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 Human Acts

Human Acts / Kang HAN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발표가 10월 중순이었으니 꼬박 한 달이 넘어서야 책을 완독하게 되었다. 주말에 시간이 될 때마다 조금씩 야금야금 읽었는데 덕분에 느린 호흡으로 천천히 읽다 어느 카페에서 마지막 페이지를 마주하게 되었다.

처음엔 좀 비겁하다 생각했다. 아이의 시선을 빌려 파렴치했던 사건을 묘사하는 것이 정정당당해 보이지 않기도 했다. 책이 중반을 넘어가고 후반을 달려가며 다양한 각도의 카메라에서 다양한 눈의 색을 가진 사람들로 하여금 사건을 뒤돌아보게 만들 때 비로소 나도,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성적 비판을 내려놓고 마음을 열게되기도 했다.

인간이 인간으로 태어난게 특권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존엄을 높이기 위해, 지구에 존재하는 개체 중 하나로서 책임감과 자부심을 갖기위해 가져야하는 마음가짐이 사실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언어가 생기고 마음과 생각을 나누며 생존을 위해 사회가 탄생하고, 그러면서 부차적으로 발생한 여러 이해관계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이따금씩 스스로의 존엄성을 갉아먹으며 세상을 흐린 눈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책은 사람이 사람으로 남기 위한 몸부림에 대해 얘기한다. 누군가 보인 몸부림을 보고도 흐린 눈을 했던 이들에 대해 말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 있어 언어를 뛰어넘는 만국 공통의 정서가 공감대를 형성했으리라 생각했다.

제작년 다녀온 캄보디아 프놈펜의 뚜얼슬렝 대학살 박물관이나 올 여름에 다녀온 광주를 생각했다. 책에 언급된 것처럼, 시간이 흘러버려도 몸에 남아버리고 DNA에 각인되어 버리는 후유증에 대해 생각했다. 일어나 버렸다면 절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되돌이킬 수 없는 말과 행동들에 대해서.

“차라리 죽는 것이 나았다.” 라는 문장을 유려하고도 서늘하게 표현한 문장이 마음에 남는다. 그래서 한강 작가의 다른 작품들이 무척 궁금해진다.

지나간 여름이 삶이었다면, 피고름과 땀으로 얼룩진 몸뚱이가 삶이었다면, 아무리 신음해도 흐르지 않던 일초들이, 치욕적인 허기 속에서 쉰 콩나물을 씹던 순간들이 삶이었다면, 죽음은 그 모든 걸 한번에 지우는 깨끗한 붓질 같은 것이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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