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러맨 / Better Man
2024 / Michael GRACEY / IMDb
★ 4.3
어디서부터 말해야할까. 여러 복합적인 감정이 교차하는 영화라. 지독한 자기혐오와 연민의 늪에서 헤매고 있는 이들에게. 아직도 원숭이같이 느껴지는 우리의 성장을 위해 영화라는 매체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과 위로라 느껴졌다.
영화를 본 지 10분이 채 되지도 않았을 때 이미 영화에 대한 애정이 싹 트기 시작했던 것 같다. 다른 것도 좋았지만 LookDev가 정말 좋았는데, 프레임 곳곳에 묻어있는 햇살에서 할머니 향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 포근함과 따뜻함을 시각화해냈다니, 그게 정말 놀라웠다.
로비 윌리엄스를 찍은 다큐가 아니라 영화라는 매체라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라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 50줄인 악동 브리티쉬 팝스타 로비 윌리엄스의 이야기라는 것이 영화의 가장 큰 약점으로 작용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이와 연륜만이 이야기의 깊이를 좌우한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사람들이 듣고싶어 하고 궁금해하는 인물인가는 어느정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기에.
나는 학창시절 로비 윌리엄스의 노래를 듣고 자란 세대라 그런지 거부감이 들기보다 궁금함이 더 컸다. 내가 즐겨들었던 노래들의 뒷면이 이런 자기혐오와 우울로 가득 채워져있을 것이라곤 생각해보지 못했다. Better Man이라는 제목이 그 노래를 즐겨 듣고 음미하던 이들에겐 큰 감동으로 다가오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영어 제목(그마저도 정확히 무슨 뜻인지 한 번에 감이 잡히지 않는)이 될 거라 생각하니 아쉬워졌다.
원숭이를 사용한 것에 대해 호불호가 나뉜다 들었다. 구지 따지자면 나도 불호 쪽이었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완전한 호로 돌아섰다. 남은 생을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되며 잘 살겠다는 약속의 표현이었다 생각한다. 우리는 아직도 불완전한 원숭이, 어쩌면 영원히. 할머니의 묘지에서의 장면들에선 이따금씩 마음이 쿵 내려앉기도 했다. 아주 이따금씩 물리를 거스르는 모션이 있는게 좀 아쉬웠지만, 풀타임을 이렇게 VFX로 거슬리지 않게 만들다니 누가 만든건지~ 혹성탈출과는 다른 결의 원숭이를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우울에 대한 시각화가 흥미로웠다. 우리가 마약이나 술과 멀찍히 떨어진 삶을 산다해도, 살아가며 “마약"이라고는 불리지 않는 다양한 마약에 절여져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런 깊은 심연에서 허우적거리고 필사적으로 벗어나려 노력해도 더 무너져내리는.. 그런 얇고도 깊은 심리를 호수의 깊은 곳에서 보고 왔다.
내가 벌거벗은 나를 대면하고 진정한 하나가 되기 위해 살아가는 우리들의 발버둥을 생각했다. 오랜만에 영화관을 빠져나오며 마음이 심란했던 좋은 영화였는데, 그런 의미에서 영화의 흥행실패가 마치 나의 일처럼 뼈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