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 나무 사이로

Through the Olive Trees / 1994 / Abbas Kiarostami / IMDb
★ 3.8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영화 속 영화로 만들어버리는 대사를 듣고선,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계속해서 자신의 이전 영화를 영화 속 영화로 만들어버리는 건 아닌지, 잠깐 재밌는 상상에 빠지기도 했다.

같은 공간의 변주가 재밌다. 굉장히 이국적이고 낯선 공간이지만 왜 그 공간과 사람들로부터 편안함을 느끼게 되는지 모르겠다.

다들 짜증이 나고 스트레스를 받지만, 어떻게든 다들 살아간다는 것. 시간은 쉬지 않고 흐르고, 산 사람들은 계속 살아간다는 것.

언덕 위에서 멀어져가는 두 주인공을 비추는 롱테이크에서, 좀처럼 합쳐지지 않다 멀어지는 두 하얀 픽셀. 그 픽셀 사이로 긴장의 끈을 쥐고 흔드는 음악 덕분에 몇 분간 지속되고 있다는 것도 잠시 망각했다.

아메드와 네마자데를 다시 볼 수 있어 반가웠다. 남은 3부작의 한 편이 궁금해진다.

정성일 평론가의 평을 덧붙인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올리브나무 사이로」는 아주 이상한 영화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간결한 영화지만 그것을 이리저리 설명하는, 더 없이 복잡한 우회를 거쳐야만 한다. 말하자면 이미지는 그 자체로 이미 완전하며, 그것을 설명하는 일은 부질없는 짓처럼 보이게 만드는 영화 중의 하나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우선 「올리브 나무 사이로」는 잘 알려진 것처럼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와 「그리고 삶은 계속되고」의 뒤를 잇는 「지그재그 3부작」의 마지막 영화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3부작이 아니라 영화 그 자체로 이미 서로 겹쳐있는 상태의 중층결정의 이야기구조로 주름접힌 영화다. 이 영화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다소 구구절절이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키아로스타미는 87년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만들고 뒤이어 90년 「클로우즈업」을 만들었다. 그런데 「내 친구…」를 만든 지역에 지진이 일어나 20만명 이상의 사람이 죽고 수많은 실종자들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이 영화의 주연인 아이들의 생사가 걱정이 된 나머지 촬영팀을 이끌고 「아이들을 찾으러 가는 영화감독 키아로스타미」에 관한 영화 「그리고 삶은 계속되고」를 찍었다. 이 영화는 절반은 다큐멘터리이고 절반은 극영화 양식인데, 이 속에서 키아로스타미는 가짜 키아로스타미를 주연으로 내세워 영화를 이끌고 간다. 그리고 그로부터 다시 2년 뒤 「올리브 나무 사이로」를 만들었다. 영화 속에 영화 「그리고 삶은 계속되고」는 여전히 촬영중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그리고 삶은 계속되고」를 만들고 있는 영화감독의 촬영현장에서 조연배우였던 남자 호세인과 테헤라의 구혼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퍼즐과도 같은 이야기의 미로를 키아로스타미는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다는 사실이다. 그는 오히려 이 미로를 알건 모르건 이야기를 따라 고개를 넘어가듯 잘도 넘어간다. 오히려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며 영화에 대해 온갖 책을 읽고 키아로스타미 영화의 미학을 잘 알고 있는 이들에게는, 현기증이 날 만큼 씨줄날줄이 서로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이 영화가 정작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너무 나도 쉽고 편안하며 정직하게 보인다는 것이 키아로스타미 영화의 미학이며 더없는 아름다움일 것이다.

이것은 부모를 잃고 할머니와 함께 사는, 집안도 나쁘고 글도 못 읽는 가난한 한 남자가 집안이 훌륭하고 글도 읽을 줄 아는 한 여자에게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구혼하는 이야기일 뿐이다. 그러나 키아로스타미의 통찰력은 이 평범한 이야기속에서 이란 사회의 계급 모순과 빈부의 격차, 더 나아가 제도의 모순까지도 끌어낸다는 것이다. 남자 호세인은 수줍어 아무 말도 못하는 처녀 테헤라를 따라가며 사랑을 고백하는, 그 끝없이 이어지는 듯한 마지막 장면은 「감정」으로 가득 차 있으며 동시에 그들의 사랑을 가로막는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명확하게 보여준다. 키아로스타미는 거기서 희망을 보고 싶어한다. 그래서 두사람이 서로 하나가 되기를 희망한다.

이제 여기 영화속의 등장인물들이 소망하는 희망과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바라는 희망이 하나가 되는 순간의 마지막 장면의 롱쇼트-롱테이크 장면은 그래서 더없이 가슴을 저미면서도 우리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키아로스타미는 자신의 주인공들이 진심으로 행복하기를 희망한다. 자기가 만든 영화속의 세상이 행복해지는 것은 바로 키아로스타미의 세상이 행복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