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이주 / The Quiet Migration

2023 / Malene Choi / IMDb
★ 3.7

깊은 굴 주위를 맴돌다 스스로 걸어 들어간 이가 다시 굴 밖으로 나오는 로드트립.

모든 것들이 영화적으로 소비되지 않는 게 좋았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그 뒤의 감상과 생각을 조곤조곤 늘어 놓는 이를 닮아있다.

옷걸이, 송아지, 운석 같은 은유의 모습을 띈 직유적인 것들이 보였는데 그게 마음에 걸리적거리지 않았다. 되려 방해받지 않고 영화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어 좋았다.

예고편에서 본 한국 방문이 영화의 절반을 이룰 거라 생각했는데, 단단히 혼났다. 어떤 상황과 마음을 시각화하는 방법이 이따금씩 세련되게 느껴지기도 했다. 예를 들면, 인종차별을 하는 친구의 멱살을 잡고 벽으로 밀쳐내는 아버지를 창밖에서 가만히 비춘 카메라처럼. 생각해보면 알게모르게 시점을 잘 활용한 것 같다. 칼의 집에서 식탁을 비추는 각도, 그리고 칼이 식탁에 앉는 자리가 종종 바뀌는데 그게 의미하는 것이 무얼까를 생각하곤 했다.

비단 방황하는 입양아들 뿐만 아니라, 나도 종종 갈피를 잡지 못하고 겉돌곤 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영화로부터 세상을 배운다.

영화제 제공 Overview

열아홉 살 카를은 덴마크의 시골에서 양부모와 함께 조용한 삶을 살고 있다. 양부모는 그가 언젠가 가족의 농장을 물려받아 가업을 잇기를 바란다. 그러나 카를은 자신의 ‘집’과 더불어 자신이 태어난 나라, 한국이라는 두 세계 모두에 끌리기 시작하고,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은 빠르게 다가온다.

영화제 제공 Review

한국 출신 두 덴마크 입양인이 서울을 방문하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회귀>(2018)로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했던 말레나 최 감독이 이번엔 극영화로 돌아왔다. 전작과 유사하게 이번 영화의 주인공도 덴마크 입양인이지만 배경은 덴마크의 시골 마을이다. 이제 갓 성인이 될 무렵인 청년 카를은 아침 일찍부터 소를 돌보고 농장을 관리하는 무미건조한 일상을 감당하고 있다. 그의 양부모는 그가 이 가업을 물려받을 것이라고 믿지만 카를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조용한 이주>는 주민 대다수가 백인인 이곳에서 카를이 느끼는 고립감을 운석이나 송아지 같은 요소들을 통해 드러내며, 카를의 내면에서 깊어지는 뿌리에 대한 갈망을 유령 같은 존재로 보여주기도 한다. 극영화적 요소를 품었던 전작과 반대로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적 요소를 많이 담고 있는데, 이는 카를의 갑갑한 삶을 강조해주는 역할을 한다. <조용한 이주>는 그 다큐멘터리적인 적막함에 약간의 감성을 부여할 뿐인데도 큰 울림을 만드는 영화다. (문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