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 박완서

박완서 작가님의 그간의 글들과 다르게 읽혔다. 인간으로서의 아픔과 극복, 일상을 솔직하게 엿봤다.

40이 지나고의 등단을 극적인 드라마로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덤덤한 등단이었다. 등단 이후의 삶의 결정을 고민하는 과정을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집 근처 산책에서의 심경, 서울 타 지역으로의 나들이에서의 심경, 참착의 순간에서의 심경을 통해, 인간이 겪는 공통의 (어쩌면 누구에게나 공통되지는 않는) 감정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했다.

지난 주에 일을 하며 왜 장작 소리와 캠핑 ASMR을 찾아 들어야 했는지, 조금은 나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졌다.

길음 사람의 다리가 낸 길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마음이 낸 길이기도 하다. 누군가 아주 친절한 사람들과 이 길을 공유하고 있고 소통하고 있다는 믿음 때문에 내가 그 길에서 느끼는 고독은 처절하지 않고 감미롭다.

70년은 끔찍하게 긴 세월이다. 그러나 건져 올릴 수 있는 장면이 고작 반나절 동안에 대여섯 번도 더 연속 상연하고도 시간이 남아도는 분량밖에 안 되다니. 눈물이 날 것 같은 허망감을 시냇물 소리가 다독거려준다. 다행히 집 앞으로 시냇물이 흐르고 있다. 요새 같은 장마철엔 제법 콸콸 소리를 내고 흐르지만 보통 때는 귀기울여야 그 졸졸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 물소리는 마치 다 지나간다, 모든 건 다 지나가게 돼 있다, 라고 속삭이는 것처럼 들린다. 그 무심한 듯 명량한 속삭임은 어떤 종교의 경전이나 성직자의 설교보다도 더 싶은 위안과 평화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