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비엔느에 관한 진실

★ 3.4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갈라 프리젠테이션으로 상영된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을 보고왔다. 고레에다 감독의 GV 도 예정되어있었기에, 피터지는 예매 전쟁이었지만 운좋게 한 좌석을 얻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고레에다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내 취향에 맞지 않는 영화였다. 같은 이야기를 같은 방식으로 풀어내는데 무엇이 달랐던걸까. 배경이 파리로 달라지고 배우의 국적이 바뀌었을 뿐인데 굉장히 이질감이 느껴지면서 한편으로는 그의 과거 영화의 답습의 느낌도 없지 않아 있었다. 키키 키린이 까뜨린 드뇌브의 역할을 맡아 극을 이끌어가도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을까 그런 상상이 계속 이어지는 러닝타임이었다.

영화가 끝난 뒤의 GV 에선 운좋게 질문을 던질 기회를 얻었다. 무척 많은 질문이 있었지만, 단 하나만 골라야했다.

모녀간의 갈등이 풀리기 전까지는 왜 대화에 참여하는 인물들을 컷으로 나누어 보여주거나, 혹은 카메라가 대화의 상대를 끝까지 따라가지 않고 한 인물에만 멈춰서냐는 질문을 했다. 갈등이 해소되는 지점부터는 인물 전체를 보여주는 마스터샷이 등장하는데, 그 전까지는 보이스오버로 상대 배우의 목소리가 한 배우의 얼굴에 덮여지는 방식이 계속되었는데 왠지모를 답답함이 느껴지면서도 한 인물의 표정과 감정에만 집중하는 효과를 일부러 노린 것인지 궁금했다.

고레에다 감독의 답은, 글쎄.. 촬영 감독의 의견을 전적으로 수용했다는 내용의 답변이었다. 그닥, 그의 의도는 아니었구나.

다른 사람들의 질문도 좋은 질문이 많았다. 가장 좋았던 질문은 그의 영화에서는 ‘유사 가족’의 형태를 가지며 가족의 해체를 보여주는 식의 영화가 많았는데, 이 영화에선 진짜 혈연으로 이뤄졌지만 거리가 먼 가족이 가족의 결합을 이야기한다는 점이 이전의 영화들과 다르다. 감독이 생각하는 가족의 의미란, 그리고 앞으로는 어떤 가족 이야기를 해나가고싶냐, 그런 식의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토픽의 형태에 대한 질문이었다. 결국 고레에다 감독은 당장은 신작 생각이 없다는 결론으로 끝나버렸지만.

고레에다 감독은 매체에서 보던 모습과 똑같은 식으로 얘기를 했다. 내용이 판에 박혔다는 것은 아니고, 쏘데스네로 시작하는 말투나 화법이 그대로였다. 영화를 찍는 내내 오즈의 마법사를 떠올렸다는 답변이 좋았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영화에 대해 알수없는 답답함이 느껴지던 체증이 명쾌하게 해결되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모두가 사자였지만 용기를 얻어 관계를 회복하는 이야기였다. 줄리엣 비노쉬의 연기가 무척 좋았다.

그런데 왜 나는 다시 고레에다의 디스턴스와 환상의 빛이 꺼내보고 싶어졌는지 모르겠다. 부드러움이 계속되니 거친 야수성에 목말라 가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