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홀랜드 드라이브

★ 3.5

후 당황스럽다.. 카페에서 돌아와 후딱 한 편 보고 다시 연구를 해볼 요량이었는데, 아주 깔끔하게 말아먹었다. 그래도 먼 훗날 이 시간을 ‘연구를 못한 시간’이 아닌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봤던 시간으로 기억할 것 같아 후회는 없다.

케이트 블란쳇이 나온 엘렌쇼에서 “내오미 캠.. 내오미 왓츠” 하던 내오미 왓츠가 나온다는 것, 데이비드 린치가 감독이라는 것, BBC 선정 21세기 최고의 영화 1위를 했다는 사실만을 안 채 보기 시작했다. (대강의 줄거리도 모르고 본 게 약인지 독인지 모르겠다.)

예전부터 봐야지 생각은 있었지만 외장하드 한 구탱이에 깊숙히 보관되어 있었다. 며칠전 읽은 김지운의 숏컷에서 김지운 감독의 추천이 계속 기저에 남아있었다. 그러다 어제 본 방구석1열 덕분에 왕가위 나무위키를 읽었고, 그러다보니 화양연화 나무위키도 읽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BBC 선정 21세기 최고의 영화 리스트도 보게되었는데, 1위에 당당히 올라있는 이 영화를 보고 아무래도 이번 주말엔 꼭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나의 인생의 선과 이 영화의 선이 가까이 근접할 때 잡지 않으면 또 오랜 시간을 보내고서야 가까워질 것만 같아서.

여튼 덕분에 지금은 머리가 터질 것 같다. 한동안 멍하니 이야기를 되짚었다. 되짚을 수록 자꾸 어긋나고, 뜬금없이 등장했던 스토리가 이어지지 않아 답답했다. 다행히도 인터넷을 찾아보니 나 혼자만 머리 아픈건 아닌 것 같아 다행이다. 인터넷에서 보게된 해설 중 좋았던 두 가지.

“아이즈 와이드 셧을 보면서 이제 20세기의 고전영화가 끝났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면, 이제 21세기 영화가 시작됐구나 느낀 순간이 바로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보고나서 였다.(중략) 당신이 21세기 영화를 맛보고 싶다면 이 영화는 그 미로로 들어서는 입구가 될 것이다.” - 정성일

이 영화가 난해하다고 합니다. 감독이 우리에게 어려운 질문을 던져서가 아닙니다. 질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점이, 작품을 영화 역사 가장 높은 곳에 올려 놓았죠. 이 작품은 우리에게 화두를 던지거나 결론을 내라고 타이르지 않습니다. 우리를 미지의 세계로 데려가거나 엄중한 경고를 전하지도 않습니다.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그저 존재할 뿐입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매혹적으로. - 부기영화 169화 모든 영화를 통틀어서 가장 어려운 영화

악몽을 꾸다가도 꿈이라는 걸 자각하는 순간 꿈속에서 이 영화가 생각날 것 같아 무섭다. 내가 잡고 있던 팽팽하던 끈이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액체로 녹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기분을 느낀 꿈을 꾼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