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덤

오랜만에 일요일에 컴퓨터를 키고 쭉, 있다.

어젠 하루종일 무기력했고, 그제도 그랬던 것 같고, 오늘은 좀 낫다. 덕분에 집에 필요했던 이것저것을 주문했다. 예를들어, 살구가 물어뜯어 지퍼가 휘날리고 있는 이불커버 등등을.

오늘 아침엔 어제 다 못 읽은 책도 읽었다.

물론, 생산적인 일은 없었다. 오늘 해야할 리스트에 적어는 놓았지만 계속 밀리고 있다. 사실 이 로그 쓰기도 오늘 해야할 리스트에 있었던 일 중 하나다.

강박관념에 쓰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즈음 하나를 남기고 싶었다. 무엇을 해도 극강으로 재밌고 흥미롭고 열정 넘치던 시기가 지나고 무엇을 해도 재미가 없고 뭘 먹어도 맛이 없고, 과거의 행복했던 일을 떠올려도 그저그런 더이상은 감정이 요동치지 않는 그런 시기가 와버린 것 같다.

더 암울했던 건 어떤 미래를 상상해도 시큰둥하다는 것이었다. 극약처방이었던 ‘나중에 일본에서 일해보는건 어떨까?’ 도 시들해져버렸다. 대부분의 상상에 내성이 생겨버린 것 같다.

요즘, 어쩌면 올해 내내 뒤늦은 사춘기가 와버린 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기나긴 터널끝엔 어쨌거나 잘 되어 있겠지라는 태세를 유지했는데 요즘들어서는, 그래선 안돼! 하며 발버둥이라도 쳐야하는게 아닌가 싶다.

오늘은 그 일환으로, 소심한 발버둥들을 휘져어봤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덧) 요즘들어 가장 열심히 하는 것은 약 챙겨먹기인데 꽤 효과가 좋은 것 같다. 내내 피곤하지가 않은데, 이게 잠을 많이 자서인지 약때문인지는 아리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