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길

Father / 2020 / Srdan GOLUBOVIĆ / IMDb
★ 4.3

와! 정말 이번 영화제에서 본, 그리고 볼 영화 중 가장 좋은 영화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좋았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일에 대한 재단보다, 이 영화를 알게되고 보게된 것만으로도 영화제에 올 가치가 있었다 라고 말하는 것이 더 좋겠다.

영화내내 그리고 동네 주민들에게까지도 소리치지 않는 그가, 아들에게 손을 대는 이들에게 소리친다. 영화의 전체적인 밸런스와 뚝심이 정말 어마무시하다.

영화에서 좋지 않은 것이 없었는데, 그 어마무시한 힘이 정말 대단하다. 여러 막으로 되어있는데, 굉장히 유기적이고 몰입도를 유지한다. 정말 보는 내내 괴로울 정도로 몰입해 버렸다.

뒷집 아저씨, 복지센터의 수위 아저씨,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선의로 가득찬 사람들도 등장한다. 악의로 가득찬 사람들도 등장한다. 그러나 캐릭터들이 평면적이지 않다. 카메라에 담긴 그들의 모습이 평면적일뿐, 시스템 안에서 우리는 선과 악을 오간다는 뉘앙스를 던진다. 그 단적인 방점이, 니콜라가 돌아오지 않을 줄 알고 세간살이를 털어갔던 주민들이라 생각한다. 챙피함을 느끼고 가져갔던 세간을 집 앞에 내어놓는다. 하지만 미안하다는 말은 없다. 그들이 미안해할 필요 있을까. 누군가들에게 우리는 항상 올바름을, 친절함을, 선의를 강요하고 요구할 수 없다. 시스템에서 살아간다는 것. 우리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기에 그 안에서의 최선과 최적을 위해 우리 각개가 노력하는 것. 그런 메시지까지도 읽어볼 수 있었다.

영화의 밸런스가 너무 신기하다. 밸런스의 여러 축이 있지만, 그 중 하나를 꼽자면 사람들의 도움이다. 보통의 영화는 시간이 흐를수록 주인공이 점점 외부의 도움을 받아가며 감정을 고조시킬텐데, 이 영화는 텐션을 주다, 뺏다를 반복하는 느낌이다.

영화가 끝나고 세르비아에서 부활절 휴가를 보내고있는 스르단 감독과의 온라인 GV가 있었다. 내용의 일부를 기록한다.

  •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테이블과 의자를 다시 되돌려 놓는다. 마치 테이블은 등에 들쳐맨 그 모습이 십자가를 진 예수님같아 보이기도 했다, 큰 연관은 없지만. 감독이 말하길 세간을 가져온다는 것은 그 순간부터 니콜라 스스로의 존엄성을 세운 것이라 한다.
  • 8주 동안 찍었다 한다. 한 주에 6일을 찍었으며, 하루엔 12시간. 세르비아 전역을 돌아다녔다 한다. 감독이 베오그라드 출신인데, 본인도 이렇게 세르비아의 전역을 다녀본건 신기한 경험이었다 한다.
  • 실화를 기반으로 했다 한다. 그러나, 현실의 니콜라는 아직 애들을 못찾았다 한다. 곧 찾게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 이전까지 가족에 대한 감정이 있는걸까 싶은 니콜라는 초반의 여정에서 개가 죽은 걸 보고 감정을 폭발시켰다 한다.
  • 거친 빵, 물, 플라스틱 물통은 생존을 단순화한 오브제라 한다.

영화제 제공 Overview

세르비아의 작은 마을. 일일 노동자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인 니콜라는 가난과 굶주림으로 아내가 극단적인 행동을 하자, 아이들을 포기하고 센터에 맡기라는 명령을 받는다. 니콜라는 최선을 다해 호소하지만, 사회복지센터장은 아이들을 돌려주지 않고 상황에는 점차 희망이 사라진다. 하지만 니콜라는 지방청 자체가 부패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하고, 세르비아를 가로질러 수도인 베오그라드의 중앙 정부로 찾아가기로 결심한다.

영화제 제공 Review

세르비아의 작은 마을에 사는 두 아이의 아버지 니콜라는 가난의 굴레에서 허덕이는 일용직 노동자다. 그의 임금은 2년째 체불 중이고, 두 달 전에는 집에 전기마저 끊겼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남편의 직장으로 가서 밀린 급여를 주지 않으면 분신하겠다고 하고 결국 몸에 불을 붙인다. 다행히 아내의 목숨은 건졌지만, 분신 현장에 있던 아이들은 트라우마 치료와 가난한 생활 환경 때문에 사회복지 기관에 의해 아버지 니콜라와 떨어져 후견인에 의해 키워지게 된다. 니콜라는 아이들을 돌려달라고 호소하지만, 사회복지 센터는 그의 요구를 무시한다. 지방 관청 자체가 부패해서 아이들과 함께 살 수 없다고 생각한 니콜라는 여비도 없이 물통 하나만 챙겨서 수도 베오그라드의 중앙 정부로 장관을 만나러 향한다. 빈부격차의 골이 깊어지는 현상은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리지 않고 일어나고 있고, 세르비아처럼 비교적 최근에 전쟁을 겪은 나라에서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위선적인 정치인들의 보여주기식 행정이 만들어낸 어설픈 사회 안전망 역시 누구를 위한 것인지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아버지의 길>은 그런 문제들에 의문 부호를 던지며, ‘그저 가족과 함께 살고 싶어 하는’ 한 가장의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특히 아버지 니콜라 역을 맡은 배우 고란 보그단의 과묵하지만 행동으로 가장의 책임감을 보여주는, 선이 굵은 연기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 작품은 2001년 <빗나간 과녁 Absolute Hundred>으로 데뷔한 세르비아 출신의 스르단 고루보비치 감독의 네 번째 작품으로 트리에스테영화제, 더블린국제영화제, 캘거리국제영화제, 그리고 베를린국제영화제 등지에서 많은 상을 받기도 했다. (전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