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교

★ 3.6

(원작에서) 은교가 처음 만난 인물은 이적요가 아니라 서지우였듯, 내가 처음 만난 은교는 영화가 아닌 책이었다. 아니다. 생각해보면 내가 좋아하는 정지우 감독의 신작이 될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책을 보기 시작했으니 어쩌면 첫 만남은 도로 영화라 해야하는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건, 책을 덮는 순간 생각이 뒤죽박죽 되어버렸다. 무엇을 어떻게 느껴야 할 지 깜깜했다. 동시 다발적인 쓰레드를 정리해주는 단 하나의 모티프는 이것은 여러가지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며, 그 사랑에는 한계와 조건이란 없다 는 것이었다. (그것이 나이가 되었든 성별이 되었든 위치가 되었든간에!)

“은교를 만나고 내 세상은 무너졌다” 라지만 이게 무너졌다 할 수 있는가. 무너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실상은 더 굳건해지는 것일텐데!

다음은 영화 속 연출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

창문을 닦는다는 것을 확장시킨 감독의 힘. 은교는 파괴자가 아닌, 마음 속에 뿌옇게 끼었던 서리를 닦아주는 존재!

정지우 감독의 음악 선곡 실력이란. 아! 어떻게 영화마다 단 한번의 실패도 없을까.

호흡과 완급조절의 실패. 한 권의 책을 두 시간으로 압축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 일일지는 상상이 가지 않으나, 책 속의 어떤 짧은 찰나는 길게 호흡하고, 길었던 시간의 연속을 짧게 호흡하는 것에 있어서는 너무나도 감독 본인의 취향에 맞게 편집된 것이 아닌가 싶다. 좋은 영상과, 좋은 배우를 가지고 편집 때문에 좋지 않은 흥행 성적을 가지게 될 생각을 하니 씁쓸하다. (이번 작품은 꼭 흥행하길 바랬는데! 윽!)

그나저나 소설속에서 어영부영 지나가던 단편이 은교라는 단편으로 못박혀진 부분은 너무나도 좋다. 이건 각색의 성공이다!

이적요가 서지우에게 자식을 함부로 하지 말라 하건만 정작 본인은 자식을 반닫이장에 가둬놓지 않았는가. 혹자는 너무나도 소중하게 여기기에 그렇게 해둔거라 하겠지만 자신의 작품을 정말로 자식처럼 생각한다면 평생을 혼자서 오롯이 끌어안고 살아갈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책을 읽으면서 상상했던 상상 그대로의 집으로 구성되 놀랐다. 물론 정지우 감독의 장소 선택능력은 최고임을 알기에. (가령 해피엔드의 아파트 복도라던가, 사랑니의 인영의 집, 그리고 한정식집 등!) 특히 마당의 정원은, 정말 상상 그대로의 숲을 이루고 있어 너무나도 놀랐다.

(이건 왠지 어디선가 읽었던 것만 같지만…) 암벽을 타는 이적요를 보며 헌화가의 노인을 떠올리는건 당연지사. 비록 꽃이 안나수이 공주거울로 바뀌었을지언정.

책 속의 화자인 변호사가 사라지면서 한층 깔끔해진 느낌이다. 이적요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간 것만 같다. 책 <은교>는 책 <상도> 도 비슷한 구조였음에도 불구하고 인물에 대한 이입도가 높은데, 은교는 왜 그렇지 못했을까.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길. 너무나도 졸린데, 금요일날 불면의 밤에서 버틸 수 있을까. 윽.

정지우 감독은 메마른 내게 단비를 내렸었다. 하하하 원래 나는 판타지를 싫어하건만, 영화 사랑니를 보면서 영화에 판타지가 섞인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아름다운 것인지 깨달았던 적이 있다. 젊은 박해일을 배치함으로써, 한층 더 매끄러운 연출이 된 기분이다. 짧은 머리의 박해일은 어색하지만 흑흑

(물론 타인의 말을 빌려온 것이더라도) 이적요(가 말했던 이적요)의 대사가 떠오른다.

“그대들의 젊음이 노력의 댓가가 아니듯 나의 늙음도 나의 잘못으로 인한 벌이 아니다.”

죄송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벌이라 생각한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