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노라 / Anora
posted on 2025.03.06
2024 / Sean BAKER / IMDb
★ 3.8
할머니에게 배운 러시아어를 쓰다 만난 할머니 차를 타는 남자. 인간이 인간에게 연민과 애정을 느끼게 되는 진정한 순간을 포착하다.
<밀양>을 미국에서 찍는다면 이런 느낌일까. 이상하리만치 이창동의 향기가 곳곳에 묻어있는 작품이었다.
작년 부산영화제에서 서브스턴스와 더불어 예매에 실패해 아쉬웠는데, 이렇게 영화가 성공해 쉽게 볼 수 있는 작품이 되었다는 것이 더할나위 없이 기뻤다.
배우들의 연기가 좋았고, 살짝 어지러움이 느껴질 것도 같은 넓은 화각의 카메라 워크도 좋았다. 자극적인 전반부와 대비되는 후반부의 진행에 의문을 가질 무렵 영화가 드러내는 메시지의 본색이 흥미로웠다. 좋은 영화지만 이상하게 여러 번 보고싶진 않은 그런 불편함을 가지고 있는 영화인데, 어쩌면 그게 너무 적나라한 현실을 담았기 때문이란 생각을 했다. 불편한건 이미 현실로 충분해서 영화에서까지 느끼고 싶지 않은 느낌이랄까.
뉴욕에 다녀올 때 JFK공항으로 향하는 기차가 단촐한 주택가를 지날 때, 저기엔 누가 살고 있을까 궁금해 했던 기억이 있다. 우버도 아닌 에어트레인을 타고 대한항공 1등석을 타러 가는 나, 그리고 모두 일을 하러 떠나 적막만이 남은 주택가를 달리는 에어트레인의 소음. 아노라가 사는 집은 브라이튼이라 좀 거리가 있긴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그 때 느꼈던 사회적 괴리와 허상이 다시 머릿 속을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