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 3.9

4시간이라는 러닝타임에 압도당해 며칠에 걸쳐 봐야했지만, 내러티브가 끊기지 않기고 계속 이어볼 수 있었다. 수많은 이야기들일 얽혀있는데도 무심한듯 이어나가는 촘촘함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듯 하다.

2019년도의 키워드 중 하나는 에드워드 양이었다. 허우샤오시엔 감독은 알았어도, 에드워드 양 감독의 영화들은 처음이었다. 우연치 않게 하나 그리고 둘을 보게되고, 그리고 때마침 개봉한 타이페이 스토리, 그리고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까지. 공포분자나 광음적고사, 해탄적일천을 보지 못한 건 아쉽지만 내년의 기쁨으로 남겨둘 수 있어 좋다.

대서사 드라마를 4시간으로 압축해놓은 느낌이다. 엄청난 시간의 흐름으로 인한 대서사가 아니라, 일정한 시간의 촘촘한 분위기와 갈등이 대서사의 느낌을 풍겼던 것 같다. 고령가 소년이 누굴 지칭하는 지 러닝타임 내내 궁금했었는데, 결국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이 영화는 ‘살인사건’ 의 추리가 아닌 ‘왜 살인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나’ 에 대한 이야기였다는 것을 알았다.

어린 장첸의 연기가 좋았다.

영화를 간결하게 설명한 정성일 평론가의 글이 좋아 덧붙인다.

중학생 소년들은 밤이면 몰려 다니면서 패싸움을 벌인다. 소녀들은 첫사랑을 발견하지만 곧 싫증을 낸다. 소년들의 형은 아무런 희망이 없다. 어머니들은 늘 집을 비운다. 그네들의 아버지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그러나 아무도 그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솔직히 그렇게 말하면 빨갱이가 되기 때문이다. 시대는 1959년 여름. 장소는 대만 타이페이의 고령가. 장개석 국민당 정부는 경제개혁을 단행하고, 한편으로는 정치적인 독재정부가 되어 모든 이들을 침묵시킨다. 대만은 아시아에서 점점 고립되고, 본토에서 온 사람들과 섬에서 살던 사람들 사이의 갈등은 점점 더 증폭된다. 미군 부대에서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그해 히트곡은 「당신, 오늘밤 외로우세요」 이다. 이제 주간학교에서 퇴학당하고 야간학교로 옮겨간 어린 소년 샤오스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1961년 여름. 샤오스는 자신이 사랑했던 소녀 밍을 야시장 한복판에서 칼로 찔러 죽인다. 거의 스스로의 자살처럼. 그해 여름은 더할 나위 없이 우울한 장마가 끝을 모르고 이어지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폭우가 내릴 것 같은 몬순 기후의 지루한 습도. 대만의 근대의 시간 안으로 들어가서 양덕창은 이 모든 것의 실패와 좌절, 초조와 무기력, 그리고 슬픔을 하나의 거대한 분위기로 담아낸다. 실제 살인사건을 다시 구성하여 만들어낸 이 영화의 이야기는 샤오스를 중심으로 점점 더 넓혀나간다. 그러나 이 안에서는 누구에게도 출구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계속해서 같은 동네를 빙빙 돌지만, 그 안에서조차 점점 더 추락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대만의 근대화에 대한 운명이다. 또는 결코 누구도 행복하지 않았던 아시아의 60년대에 대한 더할 나위 없는 회고일 것이다. 우리들의 근대는 이렇게 시작하였다.

정성일 평론가, 1990~1999 100 BEST FILMS IN OUR DECADE, 『KINO』 1999.12

유튜브에 올라온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의 리마스터링 복원 영상도 무척 흥미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