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일 수밖에 / Homeward Bound
2024 / Dae-hwan KIM / IMDb / KMDb
★ 3.4
이번 전주영화제에서 만난 첫 영화였는데, 생각보다 무척 재밌게 봤다. 오프닝 타이틀이 나오고 이후에 이상하게 믹싱된 사운드를 들으며 좀 걱정이 되었는데, 기우였다.
여러 겹의 야단법석 상견례. 표면적으로는 딸과 아들의 상견례지만, 꼬아진 세 개의 상견례라 생각했다. 영화에 참여한 배우의 수는 무척 적은 편인데, 메인 캐릭터는 6명이나 되는 신기한 구성. 플롯과 서브플롯이 산으로 갈 수도 있지만 영리하고 차분하게 이어나가는 실력이 좋았다. 이정도는 해야 기생충 각색을 부탁받는 걸까.
배우들 하나 하나의 연기도 무척 좋았다. 특히나 장영남 배우의 연기가 정말 너무 좋았다. 기대한 것은 옥지영 배우였는데 눈에 들일 틈이 없었다. 옥지영 배우의 톤은 정말 매력적이라 생각하는데, 15년 전의 MBC 베스트 극장에서도 지금 이 영화에서도 그 톤이 참 한결같다. 관객의 입장에선 매번 봐도 신기하고 흥미로운 톤인데, 배우에게 이건 좋은 말이 아닐 것 같아 속상했다. 영화에 부족한 면이 있다면 장영남 배우가 그 빈 공간을 서글픔으로 가득 채워주시는 기분이었다.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장면은 6명의 배우가 한 꺼번에 등장하지만 화면 뒷편에서 두 배우가 주고받는 연기였다. 몸싸움과 조난으로 산에서 밤을 새고 내려오는 사람들, 그리고 집에서 그 사람들을 기다리던 사람들. 달려가서 부축을 해주고, 피칠갑이 된 손을 들어 보여주고, 그걸 마음 아프게 보는 그 자그마한 샷이 이 영화에 자꾸 쓰였던 마음의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만 같았다.
모두가 하나 쯤은 아픔과 서글픔, 그리고 비밀을 가진 사람들. 옥지영 배우가 맡은 지선의 역할만이 모두에게 선의를 베푸는 그런 역할이었다 친다면, 이 영화엔 좋은 남자 어른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작가의 개인적인 스토리에서 기인한 것인지 궁금해졌다.
GV에서 엔딩이 꼭 그래야 했냐는 식의 질문이 있었는데, 난 매듭짓는 엔딩이라 무척 좋았다. 회피하지 않는 삶에 대해 외치던 스스로가 더이상 회피하지 않게 되는 삶을 향해 내딛는 첫 발걸음을 함께 하는 것이 기뻤다. 어쩌면 우리는 아직 신발도 신지 않은 기분인데.
계속 웨딩스냅을 위해 맸던 나비넥타이를 매고 다니는 진우의 모습에 웃음이 나기도 했다. 춘천 로케가 튀지 않고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점도 좋았다. 이젠 돈을 차곡차곡 모아 아들에게 통장을 줘도 예금주가 아니면 인출이 어렵고, 진우의 명의로 저금했다 해도 그럼 구지 통장이 없어도 모바일로 확인이 가능한데, 그런 사소한 영화적인 포인트에서 웃음이 났다.
감독의 다른 작품들 (특히 <초행>)이 무척 궁금해졌다.
시놉시스
강원도 춘천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있는 정하. 어느 날 캐나다로 유학갔던 아들 진우가 여자친구 제니와 정하를 찾아온다. 정하는 자신의 여자친구 지선을 진우에게 소개하려 하지만, 진우가 유튜버가 되겠다며, 엄마에게 먼저 폭탄선언을 한다. 상황이 깊어가는 가운데 정하는 고백할 타이밍을 놓치고 캐나다에 있어야 할 제니의 부모님이 춘천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숙소 예약 문제로 두 가족은 결국에 정하의 집에서 머물게 된다.
원문 링크: https://www.jeonjufest.kr/db/movieView.asp?idx=5590
리뷰
김대환 감독의 세 번째 연출작 <비밀일 수밖에>는 가족 사이에 숨겨져 있던 비밀에 관한 이야기다. 엄마와 아들인 정하와 진우, 그 사이 어딘가에 자리하는 지선, 그리고 제니 부모와 제니, 그리고 양쪽 집안 사이에 잠자고 있는 비밀은 엄청나진 않더라도 쉽사리 꺼내놓기는 어려운 것들이다. 모두가 품고 있을 비밀이라는 요소를 매개로 이 영화는 가족의 존립 근거와 본질을 캐묻는다. 이런 주제를 품고 있지만 <비밀일 수밖에>는 무거운 영화가 아니다. 가족 사이의 다층적인 비밀을 드러내면서 영화는 적지 않은 웃음 포인트를 만들어낸다. 그것은 억지스러운 웃음이 아니라 가족 자체가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요소를 극대화함으로써 비롯된다. 이를테면 캐나다에서 살아온 제니 아버지가 현재 한국에 살고 있는 중년 남성의 평균치보다 훨씬 꼰대스럽게 묘사되거나 평소 남편에게 큰소리 못 칠 것처럼 보이던 제니 어머니가 반전 면모를 보이는 등 말이다. 그리고 비밀이 벗겨져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에는 간혹 감동이 찾아오는데 그 강도 또한 약하지 않다. 비밀은 가족 관계를 넘어서도 존재한다. 영화는 그런 비밀을 어설프게 덮어두려 하는 것보다 당당하게 드러내는 편이 나을 것이라는 암시를 던진다. (문석)
원문 링크: https://www.jeonjufest.kr/db/movieView.asp?idx=55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