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언덕 / The Hill of Secrets

2023 / Ji-eun Lee / IMDb / KMDb
★ 3.9

머리에 지식을 넣는 것보다 마음을 채우느라 바쁘던 그 때. 두 시간 짜리 추억보따리에 흠씬 두들겨 맞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두 편의 영화를 떠올렸다.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와 장규성 감독의 <선생 김봉두>가 그것이다. 내가 만들고자 하는 이야기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어떻게 해야 관객의 마음을 훔칠 수 있나가 주된 고민의 주제들이었다. 진중한 시선을 가지는 감독들의 영화를 봐도 아무 타격이 없어 왔는데, 이 영화는 두 시간을 계속 마음 졸이고 안절부절해야 했다. 그게 나의 변화 때문인지, 이 영화의 아주 개인적인 부분이 나의 아주 개인적인 부분과 크게 맞닿아 있어서인지 조금 헷갈린다.

나 역시 모든 수업이 끝나면 하교대신 학교에 남아 선생님과 단 둘이 노는 것을 즐겨했고, 관심과 예쁨을 받기 위해 (어쩌면 독차지의 영역까지도) 부단히 노력하고, 솔직하지 못한 감정들에 대해 상처받고 쑥스러워하고, 그런 일련의 과정들을 끊임없이 반복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명은이에게, 그리고 이젠 지금의 나보다 어린 그 때의 어른들에게 더 크게 마음이 쓰였다. 이젠 나보다 어려진 그 때의 어른들. 어떤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선생 김봉두>의 엔딩 크레딧으로 흐르던 양희은의 내 어린 날의 학교를 반복해 들었다. 나는 이렇게 나이가 들었는데도 여전히 타인을 위한 것도, 나를 위한 것도 아닌 채 속으로만 되뇌이며 끙끙 앓고 있다는 사실이 서글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