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

★ 3.5

일단 감상을 적어나가기 앞서, 한국에 없어 영화관에서 직접 보지 못하고 그 감동을 사람들과 순간순간 나누지 못했다는게 아쉽다.

여튼. 영화를 보는 내내 두가지 생각만 들었다. 하나는 ‘노블레스 오블레주’요, 다른 하나는 ‘반대의 명확한 정의’다.

노블레스 오블레주라는 말에 대해 처음 들은 순간은 아직도 생생하다. 중학교 3학년 때 교무실에서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들었는데, 더 많이 가진 자가 더 많은 의무를 갖는다는 개념에 대해 놀랐고 그 개념을 함축한 말이 있다는데 더 놀랐던 기억이 난다. 사실 그 때 왜 그말을 들으며 혼이 났는지는 떠오르지 않지만ㅎㅎ

세상이 아름답고 살아갈만한 까닭은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자신을 희생하며 베푸는 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해서 모든 가진자들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다. 우리가 필요한건 모든 이의 희생이 아니라 자연의 법칙에 걸맞은 정도의 희생이고, 그 정도가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을 때 비로소 안정된 사회라고 생각한다. 모든 이가 희생하고 그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는 더이상 자본주의,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반대의 명확한 정의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교집합이 존재하는 서로 다른 집합 A 와 B 가 있다 생각할 때 A - (A ∩ B) 의 반대는 (A U B) - A 인가, B 인가.

지금 내가 사는 사회의 생각과 다를 때 내가 너를 불순하다고 고발할 수 있는가. 더 풀어 말하자면, 네가 하는 짓이 온전히 민주주의의 것이 아닐 때 내가 너를 빨갱이라 고발할 수 있는가. 고민이 되었다. 결국 내가 어디에 더 가치를 두는가에 따라 다를 것이다. 내가 완벽히 무결점한, 단 한치의 오점도 용납하지 않는 사회에 더 가치를 둔다면 고발하겠고 결점이 생기더라도, 그 누구도 억울한 일이 생기지 않는 데에 가치를 둔다면 쉽게 고발할 수 없을 것이다. 사회는 시대에 따라 변해가니까 지금 와서 왈가왈부할 소리는 아니지만.

영화에 대해 말을 하자면 사실 잘 만든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감정도 넘칠 뿐더러 불필요하거나 식상하고 심심한 장면들이 나열된다. 단 하나의 장점을 꼽으라면 법정에서 송우식이 차경감을 증인심문할 때 카메라가 핸드헬드로 클로즈업된 채 송우식의 감정에 맞춰 흔들리는데 그 침이 나에게로 튀기는 줄 알았다. 그냥 핸드헬드가 아니라 클로즈업이 준 에너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