 생각해 보라. 마헤시의 여정을 처음 접했을 당시, 그가 얼마나 외롭고 또 그의 경험이 얼마나 독특했던지 충격을 받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와 대화를 시작하자 이 남다른 여정이 그의 물질적 조건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게다가 아무리 오랫동안 여행했다고 하더라도 그는 결국 여행의 시작점으로 되돌아가는 저주를 받기까지 했다. 다시금 탈출해야 하는 장소로 말이다. 마치 시시포스와도 같은 갈등, 반복되고 연속하는 여정이 이 영화의 씨앗이 됐다.

영화는 다큐멘터리와 픽션을 결합한 독특한 형식을 취한다. 그 과정에서 마헤시는 ‘놀라운 이야깃거리’나 ‘화제의 주인공’이라기보다 일종의 구도자처럼 보인다. 그의 여정을 단순히 재연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묘사하기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복잡한 이야기를 재구성하려고 하면 한 가지 측면으로만 이야기를 축소하게 된다. 마헤시를 간단히 ‘재구성’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겉보기엔 단순하다. 마헤시는 집으로 갔다. 하지만 그 길은 특별한 여정이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여정은 한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내가 보기에 긴 여행은 우리에게 주어진 한 번의 삶 속에서 다양한 삶을 경험하는 것과 비슷하다. 물리적 여행과 인생살이 사이의 이런 공통점이 내겐 늘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그 공통점은 세계에 관해 더 많은 것을 파악하고, 더 많이 이야기할 기회를 준다. 마헤시가 구도자로 보이는 것 또한 내가 사람들을 바라보는 방식을 반영한다. 우리는 무엇을 바라 살아가는가? 자유? 이 영화는 마헤시를 등장 인물로 삼으며 바로 그런 점을 탐색하고자 했다.

영화에서는 제4의 벽이 종종 허물어진다. 제작진이 화면 안으로 들어오거나, 촬영을 막는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 등이 그 예다. 현실과 영화의 경계를 흐리는 연출을 통해 관객에게 어떤 경험을 주고 싶었나.

우리는 현재 이미지, 그러니까 조작을 거쳐 선전용으로 쓰이는 이미지가 폭발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예술가로서 이야기를 전하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영화가 우리와 함께한 지 130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시네마-베리떼(vérité)는 어느 도시의 어느 하루를 담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반면 스트리밍 또는 주류 영화가 주로 사용하는 드라마틱한 음악, 얕은 피사계 심도, 오버 더 숄더 숏(over-the-shoulder) 대화 등의 영화 문법은 단지 게으름의 산물이 아니라, 여러모로 상황이 곤란하다 보니 나온 방편일 뿐이다. 이러한 기법은 심지어 거위 떼의 사회생활도 재미있어 보이게 만들 수 있다. 문제는 ‘형식을 탐구하지 않고 어떻게 내용을 탐구할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이다. 나는 〈사이클 마헤시〉의 형식이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로, 편안한 호흡으로, ‘영화를 봤으니 나는 충분히 할 일을 마쳤다’라는 식으로 가닿지 않기를 바랐다. 관객이 영화에서 탈출하지 못하게 만들고 싶었다. 이 영화는 밥을 먹으면서, 한 손에 ‘또 하나의 화면’을 든 채로는 볼 수 없는 영화다. 어떤 관객은 이 영화를 ‘안티‐시네마’라 부르는데, 나는 그렇게 말해 주는 것이 마음에 든다.

마헤시 본인을 포함해서 그의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를 세 명이나 기용했다.

창작 과정에서 일부 결정은 실험 정신의 산물이다. 여러 명의 배우가 동일 인물을 연기함으로써 실망의 굴레에 갇힌 인물이 누구와도 교대될 수 있음을 보여 주고자 했다. 우리 주변에는 여러 마헤시가 존재하며, 앞으로도 수많은 마헤시가 살아갈 것이다. 이를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은 마헤시가 집 가까이로 가며 점점 나이를 먹어 간다고 보는 것이다. 영화 중간에 배우가 변경된다는 점,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바뀐다는 점을 관객들이 자유롭게 해석하기를 바란다. 모든 해석은 옳다.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마헤시는 자신의 지난 이야기를 카메라 앞에서 다시 한번 경험한다. 말하자면 그는 과거를 연기하고, 관찰하고, 회고하고, 해석할 기회를 얻은 셈이다. 그의 반응이나 태도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창작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변한다. 그리고 예측이 안 되는 방식으로 변한다. 마헤시가 어떻게 변했는지 내가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다. 그 질문은 마헤시가 답할 질문이다. 하지만 영화를 통해 자신을 바라본 다음, 모호하면서도 흥미로운 촬영에 참여한 다음, 그는 자신을 달리 보게 되었다. 아마도 더 많은 선택지와 가능성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자전거 여행이라는 단순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풍경과 빛을 활용하여 시적인 영상미를 보여 준다. 여기에 ‘칸데라오’라는 존재가 등장하며 신화적 분위기까지 더한다.

이 영화는 뭄바이 외곽에 위치한 부족사회 ‘팔가르(Palghar)’ 지역에서 촬영되었다. 인도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과 불과 100킬로미터 거리밖에 되지 않는 곳인데, 그곳에는 인도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산다. 이곳의 극심한 빈곤은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운 황무지에 둘러싸여 있다. 이 풍경이 영화에 나오는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그 속에는 칸데라오라는 신이 떠돈다. 모든 것을 아는 높은 신이 아니라 그저 작은 신이다. 칸데라오는 모든 것을 보고 기억한다. 누구든지 그를 만나는 자라면, 마음만 열려 있다면, 그의 지혜에 덕을 본다. 아주 많은 측면에서 이 영화는 마헤시에 대한 영화인 만큼 팔가르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음악이 영화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음악과 사운드 디자인을 어떻게 구성했으며, 특정한 정서를 빚어내기 위해 어떤 점을 고려했나.

드루파드(Dhrupad)라는 인도 고전음악 중 매우 오래된 양식의 명상적인 음악과 목 노래(throat singing) 를 함께 썼다. 목 노래는 내면의 고뇌가 울려 퍼지는 듯한 원초적 소리를 낸다. 두 장르 모두 독창적이고 대담한 인도 뮤지션 비셰시 카리메로가 가창했다. 한편, 보다 극적인 효과를 내고자 사용된 음악도 있다. 영화에서 가장 자주 끊기는 음악이기도 하다. 어느 순간 ‘만들어 낸’ 드라마를 단절시키기 위해서였다. 자전거를 타고 인도를 횡단하는 여행자의 내적·외적 풍경을 창조하기 위해서도 소리를 사용했다. 음향 작업에 참여한 이들의 전문성이 영화에 새로운 차원을 부여해 주었다. 가창, 연주, 사운드 디자인 등을 소화한 모두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마헤시의 여정은 팬데믹 기간 동안 수백만 명의 이주 노동자들이 겪은 현실을 반영한다. 이 영화를 통해 사회적으로 논의를 촉진하거나 질문을 던지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솔직히 영화가 광범위한 사회적 논의에 영감을 주는지는 모르겠다. 영화의 연약한 어깨에 짊어지기엔 지나치게 과도한 책무 아닐까. 그렇지만 영화는 감독과 관객 사이의 개인적 대화이기도 하다. 이따금 그 대화는 노동자에 관한 것이며, 때로는 음악 혹은 영화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경험에 관한 것이다. 인간으로서 우리가 공유하는 경험 말이다. 그러한 방식으로 영화는, 모든 예술과 매한가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비록 한 번에 한 사람만을 바꿀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