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칭 가난: 그러나 일인분은 아닌 / My Poverty : But Not Mine Alone

An-On / KOBIC / ISBN-13

가시가 돋혔다 사라져도 여전히 가시의 흔적이 남은 이들을 보면 그냥 다른 말 없이 안아주고 싶다. 이제 더이상 애어른 말고, 제 나이에 걸맞는 생각과 짐만 갖고 살아가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오랜만에 학창시절에 살았던 아파트들을 네이버맵으로 살펴봤다. 학기가 시작하면 노란 개나리꽃이 한아름 피어 아름답던 정경을 떠올렸다. 이사를 갈 때마다 가지고 다닐 수 밖에 없던 커다란 업라이트 영창 피아노를 떠올렸다. 피아노가 귀한게 아니라, 피아노를 사던 마음, 그걸 아껴 치며 성장하던 마음이 귀해 훈장처럼 버릴 수 없었던 세월들을. 부끄러움이 더이상 부끄럽지 않게 된 것은 한 순간이 아니라, 오랜 시절을 묵묵하게 켜켜히 쌓아오며 성장한 결과라는 것을 새삼 떠올린다.

여러 주제가 혼재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이 복잡한 사회의 문제가 단 하나의 퍼즐로 주르륵 맞춰지도록 단순하지 않기에 어쩔 수 없는 논점의 전개였다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실마리를 풀어야하는지 알 수 없고, 정답조차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금곡주공에 살았어도 복도 가장 끝 호에 사는 아이들은 곧 탈출할 애들이었다. 끝 호에는 방이 하나 더 있었고, 그 평수에 사는 이들은 대체로 1년을 넘기지 않고 주공을 떠났다. 오래도록 남게 된 아이들은 고통의 서열을 셈하는 데에 점점 능숙해지고 익숙해졌다. 전세 사는 아이가 월세 사는 아이를 깔봤고, 아파트 평수로 최고의 상태와 최악의 처지를 따졌다. 악한 어른이 아이들을 조종한 결과가 아니었다. 주위의 평범한 어른들을 보며 자연히 터득한 아이들 나름의 ‘지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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