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스보이 슬립스 / Riceboy Sleeps

2022 / Anthony Shim / IMDb
★ 4.2

너무 좋았다. 오랜만에 만나는 내용과 그 내용을 담는 형식이 일치하는 좋은 영화였다. 군더더기가 없는 두 시간이었다.

크레딧을 보며 배우들이 맡은 배역을 찬찬히 읽을 때 오는 또다른 감동이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가지만, 영화가 다시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두 가지가 좋았는데, 스포성으로 말하자면..

스포 방지
  1. 사이먼 역을 맡은 배우가 감독이라는 사실이 놀라웠다. 너무나도 관대한 캐릭터가 신기할만큼 괴리가 느껴지기도 했는데, 어쩌면 그게 바로 영화의 핵심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나보다. 수많은 소영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감독의 입을 빌어 전달한다. 영화를 볼 땐 몰랐지만, 지나고보니 화룡점정같은 대사였다.

  2. 삼촌 역을 맡은 강인성 배우가 죽은 형인 원식의 역할까지 맡았다는 것이 놀라웠다. 극에선 닮았지만 다른 배우처럼 보였는데. 덕분에 동현이와 삼촌의 목욕탕 신이 또다른 의미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가만히 낮게 멈춰있기도, 구비구비 따라 움직이기도 하는 카메라가 좋았다. 인물의 감정과 서사에 너무 개입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멀리 떨어져있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가 몰입을 극대화 시켰다. 필름 카메라의 제약 아래서 이렇게 멋지게 찍어내다니!

첫 장편 영화의 주연이라는 배우, 그 배우와 이 영화에서 만나 결혼까지 이뤄졌다는 감독. 영화 외적으로도 흥미로운 기사와 인터뷰가 많아 즐거웠다.

특히나 영화를 보는 중간에 옆 상영관에서 쿵쿵 들려오는 소음이 방해될 때가 있었다. 존 윅이 또 누군가를 신나게 두들겨 패나보다 생각했는데 나중에 인터뷰를 보니 그건 라이스보이 슬립스에 삽입된 소리였다. 배우의 심장 소리가 마이크에 고스란히 담겨버렸다고. 인터뷰가 아니었음 쭉 존윅을 의심하고 원망할뻔 했다.

무척이나 닮아있는 밴쿠버와 강원도의 숲길이지만, 누군가에게 소리지르고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위안을 주는 곳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