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지나나고

★ 3.8

걸어도 걸어도는 원제 그대로 번역했으면서 왜 이 태풍이 지나가고는 ‘바다보다 더 깊이’라는 원제를 바꾼걸까? 사실 나는 ‘태풍이 지나가고’ 라는 제목이 영화에 더 잘 어울린다 생각하기에.

걸어도 걸어도보다 더 만들기 어려운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무질서와 혼돈 속에 숨어있는 규칙이 정갈하게 놓여있는 규칙보다 더 까다롭고 쉬이 만들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왜 고레에다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고 나서는 한동안 가족 영화에 손대지 못할 것 같다 했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에서도 그랬고, 노팅힐에서도 그랬고, 따뜻하고 cozy한 분위기를 형성해나가는 영화의 공통점은 주인공 주변의 신비로우면서도 따뜻한 캐릭터들 때문이라 생각한다. 절대 주연의 힘만으로는 만들 수 없는 묘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이 영화에서도 흥신소 후배직원 마치다로 나오는 이케마츠 소스케 라든가 동네 클래식 선생님으로 나오는 하시즈메 이사오, 여동생으로 나오는 고바야시 사토미, 아들 싱고역으로 나오는 요시자와 타이요 등의 연기나 톤이 답답한 영화의 숨구멍이 되어주는 느낌이었다. 스핀오프의 여지가 남는 스토리나 연출은 언제나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물론 그 와중에 릴리 프랭키는 묘한 서스펜스를 구축한다.. 다시 생각해도 신기하다.

단지에 대한 이야기나, 감독 본인의 자전적인 에피소드들은 책에서 여러번 읽었기에 무감각하게 지나갔다. 키가 크고 다리가 길어서 그런지, 삐걱거리며 걷는 아베 히로시의 걸음걸이에도 눈길이 갔다. 영화가 내내 시노다 료타에게 어른이 되기를 강요하는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 거북함이 들때도 있었지만, 뾰족한 정도는 아니었다.

가장 좋았던 것은 키키키린보다도 마키 요코의 연기였다. 아직 내 나이가 마키 요코에 가까워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렇게 느껴졌다. 아직은 키키키린의 어머니엔 감정 이입이 잘 되지 않는게 사실이다.

어쩌면 고레에다가 생각하는 어른과 내가 생각하는 어른이 조금 다른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내내하게 만든 영화였다. 내가 생각하는 어른이, 어쩌면 실체 없는 어른인건가, 그런 의문도 가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