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동물

요즘 무척 기분이 바닥을 치고 있었다. ‘요즘’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바닥을 친지는 꽤 되었는데 올라갈 틈도 기력도 의욕도 없었다. 술과 영화, 드라마, 책, 그리고 살구로만 가득채워 보냈다.

지난 와인페어에서 술을 진창 마신 다음 날 하루종일 두통이 심했다. 단순한 숙취가 아니라 온몸과 정신이 지끈지끈 만신창이였다. 술은 한동안 그만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래도 정말 몸이 살고싶어서였는지..) 술을 멈추니 몸도 가벼워지고 기분이 조금 괜찮아졌다.

이정도면 이제 기분이 좀 올라와야되는데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또렷한 정신으로 바닥을 치는 기분이었다. 더 우울해질 것 같아, 차라리 술을 마실까도 잠시 고민…

이번 학기 CA활동을 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사실 바닥을 친 상태에서 선발이 되었기에 걱정이 많았다. 누가 누굴 위로하고 공감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기도 했다. (여전히 그렇다.)

시간이 해결해준건지, CA활동이 해결해 준건지는 알 수 없지만 인간이 얼마나 사회적 동물인지를 무척 실감하며 무척 힐링받고 있다.

언제나 그 곳에 서있고, 내가 온전히 기댈 수 있는 것은 영화나 드라마, 책 속 인물들, 이미 세상을 떠나버린 명사들뿐이라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을 많이 지웠다. 그랬더니 마음이 꽤나 편해진다.

진심을 다해 공감하고 공감받는 것이 가슴 벅차다. 기분을 위로 끌고갈 오르막길을 발견한 기분이다.

기분이 바닥을 친 것의 원인을 꽤나 오랜동안 찬찬히 생각했었다. 더이상 분해되지 않는 몇가지 요인을 발견했다. 알고나니 더 비참해 좀 더 바닥으로 내려갔지만.

오늘 퇴근길엔, 이게 다 덕업일치를 바랐던 욕심의 최후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그 길을 걸어갈 것 같아 지금 굉장히 불안하지만, 한편으로는 설렘의 불티가 조금씩 튀어오르고 있다.

이런 고백을 공개된 곳에 적는다는 게 꽤나 쑥스럽다. 많은 말을 썼다 지웠다 반복했는데, 그 결과 남겨진 말들도 맘에 들진 않는다.

시간이 해결해 줄거라고.. 사실 시간은 해결해주지 않지만, 시간이 흐른 뒤의 내가 해결해 줄거라고 미래에서도 바닥에 빠진 나에게 말해주고싶어 부끄러운 글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