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 (4K remastered)

In the Mood for Love / 2000 (2019 Remastered) / Kar-Wai Wong / IMDb
★ 4.6

홍콩 영화에 탐닉하던 시절, 화양연화는 좀 결이 다른 영화였다. 원초적인 사랑이나 관심, 재미에 대한 이야기를 배제한 채 관계에 집중한 이야기를 푼다. 덕분에 “도대체 왜 용기를 안내는거야 정말~” 답답함밖에 느끼지 못하던 시절도 있었다.

2019년 4K로 리마스터링된 화양연화가 2020년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어서야 한국에서 개봉되었다. 코로나로 흉흉한 요즘, 포스터를 받겠다는 일념 하에 영화관에 다녀왔다.

“국내외를 통틀어 <화양연화 리마스터링>에 대해 왕가위 감독이 공식적으로 매체와 진행한 인터뷰” 라는 씨네21의 기사를 오랫동안 곱씹으며 읽었다. 영화를 보는 행위도 즐겁지만, 제작의 뒷 이야기와 감회를 듣는 것은 두 배로 즐겁다. 좋았던 구절 하나.

<화양연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캐릭터는 아주 원칙적인 사람들이다. 모든 것이 원칙적이고 융통성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매우 규격화된 방법으로 촬영했다. - 왕가위 감독

영화의 오프닝 시작 전에 짧은 왕가위 감독의 리마스터링 소개 영상이 등장한다. 카운트다운의 예고처럼 마음이 좀 편해졌다.

먼저 리마스터링에 대해 얘기하자면, 필름으로 촬영된 거친 그레인의 느낌이 너무 좋은데 이걸 리마스터링으로 어떻게 표현할까가 가장 궁금한 포인트였다. 롯데시네마의 스크린과 프로젝터가 너무 별로인(ㅠㅠ) 탓인지 크게 거슬리지 않았다. 나중에 DVD로 발매되면 다시 한 번 확인해보고 싶다. 더불어, 영화의 결말부의 앙코르와트 영상의 복원은 엔지니어들이 꽤나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이 켜켜이 쌓인 유적의 선명도를 높이는 일이란.

영화를 무척 자주 봤음에도, 2008년 이전에 처음 본터라 이 곳에 감상문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 참에 영화에 대한 감상까지도 함께 써야겠다.

본심과 다르게 싫다 하거나, 조바심 내는 첸의 캐릭터가 무척 좋다. “그냥 원하는걸 똑바로 말해” 라고 다그치지 않고, 본심을 유추하며 잘 따라주는 차우의 캐릭터도 무척 좋다. 원래 캐릭터의 구조도 탄탄했지만, 두 배우가 숨을 불어넣어 더 완벽해진 느낌.

뭐 미장센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이번에 다시 봤을 땐 편집의 타이밍이 좀 아쉬운 부분들도 있었다. 너무 빨리 끊긴다거나 하는 느낌의. 그래도 여전히 압도적으로 좋았지만. 시간과 사건의 프레이밍이 정말 좋다.

서른을 넘겨 다시 보게된 화양연화는 스무살 시절의 감상과는 또다른 모양을 지닌다. 마흔이 되어 보게되면 또 어떻게 변해있을까. 영화에 나오는 옥그릇을 사고싶어 일본의 엔티크샵을 돌아다니던 것. 지금은 사라진 홍콩의 골드핀치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프렌치토스트. 수많은 사람들과 마음들. 영화를 처음 본 이후에 쌓인 추억들이 더 레이어드 되어 영화가 다르게 읽힌다.

IPD 시키고 싶은 영화지만, 성공할 수 있을까 싶을만치 굉장히 어려운. 그래서 failure case 로라도 넣고싶은, 그런 영화였다. 오랜만에 60년대 홍콩의 어느 동네 사람들에 흠뻑빠진 두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