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일

소설가의 일 / 김연수

FIFO 처럼 가장 나중에 들어온 책이 가장 먼저 책상을 떠나게 되었다. 지난번 학교에 방문한 김연수 작가의 강연을 듣고선 연구실로 돌아가는 길, 도서관에 들러 빌려온 책이었는데 이렇게 바로 읽게될 줄은 몰랐네. 얇은 두께와 가벼운 무게가 단단히 한 몫 했으리라.

산문이라 그런 것이겠지만, 무척이나 그를 닮아있는 책이다. 게다가 강연에서 상당부분을 차지했던 가쿠레 기리시탄들에 대한 이야기가 마치는 글의 말미에 언급되어 있어 기분이 묘했다. 박해를 당해 자취를 감춰야했지만, 몇 대에 걸쳐 숨어살며 예언을 믿어온 그들의 이야기가 그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친걸까 문득 질문을 던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 덕분에 나가사키에 다시 방문하게 된다면 내 여행의 추억보다 김연수 작가를 먼저 떠올리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 글을 읽었다 해서 소설이 뚝딱 나오는 것이 아님을 안다. 글이란게 쉽지 않다. 이건 좋은 글이야, 이건 이렇게 쓰면 안돼! 는 잘 아는 훌륭한 discrminator 지만 피드백이 쉽지 않은지 generator 로서는 영 꽝이다. 더 많은 iteration 으로 training 시키면 좋아질런지, 문득 궁금해지지만 그것 역시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덕분에 일찍이 이 책은 좋은 글쓰기의 교훈을 얻는 데보단 작가와의 수다 시간을 좀 더 길게 가져간다는 생각으로 읽다보니 빠르게 읽혔던 것 같다. 모든게 놀이화가 되면 참 빨라진다.

제1장 1절에 등장한 그의 외숙모의 등단. 그 시에 등장한 단팥죽과 팥빙수. 그 단팥죽과 팥빙수를 평생 만들어온 그의 어머니. 그런 일련의 서사 속에 푹 빠져 이 책을 끝까지 들고 있었다. 물론 그런 따스한 서사는 딱 1장 1절까지였다는 게 문제였지만. 어쨌거나, 그가 지금도 그를 신인이라고 말하면 설렌다 했듯, 나 역시도 이 책의 1장 1절을 생각하면 책을 끝낸 지금 이 순간도 설레어 온다.

다른 길을 가고있지만, 매크로하게 보면 어떤 면에선 같은 길을 걷고있는, 좋은 선배를 만난 기분이다. 책을 끝까지 읽는게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지만 (…) 즐거웠습니다. 좋았던 몇 구절을 남긴다.


p.53
해서 무기력은 현대인의 기본적 소양이다. 그런 무기력의 양대 산맥이 바로 현대 연애와 암 선고다. 내 뜻과 무관하게 느닷없이 찾아오는 질병과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없는 연인을 견디는 일이 현대소설의 본질이 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p.59
늘 자기 앞에 두 개의 상자가 있다고 상상할 수 있다면. 하나는 ‘왜?‘라는 의문사가 가득 든 상자고, 다른 하나는 ‘어떻게?‘라는 의문사가 가득 든 상자다. 틈날 때마다 그 상자에서 번갈아 ‘왜?‘와 ‘어떻게?‘를 꺼내서 앞의 문장에 갖다붙여서 질문을 만든다.


p.75
예컨대(라고 쓰면서 좀더 구체적인 사례를 드는 방식은 소설가의 문장에서 필수적이다) 빈도수 염력사전 같은 게 있다고 치자. 이 상상의 사전에는 표제어가 빈도순으로 배치된다. 말하자면(이라고 쓰고 좀더 구체적으로 들어간다) 신문과 잡지와 책, 그리고 우리의 대화 속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단어와 표현은 앞쪽에 있고, 한 번도 써보지 않은 단어와 표현은 뒤쪽에 있다. 이 사전의 페이지는 손이 아니라 생각의 힘으로만 넘길 수 있다. 그러니까 갈피를 넘겨서 뒤쪽의 단어와 표현을 보려면 더 많은 생각의 힘, 그러니까 염력이 필요하다. 초인적인 염력을 발휘해 남들보다 훨씬 뒤쪽의 단어와 표현을 쓸 수 있다면, 그의 문장은 훨씬 좋을 것이다.


p.80
따라서 소설가는 어떤 동료 작가가 실제로 보면 미남인가요?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그 사람이 미남일 개연성은 충분하지만, 핍진성이 부족합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p.87
살아오면서 몇 번, 조금 있으면 무슨 일인가 벌어질 텐데 그러고 나면 이전의 나로 돌아가지 못하리라 예감할 때가 있었다.
(중략)
이야기 작법에서는 예상치 못한 결론으로 이르기 위해 반드시 거치는 이런 지점들을 플롯 포인트(Plot Point)라고 부른다. 플롯 포인트는 이야기를 다른 방향으로 전환시키는데, 대개의 이야기에는 두 개의 큰 플롯 포인트가 있다. 그래서 이야기는 3막 구조인 셈이다. 시드 필드 같은 시나리오 작가는 모든 영화는 시작하고 삼십분이 지날 무렵에 첫번째 플롯 포인트를 지난다고 말한다. 대개 백이십 분짜리 영화라면 첫 플롯 포인트는 삼십 분에, 두번째 플롯 포인트는 구십 분쯤에 있다. 이 지점을 지나면 이야기의 방향이 크게 바뀌면서 주인공은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 그래서 특히 첫번째 플롯 포인트를 가리켜 ‘돌아갈 수 없는 다리’, 혹은 ‘불타는 다리’라고도 부른다. 1막의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은 어떤 사건을 경험하는데, 그러고 나면 다시는 예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


p.124
2012년 여름에 펴낸 산문집 <지지 않는다는 말>에서 나는 ‘가장 건강한 마음이란 쉽게 상처받는 마음’이라고 썼는데, 그런 점에서 소설가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건강한 마음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으리라.


p.224
생각 속에서 물은 0도씨에서 응고돼 얼음이 되지만, 감각 안에서 얼음은 펄펄 끓고 있다.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지 학술적으로 아무리 떠들어봐야 한 번 나를 안아주는 것만 못하다. 그건 못해도 너어어어무 못하다. 그러니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소설가는 늘 이 감각적 세계에 안기기를 갈망해야만 할 일이다.


p.261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펴내면서 나는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에 회의적이다.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오해한다. 네 마음을 내가 알아, 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네가 하는 말의 뜻도 모른다, 라고 말해야만 한다. 내가 희망을 느끼는 건 인간의 이런 한계를 발견할 때다. 우린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 인생을 살아볼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에 쉽게 절망하지 않는 것, 그게 핵심이다.