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소희 / Next Sohee

2022 / July Jung / IMDb
★ 4.2

영화를 보고 코멘트를 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혹 내가 순간에 혹해 영화를 너무 후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반복해 생각했다.

정주리 감독은 기본적으로 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이란 생각을 했다. 너무 신기할만큼 이창동 감독의 작법을 닮았다 생각했는데, 나중에 인터뷰를 보니 한예종에서 스승과 제자로 만나기도, 감독의 전작인 도희야의 제작을 맡아주기도 했다 한다. 이창동 감독의 작품을 보면 문학작품을 보는 듯한 생략과 시선이 카메라의 구도와 스타일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생각을 한다. 정주리 감독은 이창동 감독의 스타일에 비해 덜 묵직했지만 이준익 감독의 서사를 풀어나가는 능력까지도 품은 것처럼 온전히 영화에 몰입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는 생각 뿐이었다. 게다가 해야할 연기를 해준 배우들까지. 복도 많다.

선하기만한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없다. 사회가, 우리 모두가 공범인 타살.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단순히 콜센터 직원들에게 친절히 대해야겠다는 결론만 내리질 않길 바란다. 미디어에 기대 사람들에게 현실을 알릴 수 밖에 없던 사회의 병폐를 모두가 조금씩 인지하고 이해하고 바꿔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다음 소희, 다음 태준이, 다음 준희가 끊임 없이 대체되는 세상에서 그저 분해주기만 하는게 미안할 뿐이다.

비단 고등학교 뿐만 아니라 대학 역시 국가가 위탁한 거대 파견 업체라는 생각까지 확장되었다. 더 나은 세상의 가치를 만들 수 있지만, 내 스스로 affordable한 조금의 희생조차 꺼려하는 사람들. 제작년부터 지금까지도 이어져오는 내가 가진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불만이 무엇인지 조금 감을 잡게된 것 같기도 했다.

지난 건강검진에서 추가 검사를 권유 받아 모처럼만에 시간을 내어 병원에 들렀었다. 1분 남짓한 상담에 2만원이 넘는 진찰료. 누군가가 무언가를 이루었을 때, 그 일로 인한 이득을 나눔에 있어 개인의 능력에 대한 보상과 사회에 갚아야하는 책임의 비율을 누가 정해줄 수 있을까 답답했다. 사람뿐만 아니라 시스템 자체가 무능하기 때문에 결국 “도의적"이라는 말로 포장해 대중에게 호소하는 수밖에 없는지. 잘사는 사람이 아니꼬운게 아니라, 그들이 잘 살게된 시스템의 배경을 따라가다보니 화가나버리고 만다. 세상은 미세하게 플러스가 되어가지만 어쨌거나 제로썸에 가깝고, 내가 무언가를 얻었다면 누군가는 무언가를 잃었을 거라는 생각에 화가났다. 원래 분배되어야 하는 가치에 비해 과하게 매겨진 가치들로 이득을 보는 사람들.

왜 사람들은 모를까, 나만 잘 사는 세상보다 다같이 잘 사는 세상이 더 재밌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