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혈남아 / As Tears Go By

1988 / Kar-Wai Wong / IMDb
★ 3.1

드디어 왕가위의 데뷔작을 보게되었다. 당시에 봤을 느낌과 지금에 와서 보는 느낌에는 거대한 괴리가 존재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이제는 너무 흔해졌지만 당시엔 세련된 미장센이라 칭해졌을 한 컷에 공존하는 색감의 대비가 눈길을 끌었다. 성룡과 영웅본색으로 점철된 80년대 홍콩영화에 새로운 감각의 시작을 보였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비정전이라는 대단한 두 번째 영화를 만들기 위해 필수적인 징검다리 돌이었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후에 왕가위와 오랫동안 호흡을 맞추며 왕가위 영화의 비주얼을 담당했다는 장숙평이 까메오처럼 등장한다. 열혈남아에서 가장 좋았던 장면은 아이러니하게도 유덕화도 장만옥도 아닌 어둠 속에서 대사를 읊조리는 장숙평의 장면이었다. 튀지않는 목소리와, 사선으로 떨어지는 조명, 파랗다 못해 하얀 색감, 고요하다 못해 서늘한 분위기가 앞으로 펼쳐지는 왕가위의 세계로 향하는 문같은 느낌이었다.

중간에 등장하는 BGM인 ‘Take my breath away’가 너무 어색하다고 생각했는데, 당시에도 한국에서 그런 말이 많았었나 보다. 대만판에 삽입되었다는 왕걸 버전으로 다시 돌려봤는데, 그쪽도 100% 만족스럽진 않지만 홍콩판보다는 더 느낌이 사는 것 같긴 했다. 생각해보면 왕가위 스타일은 전자에 더 맞는 것 같기도하고. 뭐 어쨌건 두 쪽 다 아쉬움이 남는다.

나는 너무 어른이 된 장학우의 모습만 봐와서 그런지, 열혈남아 속 장학우가 너무 꾸러기같아 신선했다. 원래는 이런 이미지의 배우였구나. 그나저나 이젠 나이가 점점 차고 있어서 그런지, 예전 같았으면 너무 cozy해 보이고 환상을 가졌을 홍콩 집들의 위생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